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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3]
 
 
 
     
 
 
 
작성일 : 21-10-31 23:28
   
불확실한 섭리 앞에서
 글쓴이 : dangdang
조회 : 17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419 [151]


 

불확실한 섭리 앞에서


<파친코>, 이민진 지음, 문학사상, 2018

 

뿌리에 관한 불편한 질문

 

“우리는 어디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을까?” 40년을 살아오면서 국호(國號)가 바뀌지 않았고, 본토에서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지 않았으며, 거주지가 해외로 옮겨가거나 귀화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에게 이런 질문은 공기가 있어 숨을 쉬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것 같이 새삼스러운 물음일 것이다. 그러나 자의든 타의에 의해서든 어느 순간 뽑혀서 내던져지는 ‘뿌리 상실’을 경험하고 척박하고 고독한 새로운 환경과 문화 속에서 삶을 일구어 가야했던 디아스포라(διασπορά)들에게 ‘고향’, ‘모국’ 같은 근원에 관한 질문은 피하고 싶지만 살면서 직면할 수밖에 없는 운명과도 같다. 

 

1910부터 1989년까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과 전후시대를 거쳐 실로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4세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부산과 일본의 간사이 오사카(関西地方 大阪)가 주 무대다. 작가 이민진은 1970년대 미국 이민 1.5세대로 한국에서보다 미국에서 더욱 잘 알려졌으며, 한국과 미국, 일본에서 살아간 경험과 통찰을 바탕으로 30년간 이 소설을 구상하고 집필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여행자에게 보이지 않는 애환의 역사

 

소설의 도입부를 지나 주인공인 선자가 장로교 목사인 백이삭과 결혼하여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오사카에서 생활을 읽어 내려가면서 10년도 넘은 사진을 뒤적였다. 2010년 여름, 일본 선교사 선배 목사부부의 안내와 배려를 받아 간사이 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오사카 도심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무엇인가 모르게 어두웠던 쓰루하시(鶴橋) 시장 옷가게에 걸려있던 알록달록한 한복 색동저고리가 떠올랐다. 쓰루하시 시장 김치상점이 작중에 등장했을 때 가본 곳에 대한 반가움도 있었지만 그곳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갔던 재일교포들의 삶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셔터만 눌러대며 신기해했던 여행객의 가벼움이 부끄러움으로 밀려왔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인데, 역사적 일반적 소양을 넘어 역사 연구를 한다던 사람이 아무것도 본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식민통치 시대와 해방 이후, ‘언제까지나 이방인’, ‘하류인생’으로 취급당하는 멸시와 차별 속에서도 불굴의 정신으로 이어온 재일교포 민중역사의 심장부인 이카이노와 쓰루하시 시장을 지나면서 스치듯 설명을 들을 뿐,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니 말이다. 

 

대화로 풀어가는 빠른 전개와 재미

 

작가의 생애를 보면 주류사회에 편입하는데 성공했지만, ‘주변인의 특성’마저 벗어던지지는 못한 것 같다. 비범한 관찰과 이면적 상황 판단이 빛난다. 낯선 세계에 대한 작가의 관찰력과 세밀한 묘사는 감탄을 연발하게 만든다. 마치 해방 전후를 즈음하여 오사카에 살았던 사람인가 착각이 들 정도로 현장감 있게 사람들의 감정과 작은 행동까지도 세밀하게 묘사한다. 소설을 통하지 않고서는 보통사람들이 접근하거나 경험하기 어려운 밤의 세계(야쿠자, 우리에게는 빠찡꼬로 익숙한 파친코 게임장)를 엿보는 것도 소설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어떤 자이니치(在日,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 조선인을 지칭하는 말)들에게는 익숙하고 일상적인 삶의 일부이겠지만, 겉으로 비쳐진 재일교포들의 삶을 깊이 있게 추적하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인생사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을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풀어냈다.

 

섭리와 불확실성

 

신의 뜻(섭리)은 정해져있는 것인가? 완전하고 전지전능한 신의 관점에서 보자면 정해진 것이 ‘섭리’지만 불완전한 인간의 관점에서 보자면 신의 섭리와 불확실성, 의외성은 결과를 놓고 볼 때 같은 말일 수 있다. 섭리를 알지 못하는 인간은 신의 섭리를 자의로 규정할 수 없기에 불확실하고 흔들리는 정체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의 전개는 불확실성의 연속, 뜻대로 되지 않은 인생의 비애를 지나가지만 조금씩 영글어가고 섭리가 이루어져간다. 정확히 말하자면 ‘체념-후회’와 겹친 ‘기대-희망’이 있고 이로써 알 수 없던 초월자의 뜻이 이루어졌고, 이루어져가고 있음을 마침내 보여주었다.

 

“모자수(모세Moses의 일본식 이름)는 파친코의 부산한 분위기가 좋았다. 그는 소란스럽고 큰 파친코의 부산한 분위기가 좋았다. 그는 소란스럽고 큰 파친코 사업의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사랑했다. 장로교회 목사였던 아버지는 하나님의 의도를 믿었지만, 모자수는 인생이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기대하는 파친코 게임과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희망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게임에 손님들이 빠지는 이유를 모자수는 이해할 수 있었다(2권 95쪽).”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핀볼게임의 쇠구슬처럼 역사 소용돌이 속에서 떠밀려가는 등장 인물들의 운명은 이리저리 튀다가 솟구쳐 오르는 듯 했지만 한 순간 사라져버린다. 복잡한 시공간 배경만큼이나 선자, 한수, 경희, 유미, 하나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비참하기는 매한가지인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삭, 요셉, 노아, 모자수, 솔로몬 같은 성경 속 인물의 이름이 문화-세대를 초월한 인물관계도 속에 얽혀있다. 섭리는 명확하지만 그것을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생애는 여전히 불확실성과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불확실성은 이를 마주한 사람에게 극도의 불안과 절망 속에서 삶을 포기할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정반대로 오늘과 다른 내일을 꿈꾸며 살아갈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신현희 목사 (안산나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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