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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10-30 00:01
   
왜관 가는 길
 글쓴이 : dangdang
조회 : 14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409 [129]

  

왜관 가는 길


<책으로 노래하고 영화로 사랑하다, 임인덕 신부 이야기>, 권은정 지음, 분도출판사, 2012

 

왜관에 다녀왔다. 무궁화호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아늑하게 느껴졌다. 경부선을 타고 내려가 낙동강을 건너자마자 첫 정차역이 바로 왜관이었다. 멀리 말로만 듣던 칠곡보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거대한 회색빛이 아주 낯설었다. 베네딕도 왜관수도원은 왜관 역 뒤편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마 처음 세울 때만 하더라도 한적했을 동네인데, 이젠 수도원이 시내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다. 호젓하리라는 한가한 기대는 이미 어긋나 버렸다.

 

분도(芬道)수도원은 베네딕도 왜관수도원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옛 사람은 우리말로 베네딕투스를 ‘분도’라고 번역하였다. ‘분도’는 베네딕도를 한자음으로 옮긴 것인데, ‘향기로운 길’이란 뜻이다. 베네딕도는 6세기 초, 이탈리아 로마 남쪽 수비아꼬에서 정주 수도회 운동을 시작하였다. 역사적으로 수도회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베네딕도 수도규칙은 오늘까지 이어져 온다. “일하며 기도하라”(Ora et labora)가 대표적이다.

 

독일 베네딕도회가 조선선교를 시작하여 처음 수도원을 세운 곳은 원산이었다. 초기 덕원수도원은 일제 말기와 해방 직후 박해를 받았고, 결국 공산세력의 억압을 피해 이곳 대구 못 미처 왜관으로 이주한 것이다. 성 베네딕도는 ‘기술자, 건축가, 개발자의 성인’이다. 아마 왜관수도원이 일찍이 인쇄와 출판에 눈을 뜬 것도 그런 역사적 배경 때문일 것이다. 

 

일부러 왜관을 방문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분도출판사에 대한 고마운 추억 때문이다. 오랫동안 출판사 대표를 한 임인덕 신부의 평전 <책으로 노래하고 영화로 사랑하다>를 읽고 난 후, 문득 이곳을 방문해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임인덕, 독일인 하인리히 세바스티안 로틀러 선교사는 1966년에 한국으로 파송 받은 이래 대부분 왜관에서 살았다. 50년 가까이 그는 책을 만들고, 영상을 보급하였다. 

 

‘임인덕 신부 이야기’란 부제가 붙은 <책으로... 영화로...>는 그가 임기 중 만든 400여권의 책  내력(來歷)이고, 정치적 암흑기인 1970~80년대에 겪은 출판 산고(産苦)였다. 시대를 밝힌 등불 같은 책들은 ‘현실에 도전하는 성서’, ‘말씀이 우리와 함께’, ‘해방신학’ 그리고 우화집 ‘꽃들에게 희망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 등이다. 지금도 분도출판사가 펴내는 책들은 아주 값싸고, 실속 있으며, 영성과 시대정신으로 가득하다. 

 

1984년 겨울, 첫 목회를 나가려고 준비할 즈음 서대문 한길서림에서 <말씀이 우리와 함께>(1981.9 출간)를 구입하였다. 복음서를 현장의 눈, 농부의 시각으로 토론한 책이었다. 흥미롭게도 내 책 속표지에는 “1984년 12월 25일 성탄절에 구입”한 것으로 적혀있다. 그리고 이 책이 판금도서라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저자 에르네스토 까르데날 신부는 니카라구아 솔렌티메나 섬에서 농부와 어부들과 함께 성경을 공부하였다. 공동체는 복음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생각을 끌어내었다. 참가자 중 많은 이들은 읽지 못했으나, 생각조차 문맹은 아니었다.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한 것을 보면 당시 무모한 군사정권의 보안책임자들에게도 ‘안목이 제법 있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의 복음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얼마나 체제전복적인 위험한 생각을 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을 배우지 못하도록 책 판매를 엄금했을까? 내 경우 비록 복음서 읽기를 통해 세상을 전복할 생각은 상상하지 못했으나, 적어도 내 존재를 뒤집어 볼 새로운 시선만큼은 얻을 수 있었다.

 

그 때나 이제나 진실에 목마른 사람은 여전히 많이 있을 테지만, 목마름을 축여줄 우물 파는 선구자를 찾기가 힘들다는 것은 시대적 불행이다. ‘큰 장마에 마실 물 없다’더니, 시중에는 다만 소위 복음주의, 흔히 성공주의란 이름의 당뇨를 유발하는 청량음료 책장수만 넘쳐난다. 게다가 사람들이 더 이상 책을 찾지 않으니, 팔릴 책들에 골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40년 가까이 분도가 만든 책들을 읽고, 공부했지만 임인덕 신부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돌아보니 그는 출판인으로서 베네딕도회 수도규칙에 충실했던 수사였다. 모처럼 방문길에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뵙지 못했다. 그는 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신병 치료를 위해 독일로 돌아갔다가, 결국 소천(召天)했다고 한다. 이미 여러 해 전일이었다. 그에게 진 빚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젠 더 이상 임인덕 같은 출판운동가를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다.

 

송병구 목사 (색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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