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 속의 촛불들
<어둠 속의 촛불들>, 로완 위리암스 지음, 김병준 옮김, 비아, 2021
이 책은 성공회 주교인 저자가 성 클레멘트 교회 소식지에 쓴 묵상이다. 지금도 코로나 사태가 진행 중인 가운데, 저자는 이 묵상들을 통하여 복잡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씨름하고 있는 사회와 세계를 위해, 사회 및 세계와 함께 계속해서 사랑과 신뢰와 힘을 나누는 길을 찾는데 미약하게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1. 변화의 시작 : 마리아에게 임한 수태고지(受胎告知)는 그 무엇도 바뀌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바뀌게 했다고 말한다. 마리아의 몸 안에서 일어난, 보이지 않는 작디작은 변화에서 온 세상을 뒤집어엎을 삶의 이야기를 시작하신 하나님이 작은 변화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가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새로운 현실에 당도했다.
4. 우리의 시간 :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라는 메시지는, 모든 시간에 예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이다. 모든 시간이 그분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 어떠한 시간을 보내고 있든 우리의 삶에 ‘무의미’한 순간이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의미 있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언가를 생산해내야 한다는 생각, 시간을 내가 뜻한 바대로 꽉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6. 함께 살아감 : 오케스트라에서는 제1 바이올린 연주자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제1 바이올린 주자가 혼자만 연주한다면, 혹은 다른 단원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와 전혀 무관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면 보기에도 이상할 테고 음악 또한 대단히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우리 인간은 다양한 생명체가 있는 풍요로운 자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섬기도록 창조되었는데, 우리는 이 세상을 우리의 욕망과 관심을 펼칠 배경 정도로만 여기고 우리만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지 못한다면, 우리 자신을 잃어버릴 것이고,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가운데 받게 되는 우리의 진정한 자리를 잃어버리고 된다는 것이다.
8. 묵묵히 함께함 : 가룟 유다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맛디아가 뽑혔지만, 사도행전은 이후 그에 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는다. 맛디아처럼 존재감 없는 이가 바울의 회심과 선교라는 위대한 연대기의 배경과 여백을 채우고 있다고 본다. 유다 같은 비극적인 삶, 바울 같은 열정적인 삶 곁에는 언제나, 반드시, 맛디아처럼 묵묵히, 그냥 그 자리를 지키는 삶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있는 자리를 지키며 작은 변화를 만드는 일, 집에서. 온라인에서, 어디서든, 작은 배려와 친절을 남에게 베푸는 일, 그들이 혼자가 아님을 믿게 해주는 일은 위대한 일이라고 말한다.
14. 제2의 본성 :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사람이 되라”(롬12:2)는 바울의 말은, 다른 사람을 밟고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는 욕망을 버리고, 분노와 경쟁심을 줄이는 새로운 습관을 익혀서 우리 몸에 제2의 본성이 되게 하라는 뜻이다.
21. 생명의 품 : 유명 인사들의 인터뷰를 보면,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느냐고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이런 질문에는 삶의 목적이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동서방 기독교는 성모 마리아가 세상을 떠난 것을 축일로 기념한다. 서방교회는 구름을 타고 올라가 아들에게 왕관을 받는 모습을 화려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반면에 동방교회의 성화에서 마리아는 가도들에게 둘러싸인 채 침대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성화 속 마리아는 그저 힘없는, 갓난아이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출발한다. 우리가 삶의 마지막에 다다라야 할 상태란 그저 갓난아이와 같은 단순함에 이르는 것이라면 어떨까 라고 묻는다.
26. 집단정신 : ‘집단 정신’(herd mentality), 즉 우리가 서로 함께 지성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며 서로를 위해 행동할 때 우리의 병은 치유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우리 인간 공동체, 우리 기독교 공동체는 함께 자유로이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또 함께 행동할 수 있을까를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모두가 회복을 위하여 방법론에 빠져 있을 때, 이 책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정신과 가치를 노래하고 있다. 위드 코로나 시대에는 단순한 삶, 더불어 사는 삶, 타인을 돌아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리는 모두 서로가 필요함을, 내 이웃의 안전, 안녕이 곧 내 삶의 안전, 안녕과 직결된 문제임을 깨달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권종철 목사 (예수마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