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의 끝
<엔드 오브 타임>, 브라이언 그린, 박병철 옮김, 매래엔, 2021
영원이라는 말을 가끔 씁니다. 그런데 정작 영원이란 말은 이해하려고 진득하게 노력하면 할수록 더 멀어집니다. 그러니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보다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이 적어도 몇억 년 정도는 솔직한 말이겠습니다. <엔드 오브 타임>의 저자인 브라이언 그린은 어린 시절부터 오래 지속될 무언가를 추구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시공간과 자연의 법칙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물리학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 책에서 얘기하는 것은 짧음입니다. 저자가 밝히는 이 책의 목적은 ‘지금 여기’의 특별함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를 위해 우주 초기의 혼돈으로부터 생명과 마음이 탄생한 과정을 설명합니다. 138억년 전으로 돌아가 빅뱅과 인플레이션, 다양한 천체들과 무거운 원자들의 탄생, 분자진화와 생명 탄생에 이르는 설명은 과학에 관심이 적은 분이라면 속도를 내서 읽기가 힘들 정도로 자세합니다. 그러나 양자역학이나 우주론에 관심이 있는 분에게는 책의 상당 부분이 TMI(too much information)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창조에서 구조체, 생명, 마음, 상상, 신성, 숭고함으로 이어지는 참신한 구성과 각각의 주제들 속에서 얻는 과학적 지식과 인문학적 자극이 적지 않습니다.
저자는 과학자이기에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우주를 바라봅니다. 저자가 바라보는 우주의 결정적 요소는 입자와 장, 물리 법칙, 그리고 초기 조건뿐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시작 등 많은 것을 시간과 우연에 기대 설명합니다. 저자가 바라보는 세상은 작은 입자들의 조합입니다. 뇌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입자들의 지금은 직전의 조건들이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결정론적입니다. 그럼에도 저자가 사람에게 자유의지가 있는지, 책임과 의미가 있는지 설명하는 부분은 무척이나 진지합니다.
저자는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자세히 다룹니다. 무질서도가 증가한다는 내용의 그 법칙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들이 꽤 있습니다. 별과 생명이 대표적입니다. 저자는 작은 ‘계’ 안에서는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도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이를 엔트로피 2단계라 이름합니다. 그 설명이 조금 길다 싶었지만, 후에 많은 것이 엔트로피 2단계와 결부되어 설명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엔트로피라는, 세상을 보는 한가지 눈이 더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엔트로피의 결국은 별들의 죽음입니다. 저자의 말처럼 태양이 적색거성이 되어 행성들을 삼키거나 흩어버리고 별들이 핵융합의 원료를 다 소진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 우주에 빛나는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때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자마저 흩어진 우주가 그렇게 얼마를 더 존재할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별이 빛나는 우주는 우주 전체의 시간에 비하면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에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저자 말마따나 우리가 존재하는 짧은 시간은 우주의 역사를 통틀어 매우 희귀하고 특별한 시간입니다.
저자는 한 소극장의 관객 토론회에서 받은 질문의 영향으로 ‘방정식과 수학 정리, 그리고 물리법칙은 진리에 다가가는 방법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음을 깨달았다’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질문을 나누며 글을 마칩니다.
“당신은 인간의 목숨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군요, 그렇다면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당신이 1년 후에 병으로 죽는 것하고 1년 후에 전 인류가 멸종하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더 무서운가요?”
김국진 목사 (산돌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