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움직이는 향기의 힘
<마음을 움직이는 향기의 힘>, 로베르트 뮐러-그뤼노브 지음, 송소민 옮김, 아날로그 글담, 2020
학교를 졸업하고 화장품회사에 연구원으로 입사를 했다. 당시에 3개월 신입사원 교육을 받으면서 근무할 연구팀을 선택하게 된다. 연구소에는 여러 연구팀이 있었다. 그중 향료연구팀은 향료연구에 적합한 연구원을 뽑기 위해 향기능력테스트를 하였다. 나는 미지의 냄새를 알아맞히는 능력이 없어 향료연구팀에 배정되지 않았다. 그 후 후배들 중 향료연구팀에 배정받은 연구원의 향기능력테스트 성적을 보니 그들은 매우 탁월한 냄새장이 즉 개 코를 갖고 있는 인간들이었다. 화장품에서는 한국 여성들은 화장품에 향기가 있는 듯 없는 듯해야 했다. 그래서 화장품 향이 더욱 중요한 영역이다. 그래서 당시 많은 사람들이 향수 또는 향에 대하여 잘 모르는 시절이 때문(지금도 그렇지만)에 향료연구원들은 향을 연구한다는 자부심이 강하였다.
나의 향에 대한 경험을 살려 <마음을 움직이는 향기의 힘>이란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책은 향의 기본부터,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 및 식품∙의료∙건축∙자동차 산업까지 ‘향기는 어떻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하여 여러 과학적 시험, 실례를 들어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아주 많이 언급되는 영화가 있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영화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소설을 바탕으로 감독 톰 튀크베어가 2007년에 개봉한 영화다.
나는 영화로만 내용을 접했다. 아마 많은 이들도 책보단 영화로 책 내용을 접했을 것 같다. 내용 중에 더스틴 호프만(주세페 발디니, 늙은 조향사역)이 경쟁자의 향수를 카피하는 장면과 주인공인 벤 위쇼(장 바티스트 그르누이, 주인공역)가 늙은 조향사의 지시에 따라 꽃잎으로부터 정제향(essential oil)을 추출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그리고 후반부 주인공이 그라스에 가서 꽃잎을 굳은 동물성 기름에 냉침한 후 역시 정제향을 뽑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를 보았다면 이런 장면을 기억하면서 책을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샤넬 No5의 마를린 몬로도 생각하면서…
이 책은 향기 콘셉트 및 향 공학 개척자인 뮐러-그뤼노브라가 저술한 책으로서 지금보다 후각을 더 발달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향기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연구하며, 우리 일상에 적용하려는 시도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향수는 세 가지 향 즉 top note, middle note 그리고 base note로 구성되어 만들어지는데, 책도 top note(향기와 인간), middle note(향기의 역사), base note(향기의 영향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향기와 인간’에서는 인간의 5가지 감각 중 후각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하게 언급한 한 가지를 소개하면 ‘향기는 기억을 일깨운다’이다. 아름다운 순간과 썩 좋지 않은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향에는 우리 내면에 깃들어 있는 갖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어렸을 때 맡았던 된장찌개 냄새와 비슷한 냄새를 맡으면 할머니/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된장찌개가 생각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데 같이 탄 여성의 샴푸향으로부터 옛 애인을 불러내기도 한다. 향기가 첫인상을 좌우하기도 한다. 은행에 어울리는 향을 개발하여 그 은행에 사용하였을 경우 그렇지 않은 은행에 비해 만족도 높았다는 실례도 제시하였다. 위험도 냄새로 감지할 수 있다.
오늘날 사용되는 천연가스는 무색무취이다. 가스관이 새는 경우에 위험을 알릴 목적에서 가스에 이른바 부취제(냄새가 강한 물질)을 첨가한다. 식품에서는 유통기한이라는 것이 있다. 그 기한이 지나면 섭취가 가능한데도 유통할 수 없다. 그래서 버려지는 식품이 독일의 경우 전체의 1/3이 된다. 이를 줄일 수 있는 방법 하나로 저자는 ‘음식물에 대한 당신의 후각을 믿으라’고 조언한다. 우리가 냄새를 인지할 수 있으려면 냄새분자가 메시지를 뇌에 전달해야 한다. 콧구멍 상부에 위치한 후각세포에 냄새분자가 붙으면 전기신호가 발생하고 이 신호를 뇌가 받아들인다. 코로나의 증상으로 미각과 후각이 없어진다고 한다. 미각이 손상되었는지 아니면 후각이 손상되었는지 아니면 두 감각 모두 손상되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냄새를 맡을 때에만 맛을 느낄 수 있다. 맛의 20%는 혀에서 느끼고 80%는 후각을 통해 느낀다. 초록색의 고추장을 상상해 보라. 푸르스트 효과 또는 마들렌 효과라는 것이 있다. 운동을 하거나, 무엇에 놀래 무서울 때 땀이 난다. 땀은 죄가 없다. 99%는 물이며 나머지가 단백질 아미노산 등인데 이를 몸에 있는 미생물이 먹이로 한 후에 부티르산 또는 메틸핵산을 내어 이것이 몸 냄새가 되는 것이다. 이런 냄새들이 여러가지로 모여 사람을 만날 때 상대에 대하여 첫인상을 결정하게 한다. 결론적으로 ‘향기와 인간’은 인간이 진화하고 사회성을 갖는데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두 번째 ‘향기의 역사’에서는 향기가 시대별로 어떻게 변화되고 산업적으로 이용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향기는 목적과 쓰임에 따라 변화해 왔다. 향수의 역사는 인류만큼이나 오래되었다. 불을 발견함으로써 탈 때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향수Parfume’의 어원도 라틴어 ‘per fumum’ 즉’연기에 의해’라는 뜻이다. 향은 종교적, 신화적인 의식과 관계되었고 여러 고대문명에 향을 만들고 사용했다는 증거는 무척이나 많다. 우리가 아는 클레오파트라도 자신의 매력을 높이기 위해 고급 향유를 사용했다. 클레오파트는 자신의 배에 지신의 향을 발랐으며, 요일마다 다른 향을 만들게 하였다. 아마 카이사르를 유혹하는데 미모만이 아니라 향도 한몫하였을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출신 화학자 타푸티 Taputti는 세계 최초의 조향사로 알려져 있으며, 페르시아에서 증기 증류법을 개발하여 꽃으로부터 향오일을 얻게 되어 향수를 만드는 시대가 열렸다. 중세시대에는 교회가 오랫동안 향수 사용을 부정한 행위로 죄악시했다. 그러나 향수의 사용을 막을 수 없었다. 1190년 프랑스 존엄왕 필리프 2세가 향수 장인 길드를 법률로 승인하였다. 페스트가 창궐할 때도 향이 점염병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당시 목욕탕에서 감염이 많이 일어나 물에 의해 전염된다고 믿어 목욕을 하지 않게 되어 몸의 악취 때문에 향수를 사용하게 되었다. 근대의 향수는 프랑스에서 만들어졌다. 메디치 가문 출신 카트리나 폰 메디치는 프랑스왕 앙리 2세의 왕비가 된다. 그녀는 가죽장갑을 좋아하여 가죽 장갑의 냄새를 가리기 위해 향을 사용하였다. 원래 가죽 가공 중심지인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그라스에서 가죽의 냄새를 가리기 위한 향이 만들어졌는데 현재까지도 향수의 메카인 것이다.
프랑스의 루이 14세 15세 때는 몸을 거의 씻지 않았기 때문에 궁전에 어떤 냄새가 진동했는지 상상할 수도 없다. 루이 14세의 가신이 2만 명이니 이들이 사용한 향수는 어마 어마한 양이었고 이를 통해 향수는 산업으로 발전하게 된다. 19세기 초 향수는 주로 천연재료, 머스크, 용연향, 사향 같은 동식물의 부산물로 제조되었다. 계몽주의에 의해 위생상태가 개선되어 향수는 점점 가벼워지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향수는 귀족 전유물에서 점점 시민계급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최초의 스타 조향사인 피에르-프랑수아 파스칼 겔랑(Pierre-Francois Pasacl Guerlain)는 향기의 고전이라는 Eau Imperiale 만들어 공급하였다. 그 후 코코 샤넬, 크리스찬 라크르, 크리스찬 디올 같은 우리가 알고 있는 패션디자이너도 향수 산업에 뛰어 들었다.
향수는 천연재료에서 합성재료로 변하게 되었다. 값을 낮추기 위해, 천연재료 사용에 의한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합성물질 사용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1921년 코코 샤넬의 샤넬 No.5가 향수의 아이콘이 되었고 대량 소비재로서 시대가 열린 것이다. 향은 세 단계 노트로 만들어진다. 탑 노트 미들 노트 베이스 노트이다. 탑 노트는 첫인상을, 베이스 노트는 향수를 사용한 사람의 피부와 연결되어 최종의 냄새를 결정짓는다. 미들 노트는 탑과 베이스의 조화를 결정 짓는다. 결국 같은 향이라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냄새는 달라지게 된다. 책에서는 향수를 고르는 간단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음). 향기는 분위기 즉 공간을 디자인할 수 있다. 향초나 디퓨저를 사용하는 것이 그 예다. 향기가 분위기(청결한, 편안한 등)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무실, 매장 등에 향기가 사용되고 있다.
세 번째 ‘향기의 영향력’에서는 향기가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몇몇 향은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것이 진정효과가 있는 라벤더이다. 페퍼민트는 냉기 수용체에 영향을 주어 몸을 차갑게 느끼게 한다. 반대로 고추향은 덥게 느끼게 한다. 이런 향을 실내에 적절히 사용할 경우 환경보호라는 측면에서 실내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 수면도 향기로 조절할 수 있다. 재스민향이 이런 역할을 한다. 레몬향은 청결함을 느끼게 한다. 전문적으로는 향이 인간의 정신에 작용하여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주어 선한 행동을 유발하게 한다. 오렌지향 혹은 바닐라향이 주변사람들을 돕는데 영향을 준다고 한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그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해 입체음향, 움직이는 의자, 3D 영상 외에 향기를 사용하는 시도가 있다. 아직 기술적으로 보완해야 할 것이 많지만 영화관에 후각을 포함한 오감을 입히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앞서 영화 ‘향수’를 언급하였다. 개봉 당시 영화에 등장하는 향수를 세트로 개발하였다. 슈퍼마켓에 감각적인 향기를 뿌리면 어떻게 될까? 냄새가 지갑을 열게 한다는 실험적 증거들도 나오고 있다. 갓 구운 빵 냄새가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빵집을 마켓 입구 쪽에 위치하게 한다. 백화점 1층에 화장품 판매대가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삼성은 2004년 흰색과 파란색의 삼성 브랜드에 어울리는 향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자동차 회사도 자동차에 어울리는 향을 개발하려고 하고 있다.
향과 인간의 관계, 향의 역사, 향의 영향력을 통하여 저자는 향의 힘을 독자에게 설명하고자 했다. 우리에겐 5감이 있다.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이다. 이 책에서는 주로 후각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 인간에겐 5가지 모두 같이 협동하여 작용한다. 이를 공감각(共感覺, synesthesia)이라 한다.
여기서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감각의 박물관, 작가정신)’의 도움을 받아 이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촉각은 최초로 점화되며, 가장 마지막에 소멸되는 감각이자 신뢰의 감각이다. 후각은 심금을 울리는 감각이며, 자연과 세상을 느끼는 감각이다. 청각은 평화, 풍요의 감각이며, 경청은 지혜를 나타나게 하는 감각이다. 시각은 객관화를 가능케 하는 감각이며, 그러기 위해선 일정한 거리두기가 필요한 감각이다. 이 5가지 감각은 혼합된다. 한 감각을 자극하면 다른 감각이 자극을 받는다. 본질적으로 사람의 감각들 즉 오감은 그 감각들이 뒤섞인 ‘공감각’이다.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는 ‘소리는 향기로 번역될 수 있고 향기는 시각으로 번역될 수 있다. 소리의 채색화도 가능하다!’고 하였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살갗에서는 더없이 기분 좋은 냄새가 났고, 온몸과 입에서 향기가 뿜어져 나와 입고 있던 옷에 밸 정도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과연 나를 향기로 표현한다면 어떤 향이 일까? 나만의 향은 냄새 그 자체만이 아니라 나의 모습, 나의 행동, 나의 모든 것과 함께 공감각적인 방법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를 향기로 표현하면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후각은 시각, 청각보다 과학적으로 덜 밝혀졌다. 향후 후각 연구는 우리에게 많은 활용성을 부여할 것이다. 향에 대한 관심을 통해 우리가 더 좋은 삶을 누리길 바라며, 마지막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감각훈련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의 느낌, 감성, 감각의 로직이 작동하려면 세상을 향해 오감을 열어야 한다. (Opening the sense!) 그러기 위해서는
시각훈련 = 내면의 극장 만들기,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1주일간 하루에 최소 5분씩 살핀다. 매일 밤 잠자리에서 낮에 본 그림의 세밀한 부분까지 떠올린다.
청각훈련 = 고요에 귀 기울이기, 잘 들으려면 침묵과 고요에 들어간다. 숨소리 바람소리 등 소리의 세계를 재 발견하려면 침묵하라
후각훈련 = 아로마테라피(향기요법), 하루에 1회 이상 천연향에 후각을 정화시켜, 다시 깨어나는 느낌을 만끽하라. 냄새에 무디어진 현대인 후각기능을 복원시켜라.
미각훈련 = 맛 음미하기, 만개이상의 미뢰로 구성된 인간의 혀가 느낄 수 있도록 천천히 먹어라.
촉각훈련 = 상상하면서 더듬기, 다른 감각을 최대한 off시켜 촉각을 극대화시켜라.
김종일 (독성학 박사, 비앤에이치웍스(화장품 개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