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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8-23 00:30
   
영혼을 탐구하는 사람들
 글쓴이 : dangdang
조회 : 4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028 [111]


 

영혼을 탐구하는 사람들

 

<영혼의 순례자들>, 존 웰치, 한국기독교연구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늘은 초월의 장소이다. 예수님의 기도문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은 무엇보다 크신 하나님이다. 사람을 초월하여 계시는 하나님이다. 그러나 사람이 초월의 하나님을 인지하는 장소는 내면이다. 복음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십자가를 거쳐, 사람의 내면으로 오셔서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소식이다. 성경에서는 이 내면을 영혼으로 표현하고, 심리학에서는 의식과 무의식으로 표현한다. 눈으로 보이거나, 손으로 잡혀지는 실체가 아니기에, 표현의 모호함이 있지만, 그 존재만은 확실하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필요한 것 중에 하나는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는 우리의 내면,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가는 우리의 내면에 대한 탐구이지 않을까. ‘영혼의 순례자는 인간의 내면을 탐구했던 칼 융의 이론과 영혼 안에 계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추구했던 아빌라의 데레사의 글을 통해 우리 내면에 대한 탐구로 사람을 초대한다.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게 된 후, 생겨난 한 가지 소원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었다. 이 갈망은 회심을 경험한 이후, 나를 지속적으로 사로잡았다. 어떻게 사람이 의식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하나님과 함께 하루의 삶을 채워갈 수 있을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예수님의 기도를 어떻게 나의 삶에 실현할 수 있을까. 이러한 갈망은 사람의 내면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나보다 먼저 그러한 탐구에 힘을 기울였던 사람들은 어떠한 열매를 거두었고, 어떠한 내적 여정의 지도를 가지고 있을까. 각자가 표현하는 단어의 모호함으로 인해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이를 각오하고서라도 또다시 영혼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고 싶었다.

 

, 데레사, 두 사람은 내면의 여정을 이미지로 표현했다. 내면의 모호성으로 인해 내적 경험을 논리의 언어보다는 상징의 언어로 드러내고자 했다. 이들은 중심을 향한 여정이라는 이미지로 자신들의 작업을 표현했다. 융은 종교성을 덜 드러내며, 자신의 중심에 있는 자기(self)를 만나는 여정으로 표현한 반면, 데레사는 영혼의 궁성, 그 중심에 계시는 하나님과 온전한 연합을 이루어가는 여정으로 표현하였다.

 

그 과정에서 마주해야 하는 단계들이 있다. 우리가 사회적 역할에 따라서 쓰고 있던 가면(페르조나)을 의식하고, 이와 분리되는 일이다. 사회적 역할 속에서는 필요한 것이었지만, 내면의 여행에 있어서는 참다운 자기 자신과 페르조나의 구분이 필요하다. 다음은 의식 이면으로 나아가야 한다. 심리학에서는 무의식의 세계라고 표현한다. 의식 이면의 세계라고 할 수 있겠다. 융의 표현에 따르면, 그 곳에서 그동안 억눌러 두었던 자신의 그림자를 만나게 된다. 이를 직면하고, 인정함을 통해, 이로부터 해방되면서, 애벌레가 고치를 벗고, 나비가 되듯, 새로운 영혼의 상태로 나아가게 된다. 데레사의 표현에 따르면,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삶의 골짜기를 넘어가는 과정이다. 이 여정의 끝에 이르면, 사람의 양성의 이미지가 서로 마주하고, 화해를 이루고, 온전한 사람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인간성을 소유하게 된다. 실제적으로 이 여정에 완성은 없다. 우리를 부르시는 손길을 신뢰하며 점점 새로워지는 순례의 여정을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융과 데레사의 영혼의 순례가 내적 순례의 교과서적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전통적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질문이 생기는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내적 참됨을 향한 관심과 이를 위한 탐구는 외적인 기준에 의해 모든 것이 판단되고, 외적인 성취를 삶의 목표로 삼는 시대에 삶에 대한 새로운 판단기준과 삶의 목표를 줄 수 있다고 본다. 더불어 기존의 교회에서 이루어지던 기도와 성경 묵상 등의 경건생활들이 내적 변화를 위한 것이 아닌 종교적 페르조나를 강화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성찰해보며, 이와 같은 은총의 수단들을 통해 자신의 허울을 벗고, 참됨을 이루어가는 내적 순례가 요청된다.

 

내적 변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외적 변화에 대해서 소극적이라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진정한 내적 변화는 외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 지극한 선과의 만남은 이에 대한 사랑을 창조하고, 그것을 결핍한 세상 속에서 그 선이 이루어지길 원하기에, 때로는 봉사로, 때로는 저항으로 표현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통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 주옵소서라는 기도는 단순한 암송에서 영혼의 외침으로 전환된다. 영혼의 외침은 삶의 자리에서 표현되지 않을 수 없다.

 

영혼의 순례는 삶의 자리에서 중심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향한 운동과 그리스도와 함께 삶의 자리로 나아가는 운동의 끊임없는 반복인 듯하다. 멀리서 보기엔 고단해 보이는 여정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순례에 참여하는 자에겐 치유와 새롭게 태어남의 기쁨이 함께 한다. 찾는 자가 많지는 않지만, 이 순례의 여정으로의 세미한 부르심에 응답한다면, 많은 은총을 누릴 수 있는 여정이 될 것임을 앞선 순례자의 고백을 통해 헤아려 볼 수 있었다.

 

정승환 목사 (한우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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