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융 심리학이 밝히는 내 안의 낯선 나>, 로버트 A. 존슨 지음, 고혜경 옮김, 에코의 서재, 2009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부터 찾아라. 진정한 성장은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칼 구스타프 융-
이 책을 펼치자마자 머리말이 펼쳐지기도 전에 책머리에 적혀있는 글귀이다. 불리한 상황에서 피해가고, 맞닥뜨리지 않으려 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잘 지적해 주었다는 생각도 잠시, 결국은 현대인에게 이야기 하고자 하는 융의 마음을 보게 된다. 우리 자신이면서도 항상 우리 자신의 이면으로 남아있는 그림자의 상징은 우리가 외면해온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가야 함을 암시한다. 새로운 삶의 가능성은 어쩌면 우리가 외면해온 이기적 자아를 버리는 데에서 시작될 것이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그림자, 낭만적 사랑과 그림자 만들라... 분열된 세계를 창조적으로 통합함으로써 치유로 나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저자가 말하는 그림자는 “우리 의식으로 적절하게 통합되지 않고 멸시하는 부분이다.(21)” 삶의 긍정적인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면 받아온 우리 모습이다. 융은 이를 집단 무의식의 차원에서 설명하기도 했다. 외형적으로 발전해 온 인류의 문명이 사실상 방치해온 우리 자신이다. “집단문화는 우리에게 어떤 특정한 양식에 따라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 심리학적 용어로 설명하자면, 자기(self)에서 자아(ego)와 그림자(shadow)가 분리되는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이런 분리가 유증되어 내려온다.”(21) 우리의 그림자에서 금을 발견하는 일, 신학자 틸리히가 말한 것과 같이 보이지 않고 삶의 깊이에서 어둠의 장막이 걷히듯이 조금씩 우리 눈앞에 자신을 현전하게 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 상징을 상처를 치유자의 원형으로 서술하고 있다. 근대 신학자 슐라이어마허는 나사렛 예수를 원형적 인간으로 이해했다. 원형적 인간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실재를 직관하고 감각적으로 느낌으로써 인간 내면에 내재한 초월적 현실성을 담고 있는 존재이다. 그 존재는 죄의식으로 가득한 인간의 내면에 하나님의 구원의 실재가 담겨있음을 분명히 드러내었다. 상처를 치유함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오면서 입었던 다양한 상처들을 무한자로서 하나님의 실재 앞에 내어놓고 치유받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의학이 발전한다 하더라도 인간이 전인적으로 치유받을 수 없는 이유이다. 책에서 저자는 “그림자를 만들어야한다고 한다. 그것은 문명화를 통해사 상실하게 된 전일성을 찾아야 한다.(25)”우리가 사라진 시대에 개인은 독립적으로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저자는 그림자를 찾는 길을 소개하면서 역설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예컨대 그림자를 발견하기 위해서 빛을 더욱 밝혀야 한다는 점이다. 빛이 없으면 그림자는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존재하지 않지만, 빛에 의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근원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빛과 그림자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빛에 속한 삶의 좋은 것, 착한 것 등은 많이 쌓으려고 하지만 그림자에 속하는 심리적 내면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둔다. 그저 공부 잘하는 것이 좋은 것에 속하고,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선에 속하며, 좋은 직장을 가지면 된다는 편협함은 곧 사회의 문제로 대두되게 된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좋으나 내면의 자아를 성장시키지 못했으니 몸만 큰 어린아이이고, 좋은 대학을 갔다는 것이 모든 것을 이룬 것인 양 이야기 하지만 그 내면은 교만과 아집, 다른 대중에 대한 우월함으로 상대를 바르게 보는 눈을 상실한 경우를 많이 보았다. 더구나 좋은 직장이 모든 삶을 풍요롭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사회 현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건과 사고를 통해 우리는 경험한다. 시소처럼 양편의 외면과 내면의 조화를 통해서 만이 성숙한 어른이 될 것이다. “우리 몸이 향상성을 유지하고 산과 알카리의 비율을 조절하고 그 밖에 수많은 평형을 유지하듯이 심리도 이와 같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29)”
그러나 저자가 일상적으로 지적하는 문명중심으로 기울어진 삶의 불균형은 그림자를 발견함으로써 가능해지고 이는 삶을 통전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빛을 필요로 한다. 저자는 이를 인간이해에 대한 융의 기여로 설명한다. 독자로서 자연스럽게 심리학적 용어와 설명으로 곁들여진 내용들을 읽고 있노라면 결국 고백하고 순종하게 되는 것은 우리 속의 내면과 만나는 과정이며, 우리 속의 이야기들을 분리해 내는 객관화된 작업들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한층 성장시키기도 하고 자신의 그림자를 통해 한층 성숙된 자아를 만나기도 한다. “잠에서 깨자마자 나는 이 검은 존재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것은 짙은 안개 속을 걸으며 감싸 안은 불빛으로 생긴 내 그림자였다. 그 작은 불빛은 나의 의식, 즉 내가 가진 유일한 빛이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비록 어두움에 비해 무한히 작고 미약하지만 여전히 빛을 발한다. 이것은 나의 유일한 빛이다. (33)”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빛이란 무엇인가? “그림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광의적 창의를 발휘하도록 하는 힘, 순수 천재성이다.(35)”저자는 그리스도의 상징인 십자가에서 삶의 균형을 이룰 힘을 발견한다. 자신의 죄를 자기 내면에서 발견함으로써 타자에게 죄를 전가하지 않고 책임적으로 존재하는 삶이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배제문화도 사실상 다른 사람에 자신의 증오와 분노를 투영한 결과이다. 학생들이 친구를 따돌리고 폭행하며,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건과 사고들을 접할 때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들이 자아를 바라보는 힘이라도 있었으면... 그랬으면 생겨나지 않았을 일이라는 생각까지 다다르면 속상하기까지 하다. “자기 내면뿐만 아니라 바깥 세계에 존재하는 도시들을 돕기 위해서 그림자 작업만이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좀 더 균형 잡힌 세상을 만드는 유일한 길 또한 그림자 작업이다.(50)” 다른 민족, 다른 인종, 다른 성이 아니라, 자신의 그림자로 돌아가는 것이다. 저자는 희생양이론에서 세계사적 비극의 근거를 발견한다.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외면하고 타인들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전가한 대가라고 저자는 말한다. 더불어 이 책에서 가장 특이하며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심리적 내면의 상태에 이르기 위한 방법이다. 단지 심리적 상담 안에서 내면을 찾고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심리적 안정과 성숙을 가져 오는 것은 신앙을 통한 내면적 통찰과 신과의 만남이라고 말한다. 오직 상담을 통해서만 모든 것이 완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통해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환자가 자신의 상담의사를 해하거나 상담자에게 위협하는 일들은 온전히 그들이 상담을 통해서 나아지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상담과 함께 신앙을 가지며 그 신앙을 통해 내면의 성장이 이루어져 가야지만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삶에 내재된 그림자는 종교라는 구체적인 현실을 통해서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종교는 큰 고통을 초래해 온 분리를 넘어서게 하고 대극에 있는 둘을 다시 묶어주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서로 반대편에 있어 고통을 가중하는 모순에서 벗어나, 반대되는 두 개념을 동시에 즐기면서 둘 다 동등하게 존중할 수 있는 역설의 영역으로 우리가 나아가도록 도와준다.(106)” 타인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투사하지 않고 자신의 현실성으로 받아들이는 힘이 종교에 있다는 뜻이 있다.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는 책의 제목과 같이 내 안에 존재하는 낯선 나와 소통하는 것이 곧 빛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종교는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초월하게 하고 역설의 힘을 가지게 한다. 그 역설은 바로 사랑과 힘으로부터 오는 인간 본연의 자세이다. 그럴 때 우리 내면의 가장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성장을 이뤄갈 수 있으며 우리가 가진 그림자를 감싸 안을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는 것은 책의 서술에 등장하는 인도의 만돌라의 아름다움도 아니고 우리가 역사적으로 살아오면서 선조들이 살아낸 사랑의 삶이고,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생각하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삶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보아 생각하는 것은 대화의 기본이기도 하거니와 우리 내면 속 흐르는 에너지를 꺼내는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대극적인 감정이 펼쳐질 때에 인간은 한쪽을 외면하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존재하는 통일성을 발견하는 신과의 일치로 이해할 수 있다.(111) 오늘을 살아가는 여러분을 근원적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그림자를 발견하고 감싸 안고 어울어질 수 있는 길로 초대한다.
최태관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