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들의 하나님
<우리들의 하느님 권정생산문집>, 권정생 저, 녹색평론사 1996
얼마 전에 광주에서 큰 사고가 있었다.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시내버스를 덮치면서 9명의 승객이 사망했고 많은 부상자들이 생겼다. 엄청난 인재였다. 한국사회에 여전히 만연한 생명경시풍조가 일으킨 참사가 아닐 수 없다. 반복되는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에도 불구하고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또 한 번 우리는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고 싶을지 모르겠다. 왜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실까? 왜 죄 없는 사람이 피해를 당해야 하는가? 그 뒤에 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책임밖에 서 있고 싶은 것은 아닐까?
오늘 소개하려는 권정생 선생님의 “우리들의 하나님”이라는 책은 다시 한 번 우리 시대의 기독교 신앙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권정생이 묘사하고 있는 예수님은 버림받은 자, 외로운 예수이다. 그 예수는 우리의 인생에 외로움을 겪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그리스도는 악인이나 선한 사람의 차원을 떠나 누구든 자신의 십자가의 삶을 지고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모습이다. 해답을 알 수 없기에 그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어울려 살아가는 그러한 존재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신학 서적들을 읽고, 그 책들 속에서 수없이 많은 신학자들과 사상가들을 만났다. 그러나 그가 이 책에서 전하고 있는 예수는 마음에 콱 박히는 우리들의 하나님이셨다. “예수는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예수라는 한 인간의 껍데기가 아니라 그가 고통스럽게 이룩해 놓은 길 진리, 생명을 이어 몸으로 실천하는 삶이다.(59)”
지금껏 다양한 신학적 주장과 씨름해온 필자의 입장에서 그의 주장은 더욱 깊은 곳으로 이끌고 들어가서 근본적 물음을 직면하게 한다. 우리는 어떻게 진정하게 자신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자신만 잘 살면된다는 시대의 풍조 앞에서 우리는 정말 자신을 위한 길을 발견할 수 있을까? 권정생은 이 책에서 우리에게 명확히 말하고 있다. “흙알매를 치면 금방 마르기전에 먼저 겨릅대로 엮은 이엉을 덮는다. 이일은 빠르면 한나절, 늦어도 하루에 다 해치워야 한다. 함께 하는 일, 그것도 따뜻하게 살아가야할 집을 짓는 일을 함께 한다는 것이야말로 평화를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아무것도 혼자서는 하나에서 열 가지 다할 수 없다.. 일을 함께 할때는 외롭지 않다.(61)”
그가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자신의 죽음의 길을 함께 어우러지는 길이었기에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었을 것이다. 예수의 길에 들어선 모든 이가 생명을 얻었고 자신감을 얻었고 이웃을 온전히 섬겨 그들을 위해서 사는 것이다. 그 길이야 말로 타자에게 자기를 줌으로써 생명에 이르는 강아지똥에서 보여준 생명의 길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의 동화책인 ‘강아지똥’을 읽으면 내 존재에 대한 고귀함과 세상살이에서 소외된 것들에 대한 시선이 다시 열리게 됨을 고백하게 된다. “개구리든 생쥐든 메뚜기든 굼벵이든 같은 햇빛 아래 같은 공기와 물을 마시며 고통도 슬픔도 겪으면서 살다 죽는 게 아닌가. 나는 그래서 황금덩이보다 강아지똥이 더 귀한 것을 알았고 외롭지 않게 되었다.(20)”
이 책 119페이지를 보면 그 가장 좋아한다고 성경구절 이사야서 11장을 소개한다. 평화로운 공존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 구절에서 작가는 자신을 위해 다른 것을 희생시키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나의 생명을 희생하는 길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길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세상살이에서 교회는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하물며 교회를 잘 다니던 사람들도 가나안 교인이라는 명목 하에 교회를 등한시 하고 멀리하게 되었으며,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마저도 본인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기에 바쁘다. 결국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을 그리 만들어 왔고, 만들어 가고 있다. 나만을 위한 길이 곧 우리 모두의 삶을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과 같이 많은 분들이 권정생 선생님의 책을 읽고 우리들의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소망해본다. 그가 묘사하고 있는 예수님이 사신 삶을 바라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여유에 잘 맞지 않음을 금세 우리는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책 우리의 양심을 들여다보게 하고, 우리의 내면 속 하나님의 존재를 일깨워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의 책의 매력이자 힘이다. 내가 지금까지 함께해 온 책 속의 수없이 많은 신학자들과 사상가들의 그 어떤 사상보다도 우리의 내면을 깨워주고 우리의 삶과 함께했던 그의 삶의 글들이 우리에게 와서 박히는 이유이겠다. 그렇게 된다면 저자의 말과 같이 시한부 종말을 기다리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없지 않을까? 더는 이 세상에 인재로 인한 비극이 없기 소망하고 기도한다. 우리들의 하나님께...
최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