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자끄 엘륄 지음, 김은경 옮김, 대장간, 2010)
교회에서 성탄절 전구 장식을 하다가 어떤 전구를 보고 망설였다. 십자가 모양의 전구였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리는 날에 예수님에게 고통과 죽음을 준 형틀 모양을 걸어두는 것이 영 찜찜했지만 부족한 예산과 시간을 핑계 삼아 그냥 걸었다. 누가 뭐라고 트집잡을까봐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요상하게 복잡해진 이유는 오히려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십자가는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 것일까? 인터넷에서 서울의 밤 풍광을 담은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불이라도 난 것처럼 수없이 많은 십자가가 붉게 빛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그 모습이 뿌듯하기보다 묘하게 민망했던 이유는 적어도 십자가가 오늘의 기독교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겠다.
사람들은 그 사진을 보고 왜 경악하거나 조소하는가, 누구의 탓인가? 무거운 마음으로 이 질문을 인수분해 해봤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는데 신앙을 저세상을 위한 보험쯤으로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예수님은 당신이 가르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의 족보가 복음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예수님이 광야의 시험에서 거부한 육신의 만족과 명예와 재물이 삶의 목표인 사람은 누구인가? 성령 받으면 저절로 되는 것처럼, 쉬운 믿음, 쉬운 사랑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통당하신 예수님을 수단 삼아 더 움켜쥐고 누리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신앙을 개인의 마음에 가둔 사람은 누구인가? 인수가 많다. 다 쓰지 못하겠다. 역시 어려운 문제다. 기독교를 망칠 의도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럼에도 지금 개신교가 지탄을 받는 것은 예수님과 복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굽은 탓이겠다. 내 탓은 조금도 없다는 사람 탓이 크겠다.
요즘엔 휴대폰에도 성경이 들어있다. 그렇다고 휴대폰이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다. 복음은 어떻게 복음이 되었을까? 인간의 삶 외에 복음이 복된 소식일 수 있도록 담아내는 것이 또 있을까? 사람들은 삶에 담기지 않은 복음을 만나면 조소한다. 복음이 자신의 삶이 아닌 다른 곳에 외따로 담겨 존재하기를 바라는 정서는 자신의 부족한 삶이 복음에 생채기라도 낼까봐 걱정하는 겸손만은 아닐 것이다. 예수님을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 마음과 따르기를 포기하는 마음의 경계는 책꽂이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옛 버전의 성경책을 처분하기가 애매한 것만큼 애매모호하다.
우리는 예수님이 완전한 하나님이요 완전한 인간이라고 쉽게 고백한다. 그런데 마음으로는 어느 한 면을 더 지지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예수님을 저마다 다르게 생각하고 그에 따라서 신앙의 양상도 가지각색이다. 예수님은 어떤 분일까? 예수님이 어떤 가식이나 술수도 없이 인간 조건을 모두 다 있는 그대로 감당하셨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자끄 엘륄은 그의 저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을 통해 예수께서 받은 고통과 유혹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예수님을 전 인격 차원에서 파악하고자 한 그의 깊은 연구와 묵상을 통해 예수님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새롭게 접근하거나 더 잘 알게 된 성경의 구절이 적지 않다.
승리나 해결이 보장된 문제는 진정한 시험이 될 수 없다. 성경의 내용처럼 예수님이 시험을 겪으셨다면 그 시험은 예수님에게도 심각한 유혹이어야만 한다. 자녀를 기르며 부모님의 사랑을 깨달아가는 사람은 쉬운 사랑이 없다는 것을, 몇 번이고 뼈가 저리도록 느꼈을 것이다. 예수님이 거부, 조롱, 외로움, 단절, 피곤함, 굶주림, 배신, 고통, 죽음과 큰 사랑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얼마나 불경한 것인가? 예수님이 겪은 아픔들은 우리에게 그 무엇일까? 유혹과 고통이 그치지 않는 사람의 삶을 지나는 동안 예수를 더욱 잘 알고, 더 잘 믿고 따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김국진 목사 (산돌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