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의 탄소발자국
<거의 모든 것의 탄소발자국>, 마이크 버너스리 지음, 노태복 옮김, 도요새
우리는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재난의 시대를 살고 있다. 올해 초 발표된 ‘지구 종말 시계’는 종말을 뜻하는 자정까지 남은 시간을 100초를 가리켰다. 코로나로 작년과 같은 수치였는데, 지금껏 이 시계를 당겨온 원인은 기후변화 곧 탄소 배출임에 틀림없다.
전 세계는 올해부터 30년, 아니 10년 이내에 탄소 기반의 문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래야 지구 평균 기온상승 폭을 1.5~2도로 제한하고, 점점 더 강해지는 폭염, 폭우, 폭풍에다, 가뭄, 대형 산불, 홍수 등 기후 재앙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대로 탄소배출을 계속한다면, 80억의 인구를 감당하며 신음하고 있는 지구는 더는 지속가능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지구가 지속 불가능해지기 전에,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위기 안에 내재된 불평등이 점점 커져 사회적 갈등을 부추겨 이 사회가 유지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어떻게 해야 지금의 탄소 문명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까? 탄소 사회와 종말을 고하려면 우선적으로 무엇이 필요한 걸까? 지금 당장 필요한 것 한 가지를 꼽으라면 그것은 ‘탄소 감각’이다. 기후위기 시대 탄소 감각을 갖추는 것은 경제 감각이나 패션 감각을 갖추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마이크 버너스리가 쓴 ‘거의 모든 것의 탄소발자국’은 탄소 문명의 종말을 꿈꾸는 이들에게 일상의 ‘탄소 감각’을 기르는 길로 안내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탄소’하면 에너지만 생각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일상에서 마주치는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한 ‘탄소발자국’을 알아챌 수 있다. 문자 한 건, 이메일 한 통, 물 끓이기, 생수 한 병, 시멘트 1kg, 바지 한 벌, 휴대전화, 새 자동차, 집 한 채, 삼림벌채, 전 세계의 데이터센터 등 93가지의 영역에서 배출되는 탄소에 대한 설명을 가볍게 따라가다 보면, 일상과 사회는 물론 국가, 전 세계적 차원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합리적으로’ 어림할 수도 있을 듯하다. 가정과 직장, 학교와 교회에서 함께 읽고 토론한다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지구를 위한 시간’에 감당해야 할 분별력 있는 행동계획을 세워 함께 이루어 갈 수도 있으리라 기대한다.
탄소의 관점에서 세상을 다시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우선은 탄소 배출의 상당량을 차지하는 에너지 부문에서부터 탄소의 흔적을 추적하고, 내게 허락된 것 이상의 탄소를 배출하는 행위를 멈추는 연습을 해보자. 무엇을 할지 살피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탄소 중립과 에너지전환 교회’ 교육워크숍을 열어보는 것도 좋다(문의 : ecochrist@hanmail.net).
1인당 탄소 배출이 세계 4위인 우리나라에서 ‘탄소 감각’을 살려 무언가 하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정부의 탄소 중립은 선언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역사적 책임만큼 목표를 세우지 못했고, 이행에 대한 강한 의지도 부족해, 선언으로 그칠 위험성이 크다. 하지만 2050 탄소 중립은 전 세계가 모두 이뤄야 할 목표, 공동의 지향점이니 함께 매진해야만 한다. 탄소 감각을 살려 최선을 다하면서, 달성목표를 차츰차츰 높여간다면 유의미한 전환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루 동안 지구에 남긴 탄소의 흔적, 우리가 거의 모든 것에서 남기는 탄소발자국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나라 한 사람이 배출하는 탄소 배출량이 사우디, 미국, 캐나다 다음으로 많은데, 세계 평균(4.8t)의 2.5배(12.4t)가 넘는다. 얼마를 배출하는 것이 적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거의 모든 것의 탄소발자국’은 영국 기준으로 한 사람이 연간 10톤의 탄소 생활을 할 것을 제안한다. 그에 필요한 정보와 판단 기준도 제공되고 있는데, 여기서 10톤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야기하는 생산 유통 단계에서만의 직접 배출만이 아니다. 물건을 생산할 때 원료를 채취하고 처리하는 과정 일체, 즉 간접 배출량까지 포함한 소비 내지는 배출 기준이었다. 당시 영국이 직간접 배출 총량은 15톤이었고, 직접 배출량만 따지면 8톤 정도였다.
우리가 탄소 중립을 염두게 두고 적정한 탄소 소비의 기준을 세운다면 얼마가 적정할까? 2030년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0%가 이주민이 될 것이라고 하는데, 나와 내 후손이 잘 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정말 코로나와 기후 위기를 잘 건너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은 오늘 하루 지구에 남긴 흔적에 관심을 가지고 매일매일 나와 우리 사회가 남기고 있는 탄소발자국을 꼼꼼히 살피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우리가 배출하는 탄소가 전 세계 사람들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세대, 지구상 모든 생명의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다.
누구도 탄소 배출 없이 살 수 없다. 먹고 마시고 소비하고 입고 이동하고 일하는 모든 순간에서 배출하는 탄소에 대한 감각을 살려보자. 그러면,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후 재앙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로 여겨 함께 행동할 것이다. 내일의 일이 아니라 오늘의 일로 여겨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행동을 함께할 것이다. 그러면 오늘이 조금은 더 풍요롭고 정의로울 수 있을 것이고, 오늘이 달라지면 내일의 지구 또한 복원되는 기쁨도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유미호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