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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4-14 18:24
   
나는 땅이 될 것이다
 글쓴이 : dangdang
조회 : 21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5348 [187]


 

나는 땅이 될 것이다

 

<한 권으로 읽는 이오덕 일기>, 출판사 양철북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니라” (18:15-17).

 

예전에 이오덕 선생님의 글을 처음 읽은 것은 글쓰기에 관련된 책이었다. 아마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라는 책이었을 것이다. 글을 쓰는데 별로 소질이 없는 나는 그분의 책에서 글쓰는 법을 배우려고 했다. 왜냐하면 그분의 글은 맑고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이 복잡할 때면 늘 그 마음을 글로 쓰다 보니 글 안에 복잡함만 남아있고, 때로는 정리되지 않는 책상처럼 그렇게 혼란했던 마음에 그분의 글은 정리하는 하는 법을 알려주는 듯했다.

 

예전에 전도사 사역을 할 때 나는 항상 어린이 사역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분의 글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바로 오히려 아이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늘 소개하려는 책에서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것 바로 순수한 마음이다.

 

나는 땅이 될 것이다는 그의 일기를 읽으면서 그분 생애에 드러난 어린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병들어가는 글쓰기를 보면서 건강한 글을 쓰는 법을 고집했던 것은 아마도 순수한 어린이의 마음 때문이지 않았을까 한다. 일기를 통해서 표현되고 있는 그분의 삶은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어린이의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아동문학 작가로서, 어린이를 살리는 참교육을 추구하는 교육운동가의 삶이다.

 

어린아이의 마음을 깨닫고 그 마음을 지키고자 교육에 애쓰던 시기, 그때 얻은 가르침으로 어린아이의 마음을 표현하던 우리말 글쓰기를 알리던 작가로서의 시기, 그 마음을 제대로 발현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을 만들고자 고민했던 참교육운동가로 살았던 시기, 자연과 벗 삼으며 죽음을 준비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들이 모여 큰 일기가 된 것이다.

한편으로, 이오덕 선생님이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선생의 역할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곧 매일의 일기에 표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하는 교육관은 아이들을 살리는 교육이다. 아이들이 쓴 시에서 어린이의 마음을 발견하고 이를 살리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의 학교 교육이 얼마나 창의성을 죽이고 있는가를 알 수 있고 아이들이 물체의 모양을 그리지 못하는 것도 날 때부터의 그 천성을 그만 여지없이 짓밟아 죽여 버린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연필이나 볼펜을 주어 색채를 떠난 물건의 모양이나 사람의 움직임을 그리게 함으로써 이렇게 죽어버린 아이들의 창의성을 다시 살릴 수 있지 않을까?”(101)

 

이 분의 글에 나타난 아이들을 경쟁의 장으로 몰아내고 자신의 삶보다는 타인들의 기준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잃어버리는 아이들에게서 어른들의 사회적 폭력을 인지하게 되었다.

 

첫 페이지에 나오는 나의 꿈이라는 글이 마음에 와 박힌다. [나는 올해가 일흔이 꽉 찬 나이인데도/ 아직도 어린애 같은 꿈을 꾸며 살아간다/ 산속에 가서 한 포기 풀같이 살아가는 꿈/ 산속에 가서 한 마리 새같이 살아가는 꿈...<중략>] 선생님이 평생을 몸담았던 교편에서의 삶이, 아이들의 순수한 열정의 힘을 받아 평생을 순수하게 사실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다른 한편, 그의 글은 모든 생명에서 어린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토끼 한 마리의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은 700명의 아이들 생명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다.”(65) 세월호 참사의 희생된 아이들이 생각났다. 어른들의 무책임한 행동이 일으킨 사회적 참사는 아직 수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방치되고 있다. “햇빛 성숙희-. 햇빛은 세상 같다/ 온 세상을 만들어주고 있다/ 햇빛 아니면 세상이 캄캄하지/ 세상을 만들어준다.” 한 어린이의 시에서 그는 어른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책임을 발견한다. 결국 그 책임은 현재 우리 자신의 책임으로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문득 예전에 쓰던 그림일기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들어가자마자 선생님이 내 주던 숙제 중에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것이 그림일기였다. 어떻게 쓰는지 몰라 대충 그림으로 메꿨었다. 줄 없고, 칸 없는 넓은 네모에 무언가를 그려내는 게 망막해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이던 그 시절...!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 한글을 깨우치고 나면 넓은 네모 칸 밑에 글씨를 쓰는 작은 네모 칸이 네 줄 생겨 있었다. 때로는 할 말이 많아 그 칸으로는 참 많이 부족했던 기억도 있고, 그림 그리는 공간이 부족해 두 면을 모두 할애해 그림을 그리던 생각을 하면 참 재미있고 즐거운 추억의 한 페이지이다.

 

그런 기억 속에 항상 무서운 선생님과 아주 좋은 선생님이라는 평을 듣는 분들이 등장하는데, 오늘 글로 만나 뵌 이오덕 선생님은 내 초등학교 시절의 그 어떤 분과 닮아있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교사가 말하는 지극히 당연한 교육적인 견해가 여지없이 짓밟혀 버리는 것에 아이들의 인권을 키워가는 참교육이 이뤄질 수 없는 것은 너무나 훤하다.”(16)

 

지금의 교육 현실도 모양만 다를 뿐 늘 문제들은 존재해 왔고, 또 존재하고 있다. 암울한 시대 속에서 양심을 가진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물며 그 시대 속에서 신앙인으로, 목회자로 살아간다는 것 역시 쉽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미치자 그 시대를 살며 양심을 지켜내고자... 신앙을 지켜내고자 했던 신앙의 선배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다른 한편, 반복되는 역사의 굴레에서 우리의 현재 삶이 안쓰럽기 그지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결국 그들의 헌신과 노력이 지금을 만들었는데, 지금의 현실은 인간 상실의 시대가 아닐 수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동문학가로서 삶의 길이 어린 아이의 길에서 사회개혁과 변혁을 추구한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부의 부정부패-나라 땅을 팔아먹고 학원을 사찰하고 자본가와 야합해서, 부정이 드러나면 국회에서 문제가 돼도 저희들끼리 조사단을 구성해서 흐지부지 해치우고, 통일을 외치는 양심들은 모조리 감옥에 가두고, 3.15부정선거의 원흉과 정치깡패들과 악질 모리배들을 죄다 풀어놓고 태연한 그 소위 민족적 민주주의란 것을 긍정하는 것이다.<중략>”(2) 결국 역사는 돌고 돌아 과거의 경험들이 살아 현재를 살게 하는 게 아닌가?

 

그의 일기에 등장하는 그 과거가 지금도 살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그의 일기에 써 내려간 선생으로서 아이들 앞에 떳떳하게 사는 모습이라도 보여주고자 했던 선생님의 양심과 만나게 되니 그저 머리가 숙여졌다.

 

그의 일기를 읽어 내려가며 유신정권도 만나고, 4.19도 만나고, 광주항쟁도 만나고... 삶의 질곡 속에 스며든 역사를 만났다. 그 역사를 대하는 평범하지만 살아있는 지식인으로 아이들의 선생님으로 바르게 서고자 했던 이오덕 선생님의 만남이 참 귀하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자신의 내면을 어린이의 마음으로 그려나가는 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성숙으로 이끌어가는 것임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이 자아비판의 장이든, 자기 자신의 성숙의 장이든, 또 하나님을 만나는 장이든 나 자신을 쏟아내고, 나 자신을 다시 세워가는 그 일들이 우리 모든 국민들에게 교육으로든 사회운동으로든 있었으면 한다.

 

생애의 마지막을 수놓고 있는 투병생활은 임박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어린이의 모습처럼 보인다. “아버진 암이래요.” “그래? 짐작했다. 울지 마라. 조금도 슬퍼하지 마라. 내가 살 만큼 살았고, 이제 올 것이 왔을 뿐이다. 나는 조금도 편안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부디 생각을 바꿔라.<중략> 모든 일들을 일단 중단하고 가장 급한 일부터 하기로 했다.”(406)

 

그러나 죽는 순간까지 그가 자신의 일기를 놓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주신 평안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의 내면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신다. 그런데 그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되면 다른 사람을 나쁘게 여길 일도 없고, 자기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며, 그 사랑이 결국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이 되기도 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바로 그것이 우리 속에 성령님의 임재하시는 순간임을 고백한다.

 

최태관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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