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을 보는 새로운 관점
<재난불평등>, 존 C. 머터 저, 장상미 역, 동녘
필자가 초등학생일 때 우리나라에는 유독 사고가 많았다. 성수대교 붕괴, 충주호 유람선 화재, 대구 상인동 지하철 가스 폭발, 삼풍백화점 붕괴 등 어린 나의 눈에도 우리나라는 안전하지 않은 나라로 보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고베대지진이 일어났는데 텔레비전을 통해 본 파괴된 도시의 참상은 마치 재난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이후로도 지진, 태풍, 대형 산불과 같은 재난은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전해지는 재난에 대한 보도의 초점은 재난이 일어났던 그 시점에 한정되었으며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참혹한 광경을 보여주는 데에 그쳤다. 재난으로 인한 재산과 인명 피해는 간단한 수치로 표현되었고, 그 이후의 진행사항은 듣기 어려웠다. 재난은 끊이지 않고 일어났고 미디어의 시선은 세계 어디에선가 발생한 재난으로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인 존 머터(John C. Mutter)가 보기에 자연재해는 자연과학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주제였다. 특히 자연재해가 야기한 피해를 볼 때 재난은 너무 불공정해보였다. 자연과학자인 저자는 재해를 마주칠 때마다 과학적으로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에 직면했다. 그는 피해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사망원인에 대해 답할 수는 있어도 왜 죽었는지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진이 잦은 지역의 건축법규와 적용은 왜 허술한지를 물으며 이러한 질문은 사회과학이 대답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한다.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재난 당시가 아니라 자연재난의 전후 맥락이다. 재난의 첫 번째 국면은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일어난다. 사회가 확실히 예상되는 재난에도 대비를 하지 않거나 인명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막기 위한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 비극적인 재난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국면은 사회적 취약성이라는 개념으로 측정된다. 두 번째 국면은 우리 대부분이 언론을 통해 보고 듣게 되는 사건 그 자체이다. 마지막 측면은 재난 이후, 태풍이나 홍수가 물러간 뒤 몇 주, 몇 달, 몇 년 후를 포괄하는 시기로 사람들의 관심이 가장 떨어지는 시기이다.
아무리 비극적인 재해라고 해도 사건 이후에는 거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국면들을 고려하며 저자는 재난 당 사망자 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난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나라에는 재난 대비나 피해 경감을 돕는 기관이 아예 없거나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사람들 대다수가 부실한 건물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재난 후에도 부유한 나라는 도시를 새로 건설하고 이전보다 나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반면, 가난한 나라는 회복이 불가능한 처지로 전락할 수 있다. 이처럼 빈곤은 부정적인 결과를 자가 증폭시키는 한편 자본소유자는 재난 직후에 자본을 급속히 불릴 기회를 얻기도 한다. 이렇게 재난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이다.
재난은 자연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속성을 지닌다. 재난의 이러한 속성은 재난이 해석되고 대중에게 인식되는 방향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재난과 관련된 정보의 생산과 유통은 특정 세력의 정치적 목적이나 입장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우리사회에는 유독 대형 사고를 기억하고 추모할 만한 공간이나 시간을 구분해 놓는 일이 적다. 앞에 언급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나 대구 가스폭발, 성수대교 붕괴에 대한 기억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추모와 기억의 공간은 최소화 되었으며, 그마저도 사건이 일어난 뒤 한참이 지나서야 마련된 경우가 많다. 희생자들의 목소리와 요구는 그렇게 사라져 가고 사고책임자들과 다양한 사고원인들은 비판되거나 성찰될 여유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적어도 우리사회가 경험한 재난과 피해에 대해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기록되고 공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피해를 예방하는 것이나 복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의 원인과 결과를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도 다음 세대를 위해 중요하다. 그렇게 공유된 기억과 기록은 재난의 위험성이 특정 지역이나 계층에게 향하지 않도록 해줄 것이다.
김신영 박사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