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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47]
 
 
 
     
 
 
 
작성일 : 23-11-30 01:12
   
세상의 선함을 배워야 할 때
 글쓴이 : dangdang
조회 : 2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478 [87]


 

세상의 선함을 배워야 할 때

 

(<주홍글자>, 너대니얼 호손)

 

너대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의 <주홍글자>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1640년대 미국 개척 초기 청교도가 지배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 시기에 간통을 저지른 해스터 프린이라는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청교도들은 죄인을 공개적으로 가혹하게 처벌했습니다. 그래야 죄인이 당하는 처벌과 수모를 보고 죄에 대해 깨어있게 되리라고 믿었습니다. 헤스터 프린은 간통을 저지른 죄로 광장에서 모욕을 당하고, 감옥살이를 하는 것도 모자라, 평생토록 간통죄를 뜻하는 A(adultery)자를 가슴에 달고 사는 벌을 받습니다.

 

이 소설은 그녀가 광장에서 모욕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작가는 소설 초반에 헤스터 프린에게 가해진 처벌과 혐오, 따돌림이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그리는데 잔뜩 힘을 줍니다. 이 여인의 죄가 사회적 살인을 당할 정도로 큰 범죄인가를 묻는 듯이 말입니다. 그 장면을 읽고 있으면 간음한 여인과 그를 돌로 치려는 자들 중에 과연 누구의 죄가 더 큰가하는 의문이 듭니다.

 

소설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많은 기독교 세계에서 죄에 대한 깨어있음이 타인의 잘못을 찾아내서 철저히 정죄하는 것으로 오해받습니다. 타인을 정죄함으로 유난스럽게 자신의 깨어있음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이 타인의 단점을 발견하고 정죄하는 일에 유능한 사람으로 길러집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죄에 대하여 깨어있으라 하신 것은 남의 죄가 아니라, 자신의 죄를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에 자신을 비춰보면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그런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주님은 십자가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용서의 은혜를 받았으니 너희도 타인을 정죄하기보다 이해하고, 다투고 미워하기보다 화해하라는 것입니다.

 

최근에 <사귐의 기도>를 쓴 김영봉 목사님이 SNS에 <어떤 슬픔>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얼마 전, 알지 못하는 분에게서 메일을 받았다. 틴에이저 아이를 둔 엄마인데, 큰 아이가 성정체성 혼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면서, 교회에 그런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우리 교회에 그런 프로그램은 없지만 성소수자 부모를 여럿 만나 보았으니 내가 만나서 도와드리고 싶다고 답했다. 그 메일에 그분은, 만일 우리 교회에 나왔다가 아이의 문제가 교인들에게 알려지면 교회를 떠나야 할지 물으셨다. 이 질문을 읽고 참 마음이 아팠다. 어찌 교회가 어떤 사람에게는 이토록 두려운 곳이 되어버렸는가 싶어서다. 한인 이민 교회의 정서를 아시니 교회에 나가고 싶어도 아이의 문제로 인해 정죄 당할까 두려워 떨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마음으로 이 메일을 쓰기까지 얼마나 많이 망설였을까? 갈 곳을 찾지 못할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 안에 정죄하는 문화가 얼마나 뿌리깊은가 돌아봤습니다. 사랑보다 정죄하는 일에 열중하는 우리의 모습을 회개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이 성과 속을 나누길 좋아합니다. 교회는 빛이고 세상은 어둠인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깨어있고 세상 사람들은 잠들어 있는 것처럼. 그러나 이제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지금 교회는 세상보다 깨어있지 못합니다. 세상보다 깨끗하지도 않고 선하지도 않습니다. 교회가 외면받는 이유는 세상이 악해서가 아니라, 세상 만큼도 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세상은 선악의 기준을 민주주의로, 인권으로,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태도로, 타자를 환대하는 성숙함으로, 환경과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높은 수준까지 끌어 올렸습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의 가치 기준은 어디에 머물러 있습니까. 대부분이 아직도 이 한 몸 복 받아서 잘 사는데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깨어나기 위해서는 세상의 보편적인 기준을 따라잡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높은 수준의 선함을 배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선함은 타인을 정죄함으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사랑하고 존중하면서 평범하게 깨어있는 삶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정죄가 아니라 이해와 용서를 권능으로 살아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동혁 목사 (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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