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전한 행복
(정유정, 은행나무, 2021)
이 책의 저자는 정유정이다. 나는 5년 전 영화 ‘7년의 밤’을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다. 이 영화가 작가 정유정의 소설을 영화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저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22년 8월 즈음 정유정 작가가 쓴 이 소설을 구입해서 읽었다. 그녀의 소설 중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은 이른바 ‘악의 3부작’이고 <완전한 행복>은 ‘악의 3부작’에 이은 ‘욕망의 3부작’의 첫 편이다.
이 책은 2019년에 수면제를 먹여 남편을 살해한 고유정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올 해 5월 부산에서 과외학생을 가장하여 과외교사를 토막 살해한 사건의 피의자도 작가와 같은 이름인 정유정이다. 유정이란 이름이 주는 예쁜 이미지와 토막살해사건은 뭔가 어울리지 않는 듯하지만, 우연히도 두 토막살인사건의 주인공과 작가의 이름이 같다는 사실은 참 기묘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엄마인 신유나이다. 하지만 주인공인 유나의 독백이나 심리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그녀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사건이 전개된다. 딸 지유, 재혼한 남편 차은호, 그리고 전 남편의 여동생 민영과 주인공 유나의 친언니인 재인을 통해서 사건의 흐름을 알게 되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신유나는 서준영이라는 남자와 결혼해 '지유'라는 딸을 낳았다. 하지만 4년 만에 이혼했고 얼마 후 '차은호'라는 남자와 재혼한다. 차은호 또한 두 번째 결혼이다 그에겐 '노아'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렇게 지유와 노아는 이복남매가 된다. 어린 시절부터 사이가 틀어진 언니 '재인'도 등장한다. 신유나는 불가사의한 여인이다. 굉장한 미인은 아니지만 알 수 없는 매력으로 남자들을 끌어당긴다. 그녀는 늘 관심과 소문의 중심에 있었다.
신유나는 대학시절 학교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들과 관련이 있다. 한 번은 사귀던 남자가 연못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사인은 자살이었지만 죽기 전 그녀와 술을 마셨다는 증언이 있었다. 2년 후 동거하던 남자는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졸음운전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남자가 운전하기 전 뭔가를 마셨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얼마 전에는 경제적인 문제로 그녀와 갈등이 생긴 아버지 역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번에도 사인은 졸음운전이었다.
지금은 함께 시골집을 찾았던 전 남편 서준영이 사라진 상황이다. 신유나는 두 번째 결혼만큼은 완전한 행복이길 바라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얼마 후 아들 노아도 사망한다. 아빠가 잠결에 짓눌렀다고 하는데 기억이 없다. 그리고 이번에도 잠들기 전 뭔가를 먹은 것 같다고 말한다. 증거는 없지만 심증이 가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모두 주인공 유나의 짓이라는 것을 독자들은 알 수 있다.
신유나는 과거 행복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 가는 거... 나는 그러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어(485쪽) 그녀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들을 제거함으로써 완전해진다고 생각했다. 자기애에 빠져 있는 그녀의 우주는 결함도 없고, 결핍도 없어야 했다. 남편도 아이도 그리고 심지어 부모까지도 그녀의 완전함을 파괴하는 이들은 용납할 수 없었다. 어릴 적 언니가 아닌, 자신이 엄마와 떨어져 보내야 했던 그녀는 가족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았다고 생각되었고 그때 그녀는 자신의 행복은 결국 혼자 스스로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행복은 오직 그녀만이 만들고 판단하고 유지해야 하는 세계였고 그 독단적인 생각은 무시무시한 결과물을 만들었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완전한 행복에 이르고자 불행의 요소를 제거하려 노력한 어느 나르시시스트의 이야기이다. 모든 나르시시스트가 사이코패스는 아니지만 모든 사이코 패스는 기본적으로 나르시시스트라고 한다. 그들은 사이코패스보다 흔하다는 점에서 두려운 존재이고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지만 정작 자아는 텅 비어있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며 매우 매혹적이라는 점에서 위험한 존재이다”
주인공 유나는 나르시시스트의 성향이 극단적으로 디자인된 인물이다. 이상적인 완벽함을 추구함으로 인해 그 주변 사람들이 파괴되는 것을 개의치 않는 인물이다. 이 정도의 극단적 나르시시스트는 많지 않겠지만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고 주변사람들을 가스라이팅하는 이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만나게 된다. 최근 초등학교 교사들의 연이은 자살사건을 보면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던 학부모들과 그 자녀들이 주인공 유나처럼 나르시시스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CCM이 한창 유행한 적이 있었다.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사회나 미디어에서 “너는 특별해, 너는 세상의 중심이야, 내 아이는 특별해” 이렇게 가르쳐왔다. 이런 가르침이 결과적으로 나르시시스트를 양산시키게 되었다. 특별하기 때문에 아이가 해달라는 것을 다 해주고 잘못을 해도 야단을 치지 않는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개인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에서 고유성을 존중 받아야 하지만 그와 함께 그 누구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 또한 인정해야 마땅하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순간, 개인은 고유한 인간이 아닌 위험한 나르시시스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648쪽)
작가는 “너는 뭐든지 할 수 있어, 너는 세상의 중심이야, 너는 특별해” 이렇게 키우는 게 과연 옳을까? 라는 물음표를 달게 되었다고 한다. 거기에 더불어 이 사회가 행복강박증에 걸렸다고 보았다. 작가는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작가에게 있어 삶의 가치는 자신이 얼마만큼 성취를 하느냐? 그러기 위해서 얼마만큼 노력을 했느냐? 얼마만큼 충실하게 살았느냐에 있다, 작가는 인생에서 불행과 결핍과 불운을 받아들여야만 행복의 진짜 의미도 깨달을 수 있다고 보았다. 완전한 행복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인데 왜 모두가 완전한 행복을 목표로 하고 자랑하지 못해서 안달일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 2가지, 행복에 대한 강박증과 사회적인 자기애, 두 가지가 만나 탄생한 책이 완전한 행복이다.
왜 저자는 나르시시스트에 관한 소설을 쓰게 되었을까? 과거 자신은 한 나르시시스트에게 야금야금 길이 들었고, 관계에서 벗어났을 땐 이미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안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 문제적 인간에 대해 다뤄보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는 우리에게 ‘행복의 책임’을 되묻는다. 마지막장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하며 끝을 맺는다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겐 행복홀 권리와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 함께 있다는 것을”
임석한 목사 (양정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