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송지현, 문학동네, 2021)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아이가 기숙사에서 짐을 챙겨 집으로 왔다. 학기를 마치면 2개월 가까이 집에서 생활한다. 아이의 가방에서 책 한 권이 나왔다.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이란 소설책이었다. 아이가 방학을 보내는 내내 그 책은 부지런하게 내 눈에 띄었다. 책꽂이에 두지 않고 선반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름이 지나고 아이는 대학생활을 위해 기숙사로 갔다. 가을이 짙어지면서 아이가 읽었다는 소설이 궁금했다. 나는 여름에 뭘 먹었는지 생각하면서.
이 책은 송지현의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각 소설마다 이야기를 이끄는 화자는 여자고 담배를 피우며 자유로운 삶을 산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야 할까 본다고 해야 할까? 사춘기 소년이 이웃집 예쁜 누나를 훔쳐보듯 소설을 읽다 보면 시시껄렁한 일상들이 지나가고 뭔소리를 하려는 건지 알 수 없는 그림자들이 시간을 훑어내린다. 목적의식이 분명한 신학, 사회학 관련된 책을 읽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니 적응이 되지 않아 지루하게 읽었다.
완독 후 왠지 가을바람처럼 스산한 기운이 스친다. 우리 인생이 그렇게 지루하고 뚜렷한 목적 없이 시간을 낭비하듯 지나친다. 하지만 목적을 두고 살아간 인생이 과연 행복하고 훌륭한가라는 질문에 답은 다소 모호해진다. 목적의식이 분명할수록 인생은 포악하고 거칠기 마련이다. 목적은 살아가는 삶 자체일 뿐이다. 삶에서 만나는 문제해결의 연속이 목적을 만들고 인생의 윤곽을 다양하게 그려낸다. 송지현의 소설을 읽으며 그런 개똥철학이 몽글몽글 떠다닌다.
책의 이름은 첫 소설의 제목에서 따왔다. 월세 기간이 끝나 잠시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주인공이 유럽 여행을 앞둔 이모의 집에서 여름을 보내는 이야기다. 우리는 무엇을 먹으며 여름을 날까? 더위를 이기기 위해 시원하고 상큼한 먹거리를 찾는다. 나 역시 냉면에 찡하게 하는 겨자와 눈을 질끈 감을 만큼 식초를 부어 냉면이나 막국수 한 사발을 들이킨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은 이모가 운영하는 뜨개방 근처 청년몰에서 핫도그를 자주 먹는다. 특별한 맛이 있어서가 아니라 젊은 남자 사장과 이웃하게 되면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소머리국밥을 먹는다. 텁텁하고 더운 음식을 여름에 먹은 것이다.
작은 이야기 하나가 끝나고 제목처럼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이 음식인가란 질문이 스친다. 고시원이란 도시의 작은 골방을 떠나 이모가 사는 시골 소도시에서 새로운 만남을 먹고, 추억을 먹고, 인연을 먹는다. 인간(人間)이 사람 사이에 있을 때 인간일 수 있듯 사람과 섞여 살아갈 때 그나마 지루한 인생에 의미를 보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송지현의 이야기에 빠지게 되었다.
사람 속에 살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실망하고, 저주하고, 또 다시 만나고 기뻐하고, 사랑하다 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삶을 밥 먹듯 먹고 산다. 무슨 맛으로 인생을 사냐고 묻는다. 마치 밥맛을 묻는 것 같다. 밥이 무슨 맛이 있냐고 묻던 시절이 있었다. 밥은 밥맛이다. 밥을 먹어야 밥심으로 산다. 송지현의 소설을 덮으면서 심심하고 지루한 인생의 맛을 묻는 이들에게 밥 먹듯 그냥 그런 인생을 꾸역꾸역 씹어대면 날마다 새로운 맛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말하고 싶다.
이원영 목사 (예장통합총회농촌선교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