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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72]
 
 
 
     
 
 
 
작성일 : 23-09-05 23:48
   
가을의 문턱에서 꺼내보는 책
 글쓴이 : dangdang
조회 : 6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065 [65]


 

가을의 문턱에서 꺼내보는 책

 

<잡문>, 안도현 지음, 이야기가 있는 집, 2015

 

짧지만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운 이곳의 가을은 9월, 딱 한 달간이다. 올해는 웬일인지 더위가 떠나지도 않은 8월 중순부터 집 앞 나무의 한부분이 붉어지더니 이제는 울긋불긋해지고 있는 나무들이 이곳저곳 눈에 띈다. 오는 계절과 어울리는 책을 읽고 싶어서 안도현 시인의 <잡문>을 골랐다.

 

지지하던 대통령 후보가 선거에서 패하고, 검찰에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면서 시인은 한동안 시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2015년의 일이다. 3년간 그가 트위터에 적은 문장들을 골라 묶여진 이 책을 읽으며 나는 2014년 세월호로 떠난 아이들을 다시 떠올리고 2016년의 숱한 촛불시위마다 거리로 나와 모였던 정의를 향한 우리의 걸음을 떠올렸다.

 

마주 앉아 대화해본 적 없어도 누군가가 써 내려간 글을 보면 그가 어떤 것에 마음이 기우는지, 그가 향하고 있는 마음을 쉬이 알 수 있다. 

 

“낙엽을 보며 배우는 것 한 가지. 일생 동안 나는 어떻게 물들어가야 하는 것. 떠날 때 보면 안다.”

 

어떻게 나이 들어 가야할 지, 앞으로의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타국살이하는 우리 부부는 종종 이런 대화를 한다. 사람은 사랑하는 이들과 사랑과 마음을 나누고 연대하며 살아갈 힘을 얻는데 타국에선 가족, 내 친구, 내 사람들과 만나 마음 나눌 일 없이 아이와 세 식구만 지내니 인풋은 없고 아웃풋만 있는 느낌이라고. 

 

그래서 그런지 타국살이 속에선 괴물이 되어버린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가 있는데, 우리의 대화의 끝은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슴 속의 사랑을 잃지 말자고, 타국살이에서 받는 어려움과 상처로 인해 괴물이 되지 말자고 다짐한다. 헐뜯고 소외시키지 말고 긍휼히 여기며 사랑을 선택하자고 결국엔 진심이 남는 거라고. 

 

“뼛속까지 쉬는 하루였으면, 잎사귀 다 내려놓고 혼자 강변을 걸어가는 나무였으면.”

 

타지에서 다른 가족의 도움 없이 아이가 세돌 반이 넘어가는 시간 동안 아이와 함께 집에서 지내다 보니 올해 상반기에 번아웃이 왔다. 지금은 어느정도 회복한 상태이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단 하루도 푹 쉬어보거나 푹 자본 적이 없기에 이 문장에 강하게 공감이 되었다. 뼛속까지 쉬는 하루란,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 심적으로든 육적으로든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일테다. 자신의 잎사귀를 다 내려놓고 홀로 강변을 걸어가는 나무를 상상해본다. 이렇게나 시적으로 강렬한 쉼에 대한 바람을 표현하다니.. 역시나 시인은 다르다고. 

 

“나는 거대하고 높고 빛나는 것들보다는 작고 나지막하고 안쓰러운 것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햇빛이 미끄러져 내리는 나뭇잎의 앞면보다는 뒷면의 흐릿한 그늘을 좋아하고 남들이 우러러보고 따르는 사람보다는 나 혼자 가만히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을 더 사랑한다.”

 

2015년 그 무렵 이 책을 처음 읽을 때에도 가장 마음에 남은 문장이다. 나는 항상 아프고 슬프고 여리고 연약한 것들에 마음이 기울고 그런 것들은 항상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시에 멈추어 서게 했기에. 내가 이끌리는 사람은 손해 보는 것을 싫어하고 마음의 방향에 자신에게만 기우는 사람보다 타자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 밖으로도 마음이 기울어 있으면 좋겠다. 곁이 필요한 이에게 기꺼이 제 마음과 따듯한 손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 마음 안에 측은지심이 있는 사람, 선하고 마알간 마음 밭을 가진 사람, 진정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더 사랑한다. 

 

“찔레꽃잎에 빗방울이 세 번 닿으면 그해 풍년이 든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내가 왜 시인이 되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시는 역시 말의 기억을 건져내 낡아가는 말에 생생한 기운을 불어넣는 것이다. 거기에 삶이 꿈틀거리면 더 좋고.”

 

“오늘밤 할 일은 별똥별이 쏟아지는 걸 보는 일. 아이들의 눈망울을 생각하는 일. 아이들이 지상으로 살아돌아오는 것을 바라보는 일. 참혹한 어른으로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일. 오늘밤 할 일은 별똥별이 아이들 나이만큼 빛나는 순간을 가슴에 담는 일.”

 

“낯선 풍경일수록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이 시인이다. 그 풍경 안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것들이 내면화 될 때까지.......”

 

“햇볕이 차가워지는 11월에는 생의 안쪽을 생각하게 되어 좋다.”

 

“오늘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물들어가야 하는지 단풍한테 배우자. 또 나는 누구에게 물들어가야 하는지 단풍선생한테 배우자.”

 

“연두가 초록으로 넘어가기 전에, 연두의 눈에 푸르게 불이 들어오기 전에, 연두가 연두일 때, 연두가 연두였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전에, 오늘은 연두하고 오래 눈을 맞추자.”

 

“사람은 떠나고 짐승만 남았다.”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읽게 되는, 그러나 생에 대하여, 내 마음이 기울어야 할 곳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가을의 길목에 멈추어 서서 생의 바깥과 안쪽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 

 

김은진 (윌로우리버 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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