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익환 평전
<문익환 평전>, 김형수, 다산책방, 2018
이 책의 저자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형수 작가이다. 2004년 출간했다가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젊은 세대에게는 낯설은 문익환의 생애를 새로운 디자인과 편집으로 다시 감동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문 목사는 1908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문 목사 집안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윤동주 집안, 김약연 집안 등 5가문이 집단적으로 간도로 이주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용정에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조선인 공동체 명동촌이 생겨난다. 항일 민족의식을 지녔던 가풍의 영향을 받으며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 평양 숭실중학교, 용정광명학교를 거쳤다. 학창시절 윤동주, 송몽규, 장준하와 절친이었고, 친구 윤동주와 장준하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
아들인 문성근은 "아버지는 늘 윤동주, 장준하에 대한 마음의 부채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프린스턴신학교로 유학을 떠나 목사가 되어 돌아온다. 한국전쟁 때는 정전협정의 통역관으로 복무했고 1970년대에는 구약성서 번역에 몰두했다. 한없이 여리기만 했던 그는 1976년 59세이라는 늦은 나이에 3.1민주구국선언에 참여하며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늦게 시작했지만 재야에서 단연 두각을 드러내며 민주화와 통일 운동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77세에 별세하기까지 6차례에 걸쳐 12년간의 옥살이를 하는 수난의 삶을 살았다. 1989년에는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과 회담하고 통일방안을 합의하였다. 이 합의내용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2000년 남북공동선언에 대부분 반영되었다.
문익환 목사는 통일과 민주에 대한 강렬한 소망을 가지고 온 몸으로 역사를 살다 간 우리 시대의 예언자이고 사도였다. 그는 순수하고 자유로운 투쟁가였기에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었고 살인적 군사정권도 그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6차례 12년간 감옥살이는 그를 더욱 강하고, 더 크게 만들었고, 더 행복하게 싸우게 했다. 그는 윤동주와 장준하를 대신 살았고, 전태일과 인혁당 민주열사와 80년대 젊은민주열사를 대신 살았다. 자신이 10년 가까이 혼신의 힘을 다해 우리말로 번역했던 구약의 예언자가 되어 살다 갔다. 그를 감옥에 가두었던 그의 꿈들이 요즘 점차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이 책의 컨셉은 ‘연약한 힘’으로서의 ‘늦봄 문익환’이다. 늦봄'은 여러가지 의미를 담은 말이다. 하나는 '늦게 봄, 늦게 깨달음'의 의미이고, 늦게 운동에 참여한 미안함의 표시였다. 또 하나는 '늦봄으로 살기'이다, 늦봄의 생동감은 누구에게나 감지되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아지랑이 같은 것이다, 그것은 현실이지만 형체도 경계도 없다. 나머지 하나는 '늦봄을 살기'이다, 그는 6.1에 태어났다, 늦봄에는 눈부심이 있고, 4.19와 5.18이 있다, 이 시기를 그는 신명나게 치열하게 살았다. 그는 늦은 봄을 자신의 철이라고도 했다. 평생의 동지였던 아내 박용길 장로의 아호는 '봄길'이다, 그 봄길을 따라가는 붙어사는 의미의 늦봄의 의미이기도 했다.
평전에 나오는 인상적인 글을 옯겨 본다.
- 그의 정서적 고향은 고구려였으며, 영혼적 혈통은 유목민이었다. 그는 늘 광활한 무대를 그리워했고, 좁은 칸막이 안에서 형성된 기득권을 타고 안주하는 것을 언제나 경계했다.
- 그는 대가연(大家然)하지 않았다, 사상이 삶의 한복판에 있지 못하고 주장으로만 불거져나오는 것을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 타자와의 관계에서는 아름다운 뺄셈사상을 보유한 자였다. 꽃을 보이지 않는 무화과처럼, 그리고 물줄기가 되어야 할 땅속의 물방울 하나처럼.
- 발바닥이 아니라 손으로 쓴 사상이나 역사를 그는 신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구약은 히브리 민중사였던 것인데, 끝내 이스라엘 왕궁사로 둔갑되었다고 분개했다.
- 예언자는 현재에 배태되어 있는 미래를 본다. 예언자에게는 말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격정이고 몸부림이다, 그런 몸부림이 앞서고, 거기서 말이 터져 나오면, 그 말이야말로 역사를 변혁시키는 말이 될 수 있다.
- 역사는 꿈을 통해 부활한다, 현실의 결핍을 발견할 때, 현실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할 때 그는 바람 빠진 풍선에 공기를 채우듯 꿈을 채워갔다. 꿈을 잃지 않는 일, 꿈 같은 일을 상상하며 믿고 사는 일, 이것이 우리가 언제까지나 잃어서는 안될 어린이다움이다.
- 나나 아내나 자식에게서 어떤 움이 틀지, 그 움에서 어떤 잎이 날지, 또 자라서 어떤 꽃이 필지, 그 꽃이 지고는 어떤 열매를 맺을지 모르면서 키우고 가꾸는 것이기에 우리의 삶이란 놀라움의 연속이다. 반대로 어떤 꽃이 피어야 하고,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결정해 놓고 살아가는 것은 놀라움의 연속이 아니라 실망의 연속일 것이다.
-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고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다. 예수의 죽음은 예수를 믿고 따르던 갈릴리 민중의 죽음이었다. 그래서 예수의 부활은 민중의 부활이었다.
- “우리는 사랑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 “사랑을 가져라! 사랑은 지치지 않는다.”
신영배 (경기중부기독교교회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