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의 진화
(<마을의 진화 : 산골 마을 가미야마에서 만난 미래>, 간다 세이지 지음, 류석진, 윤정구, 조희정 옮김, 반비, 2020)
일본의 작은 산간마을에 기적이 일어났다. 그 변화의 기적이 일어난 곳은 일본의 도쿠시마현에 있는 해발 1,000미터의 산간마을 가미야마이다. 한 때는 인구가 2만명 이상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며 줄어들어 겨우 6,00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시골이 되었고, 고령화율 48%의 전형적인 과소화(過少化) 마을이자 전국에서 20번째 소멸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이 작은 산골마을에 어느 때부터인가 웹디자이너, 컴퓨터 엔지니어, 예술가, 요리사 수제구두 장인 같은 창의적 직업의 청년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8년간 91세대, 161명이 이주했고, 이주해 온 IT 기업의 위성사무소와 벤처기업 본사의 수가 16개 이상이라 하니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아사히 신문사 기자로서 평소 마을 만들기, 지방재생에 관한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간다 세이지 기자가 주민 100명을 심도 있게 인터뷰하여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책 <마을의 진화>이다.
소멸가능지역으로 전국에서 20번째에 해당하는 가미야마가 새로운 마을로 재탄생된 데에는 열린 마음, 유연한 생각, 평등의 구조, 미래지향적 공동체, 사람중심,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개방성, 젊은 리더십을 인정하는 분위기, 관 주도 정착수립을 지양하고 젊은 주민들과 이주자들의 의사를 적극 반영하는 것, 이주자와 주민이 상생하는 길을 찾는 분위기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다.
간다 세이지 기자는 가미야마가 잘 굴러가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1) 과정의 소중함 – 주민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해가는 신중함
2) 연결을 키워드로 한 혜안 - 면사무소와 주민, 민(民)과 관(官), 학교와 지역, 주민과 이주자, 현재와 미래
3) 가미야마 연대공사가 하는 역할의 중요성 - 중간 지원 조직 같은 공사가 면사무소와 주민, 민간, 외지의 인재를 이어주고 면사무소와 함께 다양한 기획을 입안, 실행한다. 공사는 일회성 사업이 아닌 지속가능한 사업을 가능케 해준다.
4) 면사무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의지 - 지역을 살리기 위한 면의 지원과 동행
가미야마의 사례를 보며 가장 마음에 끌리는 대목은 개방성이다. 열려진 마음이 우리의 걸음을 미래로 인도한다. 사람냄새 나는 가미야마라는 마을을 일구는 데에는 강력한 리더십이 작용한 것이 아니다. 이런 멋진 마을을 만들어가기 위해 각자의 재능을 살려서 활동하는 자유롭고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으로 만들어갔다. 외지인을 개방적으로 받아들이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따뜻한 배려, 외지인도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유연함 가미야마를 만든 비결이다.
간다 세이지 기자가 인터뷰를 하며 찾아낸 가미야마의 지방재생 전략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그는 말한다.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사람이다. 양질의 자원이 있어도 그것을 가치있게 만드는 사람이 없으면 어떠한 가능성도 구체적인 형태가 되어 공유되지 않는다. 사람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 사람의 조합에서 이제부터 지역 규모로 확장될 수 있는 일거리가 생겨나는 것이다. 마을 만들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신념임을 강조하고 싶다. 인재를 키우는 것이 교육이다. 사람을 얻고 사람을 키우는 가미야마의 교육 프로젝트가 뚜렷하게 진행되고 있다.”
가미야마의 기적을 촉발한 오오미나미 신야의 말과 지방재생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도치타니 마나부 기미야마 연대공사 대표의 말이 머리 속에 맴돈다.
“우리는 즐거워서 한 겁니다. 조금 더 재미있는 마을을 다같이 만들자고 한 것뿐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해보려고 여러 사람이 들락거리면서 조금은 분위기가 바뀌지 않았나하는 느낌이랄까요?... 고리타분한 일에는 사람이 오지 않아요. 하지만 뭔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여들지요... 처음부터 이런 마을로 바꿔보자 하는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오히려 ‘결과적으로’라는 말이 제일 어울리겠네요”(오오미나미 신야)
“특별한 산업 전략은 없다. 환경과 자연을 소중히 하면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들을 작은 것부터 해나가다보면 점차 큰 것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도치타니 마나부)
우리 삶의 멋진 변화, 우리 공동체의 멋진 변화는 의외의 평범함에서 시작된다. 열린 마음(개방성), 환경과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이다. 우리들 속에 있는 가능성을 하나 하나 꺼내 놓다보면 좋은 꿈을 함께 꾸는 사람들이 하나 둘 연대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겐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 뜻을 모을 때 길이 열린다!
이혁 목사 (의성서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