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은 저항이다
<안식일은 저항이다>, 월터 브루그만 지음, 박규태 옮김, 복있는 사람, 2015
이 책에서 저자는 유명한 구약학자로서의 면모를 안식일 계명을 통해서 여지없이 발휘한다. 저자는 십계명의 넷째 계명인 안식일 계명이 어떻게 첫째 계명, 열째 계명과 관련이 있는지를 설명하면서 이 책의 테두리를 정한다. 그리고 나서 이 책의 중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안식일에 나타난 저항의 성격(불안, 강요, 배타주의, 과중한 일)을 규명한다. 원서의 제목은 원래 “저항으로서의 안식”(Sabbath as Resistance)이다.
저자는 “네 번째 계명은 먼저 나온 세 계명과 쉬시는 하나님을 돌아본다”는 점과 “이웃과 관련된 마지막 여섯 계명을 미리 내다본다”는 점을 미리 언급한다(25). 안식일 계명은 “어떤 경쟁 상대도 결코 용납하지 않고 마침내 쉼을 누리실 하나님”을 알게 하며, “쉬시는 하나님”은 “이집트의 노동 시스템과 그런 시스템을 정당화하는 이집트의 여러 잡신에게서 해방시켜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점을 강조한다(26).
하나님의 쉼은 “쉼이 없는 끝없는 활동이 옳지 않음을 확인해 주며 그와 같은 활동을 부서뜨린다”(32). 저자는 “이 시대 우리 사회에 쉼이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며 유행병처럼 퍼져 있다”고 주장하고(40), “안식일 지킴은 파라오의 시스템을 뒤집어 엎으시고 출애굽을 가능케 하신 첫 번째 계명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행동이요, 두 번째, 세 번째 계명이 말하는 하나님, 곧 쉼의 하나님께 복종하는 행동”이라고 설명한다(50).
이스라엘은 노예에서 해방되고, 출애굽하였지만 “이집트 시스템이 만들어 준 깊은 불안에 젖어 있”었는데(65), 안식일 계명은 “불안만을 야기하는 파라오의 시스템과 정반대인 쉼의 시스템을 복돋”았음을 상기시킨다(71). “다른 신들은 불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요 그 계기가” 되지만 우리는 “이런 유혹에 맞”서며(74) 저항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모세는 이스라엘이 그 이웃을 늑탈하는 문화를 거부하고 언약이 제시하는 대안을 따라가기를 기대”했으며(86), “강요로 얼룩진 파라오의 시스템이 무너졌음을 기억”해야 한다는 점을 선포했다(89). 안식일은 “강요와 경쟁에서 벗어나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연대성에 비추어 사회의 모든 삶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95)라는 것이다.
안식일의 쉼은 “언약을 따르는 삶을 증명해 주는 표지이자 척도”이며, “상품 획득 탐욕에 저항하는 행동”이다(124-125). 저자는 “안식일은 일꾼들도 너와 같이 쉬는 이웃 사랑이 담긴 전형적인 예배 행위”라고 알려주면서(130), “심지어 쉼의 날에도 탐욕의 패턴을 그치지 않”는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한다(133).
저자에 의하면 “넷째 계명은 평화로운 집안과 이웃 관계를 기대하며, 이러한 평화로움에 기여할 규율과 한계를 제시한다”(141). 저자는 책 뒷부분에서 “지금 우리 모습처럼 탐심이 조직적인 양상을 띨 때에는, 탐심을 조장하는 정책 형성과 사회 관습을 제한하고 그것에 맞서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64). 안식일은 “상품을 예배하는 행위를 거부하는 것이요, 상품을 추구하는 행위를 거부하는 것”이지만 단순한 “거부에 그치지 않”고(167) “거룩해지려고, 사람이 되려고, 사람답게 살려고 시간을 들이는 것”(168)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상처와 두려움과 탈진 상태를 붙들고 쉼이 없는 채로 버려진 자들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경고하며, 하나님의 쉼에서 시작하여 우리와 함께 쉬어야 할 이웃까지 확장된 쉼을 깨달아야 함을 주장한다(171).
이 책은 안식일의 저항적 성격을 잘 설명하고 있으며 십계명과의 연관성을 두고 안식일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그리고 무엇보다 첫째 계명(사실은 셋째 계명까지)과 열째 계명(사실은 나머지 계명들)이 우상숭배와 탐심과 연관되어 있으며(166), 그런 점에서 신약에서 말하는 “탐심은 우상숭배”라는 가르침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항할 수 없는 시대, 시스템 속에서 순응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참된 안식일의 의미를 드러낸 역작으로, 한국사회와 교회에서 더 깊은 성찰과 실천을 요구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개신교가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존 질서, 불의한 사회 시스템에 제대로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 방법으로서 안식일 계명을 생각하게 한다.
이신성 목사(광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