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문학 동네)
최은영 작가의 소설은 이번이 총 두 번째이다. 처음은 그녀가 이름을 알린 작품인 <쇼코의 미소>이고, 두 번째 소설이 바로 이번에 출간되자마자 구매해서 읽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이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은 주로 접점이 없을 듯한 사람들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관계에 대한 세밀한 터치가 인상적이다. 책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는 회사를 다니다 다시 한 번 꿈을 찾고자 대학으로 돌아온 희원과 그녀에게 영어 에세이를 가르친 강사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최은영 작가의 작품을 따라 읽어내려 가다보면, 사람들이 서로 덤덤히 교류하는 과정에서 속에서는 수많은 감동과 위로와 아쉬움, 그리고 기쁨이 담겨있다는 것을 세심하게 공감해나갈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며있는 결핌에 대해 작가는 매우 능숙하게 다룬다.
그녀의 작품은 단편집도 있고, 장편 소설도 있는데, 내가 읽었던 작품은 모두 단편집이었기에, 짧은 이야기들이 여럿 이어져서 등장한다. 각각의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면, 어느새 여러 등장인물들이 가진 결핍이 큰 문제가 아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움의 범주에 속하게 된다.
결핍에 대해서 나의 삶을 돌아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지금도 그다지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내 나이를 말할 때 더 적은 숫자를 세어야 하던 때 다소 완벽주의자 같은 기질이 있었다. 그 때는 내가 가진 어떤 결핍이나 단점은 크기와 무관하게 무작정 없애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의 결핍에 대해 엄격했던 만큼, 타인의 결핍에 대해서도 너그럽지 않았다. 마음을 곱게 썼을 때는 둥그런 충고가 될 때도 있었지만, 어느 날은 날이 선 소위 성격 더러운 아이였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서 나도 나의 결핍에 대해 무감각해졌다. 그리고 타인이 가진 결핍 역시 자연스러워졌다. 어릴 적의 모난 나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삶에 대한 더 큰 열정이나 욕심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세상을 그리고 사람들을 더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지혜가 생겼다.
가끔 나에게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들은 많이들 스스로의 부족함과 결핍에 대하여 전전긍긍하곤 한다. 백 번이고 이해되는 심정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자존감을 담은 우물에 수위가 낮아지는 순간이면 더욱이 스스로의 단점을 들여다보는 좋지 않는 습관이 고개를 들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문제를 삼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공정함이 중요하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 결정이 중요한 세상에서, 문제의식은 중요한 역량일 수 있지만, 삶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에서 너무 과도한 문제 의식은 스스로에게 상처를 낸다.
좋은 게 좋다. 이 말을 한 때는 정말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삶을 현명하게 살아내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모두 결핍을 지니고 살아간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결핍으로 인해 스스로 상처받지 않고 가끔은 모른 척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최은영 작가의 두 소설, <쇼코의 미소>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모두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수 많은 인물들의 결핍은 가히 현실적이며, 그녀의 꼼꼼한 묘사력에 더욱 더 깊이 공감하고 인물들을 사랑하게 된다. 소설이라는 게 전래동화처럼 교훈을 주고자 작정하고 쓴 글이 아니라면 교훈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닌 장르이지만, 최은영 작가의 소설을 읽다보면 어느새 ‘그럴 수 있다’라는 위로를 받곤 한다.
이 글이 어느 독자의 하루의 어떤 시간대에 개입되어 읽히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되었든 오늘 하루 무슨 일이든 그럴 수도 있다. 결핍을 마주했을 때 스스로를 상처내지 않고 유연하게 품어내는 그런 하루가 되기를, 그리고 그런 하루를 살아냈기를 바란다.
김은기 (대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