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흐의 하나님
(<고흐의 하나님>, 안재경, 홍성사, 2014)
빈센트 반 고흐는 단연 한국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이다. 여전히 수많은 전시회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활동들이 끊이지 않는다. 조금만 주변을 둘러보면 반 고흐의 작품들은 크고 작은 오브제가 되어 자리할 정도로 우리 가까이에 있다. 그에 반해 반 고흐의 신앙과 영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그의 작품과 작가적 역량에 신앙의 삶은 가려있다.
반 고흐는 한 때 목회자의 삶을 꿈꾸었다. 네덜란드 개혁교회 목회자의 자녀로 태어났고 신학교 입학을 준비하기도 했으며 실제 탄광촌에 가서 평신도 전도자로 사역할 만큼 신앙열정이 깊었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어렵고 힘든 이들의 위로자가 되고 싶어 목회자의 길을 걷고자 했으나 정규신학교육을 받지 못했고 그 길에 대해 구체적이거나 민첩하게 행하지를 못했다. 다만 사명을 놓지는 않았고 대신 거리 위에서 고독한 화가의 삶을 택한다. 이런 배경 속에서 정착한 반 고흐의 신앙과 믿음에 대한 사고와 사유는 그의 그림에 깊숙이 배어있다.
반 고흐에 대한 서적은 수없이 많고 다양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작품 자체 혹은 미술적인 삶에 대한 해석과 작품의 연구 분석인 경우가 지배적이다. 일반서적과 자료에는 많은 경우 신앙적인 내용과 그의 영성에 대해서 제외하거나 곡해된 부분이 있다. 어떤 이들은 정확한 근거없이 일본 미술의 영향을 받은 반 고흐를 두고 다신론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고, 정신질환을 앓았다고 추정하여 이로 인해 그의 작품세계를 정신분석적으로 한정하거나 혹은 광신적이라고 폄훼하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그의 삶을 이해하는데 절대적인 자료가 되는 동생 테오에게 쓴 수많은 편지들 속에는 신앙적으로 살고자 애쓰던 작가의 치열함이 담겨있다. 사랑받는 만큼 오해도 많다.
분명한 것은 반 고흐라는 인간 자체와 그의 작품들을 신앙적인 관점에서 풀어가고 해석할 이유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눈으로 보면 익히 알던 그의 모든 작품들은 전혀 다른 해석으로 다가온다. 반 고흐에게 있어 그림은 신앙적 성찰의 산물이다. 자신의 사명의 길 위에서 그림으로 자유하고자 했던 한 영혼의 몸부림을 경험할 수 있다. 영혼을 향한 깊은 눈물과 아픔이 배어있는 선교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듯 그의 작품들을 다시 읽어갈 수 있다. 카라바조, 램브란트의 그림들이 주로 성경을 직시적이고 입체적으로 해석했다면 반 고흐의 그림은 지극히 우회적이랄까. 그림의 주체와 배경 속에 삶이 되어 캔버스 안에 녹아 있다. 어둡고 눅눅하지만 결코 초라하지 않은 생활, 힘들고 고되지만 여전히 소망 있는 삶. 그리고 거친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정직과 신앙의 순수함을 길 위에서 만난 농부와 광부들, 오래도록 신던 낡은 구두, 흔하고 일상적인 식사의 자리, 여인의 모습, 그리고 신비한 자연과 정물 속에 담아낸다. 이렇듯 반 고흐가 오롯이 담아낸 작품의 바탕에는 바로 그의 신앙과 걸어온 삶의 자리의 특별함이 있었다. 단순히 그림이 목적이기보다는 그의 신앙이 그림을 이끌어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가을이 익어간다. 물감으로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풍경들이 즐비하다. 그 이면에 우리 안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투박한 고민들도 깊어간다. "고흐의 하나님"을 펴고 계절의 풍경과 작가와 작품 사이에서 녹아있는 영성을 찾아가 보기를 권한다. 그가 남긴 편지와 글, 작품들을 통해 위대한 화가가 아닌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자 했던, 시대의 사람들과 뒤엉켜 구원을 이루고자 했던 젊은 그리스도인을 만날 수 있다. 지난한 삶의 현장과 신앙적 이상이 충돌하는 수없는 상황 가운데 옳은 답을 찾아가는 화가의 거룩한 여정을 만날 수 있다. 현실과 이상 속에서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지, 정직한 자아와 존재에 대한 인식, 소통과 신비, 자연과 상생하는 것에 대한 질문, 지난한 삶을 포용하고 고난을 넘는 방식 등 그의 작품이 말하는 삶의 신학과 성찰, 고민들을 하나씩 읽고 사유하다 보면 어느새 이는 우리를 위한 한편의 메시지가 되어 있을 것이다.
"빈센트는 천재가 아니라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마음을 강력하게 끄는 한 가지를 발견한다. 그림이다. 빈센트는 그림을 통해 구원의 길을 추구하고자 했다. 아름다움의 세계를 통해 구원에 이르고자 했다. 자신의 구원이 아니다. 그는 떼오에게 그림이 자신을 회복시켜 줄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될 거라고 말했다. 빈센트는 무의식에 희생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 사람이다. 그는 그림을 그리되 분명한 자의식을 가지고 계속 그림을 그려 나갔다."
(<고흐의 하나님> ‘자화상 연작, 나는 누구인가’ 중에서)
백성창 목사 (이천창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