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성경으로
<다시 성경으로>, 레이첼 헬드 에반스 지음, 칸앤메리 옮김, 바람이불어오는곳, 2020
“정말 그 사람은 하나님이 단 한 가지 의미만 담긴 이야기를 쓰셨다고 믿는 거니? 내 생각엔 한 가지로만 해석될 수 있는 이야기는 흥미도 또 오랫동안 기억할 만한 가치도 없단다.” - 하임 포톡, 『다비타의 하프』
보수적 복음주의 배경에서 자라면서 자신이 배운 성경과 실제 성경 간의 큰 차이를 발견했지만 끝까지 성경을 붙들고 밀당(?!)하며 씨름했던 레이첼 헬드 에반스(1981-2019)는 교회로부터 외면받고 소외된 이들, 소위 MZ세대라 불리는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인물로 미국에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확신에 찬 신앙에서 의심과 질문을 수용하는 믿음으로’ 점차 나아간 저자는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이들을 위해 전통적인 교회를 떠나 다시 교회로- 『교회를 찾아서』(2015), 문자주의와 지나친 자유주의를 떠나 『다시 성경으로』(2018) 돌아가는 여정을 글로 남겼다.
저자는 성경의 다양한 양식을 다루면서 독자들에게 친숙한 성경 이야기를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짧은 글과 성경의 양식에 대해 더 깊이 살펴보는 글을 번갈아 배치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특별히 각 장마다 앞에 배치된 짧은 글들은 성경 속 이야기의 틈새를 새로운 이야기나 일화로 채우면서 본문을 질문하고 상상하는 유대식 ‘미드라시’ 성경 해석법을 적용한 것인데, 저자는 랍비나 학자들뿐 아니라 성경을 진지하게 읽으려는 모든 독자들에게 상상력을 동원해 본문을 탐색해볼 것을 권한다. 평면적인 성경 인물들이 새롭게 되살아나는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자신이 직접 쓴 안내서인 ‘리딩 가이드’에서 ‘렉시오 디비나’와 ‘이냐시오 성경 해석’도 짧게 소개하며 독자들이 성경 속으로 깊이 들어가 자신의 삶과 밀접한 새로운 의미를 직접 발견해나가기를 격려한다.
저자는 또한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와 성경의 이야기를 오가며, 성경을 읽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성경의 부상과 몰락』의 저자 티모시 빌을 인용하며 “성경은 공동체를 만든다.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공동체가 생길 가능성을 열어 주는 것이다. 성경은 독자들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토론할 수 있도록 신학적 언어와 이야기를 제공”(70쪽) 한다고 말한다. 근본주의 기독교 집단에서 흔히 나타나는 승자 독식주의 방식의 해석은 이러한 방식과 다른데, 답정너 즉 한 가지 유일하고 최종적인 답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성경을 읽거나 가르치는 태도는 사람들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지 못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오히려 성경은 좀처럼 쉽게 답을 내놓지 않고, 복잡하고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는 다양한 목소리로 가득 차 있어서 우리를 대화로 이끈다는 점에 주목한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단일한 결정이나 믿음 또는 규칙이라기보다 인생의 변곡점이나 갈림길에서 끊임없이 찾아야 할 ‘길’ 혹은 ‘방향’에 가깝다.” (175쪽)
나는 레이첼 헬드 에반스가 마치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세계를 세상 모두가 발견하기를 바라는 탐험가처럼 열정적으로, 친절함을 잊지 않으면서, 진심을 다해 이야기한 것에 깊이 감명을 받았다. 그러한 정직함과 진실함이 성경을 읽으며 흔들리고, 회의하며, 질문하는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리라. 그녀는 심지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이야기 하는 피조물’로서 각자의 목소리로 이야기(복음)를 전해야 함을 일깨운다. 우리에게 그와 같은 열정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우리 자신과 우리 문화보다 거대한 이야기로,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이야기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하지만 우리가 그 이야기를 전달할 때 이야기는 우리가 처한 특정한 상황과 시간의 옷을 입는다. 우리는 이야기하는 피조물이다. 우리가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기 때문이다. 부디 이 선물을 썩혀 두지 않기를,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열정을 잃지 않기를.” (275쪽)
최규희 목사 (시냇가에심은나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