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문비 나무의 노래
마틴 슐레스케 지음/도나타 벤더스 사진, 유영미 옮김, 니케북스, 2013
아내가 어느 모임에 갔다가 이 책을 선물로 받아왔다. 2013년에 초판이 발행되었고, 2014년 개정 1쇄, 2022년 개정 22쇄로 발행되었다. 이는 근 10여 년 동안 꾸준히 독자들이 늘어났다는 증거이다. 읽어 나가면서, 책이 발행된 지 10여년이 넘어서야 읽게 된 것이 못내 아쉽기도 했지만 이제라도 읽을 수 있게 된 것만도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마틴 슐레스케는 독일 뮌헨에서 바이올린 제작 아틀리에를 운영하며, 해마다 20여 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의 악기를 제작하고, 악기들을 조율하는 일을 한다. 저자는 바이올린을 만들고 악기들을 조율하는 모든 과정에서 느낀 하나님의 뜻에 대한 깨달음과 지혜를 모두 52 가지 주제 글과 각 주제마다 이어지는 6개의 짧은 묵상 312개로 표현했다. 모두 364개의 짧은 글로 이루어져 있어 일 년 동안 하루 하루 묵상할 수 있게 구성이 되어 있다.
또한 각각의 주제 글 앞에 독일의 사진작가인 도나타 벤더스가 마틴 슐레스케의 바이올린 제작 과정을 찍은 흑백 사진 52장을 함께 수록함으로써 저자의 글이 바이올린 한 대를 완성하기까지의 그 작업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 묵상 내용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저자는 좋은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작업은 좋은 나무를 고르는 일이라고 한다. 저지대에서 자란 나무들은 온화한 기후 속에서 빨리 자라며, 나무 아래쪽에도 가지들이 무성하게 되는데, 이런 나무들은 세포벽이 단단하지 못하여 울림의 진수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에 고지대인 “수목 한계선 바로 아래의 척박한 환경”에서 2-3백년 긴 세월 동안 아주 천천히 자랄 수밖에 없고, 또한 햇빛을 받기 위해 아래쪽 가지들을 다 떨구어 내며 계속 위로 자란 가문비나무가 좋은 바이올린을 만드는 데 가장 좋은 나무라고 말한다.
“가문비나무는 위쪽에만 생가지를 달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가지들은 빛을 향해 뻗어가고 자라납니다. 빛을 통해서만 바늘잎이 나고 자랄 수 있습니다.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은 사멸합니다. 이는 살아있는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입니다.”(31) 저자는 이러한 가문비나무에서 아름다운 공명이 생기는 것처럼, 울림이 있는 인생을 살려면 쓸모없는 가지 같은 죽은 것, 옳지 않은 것들을 떨구고 빛을 추구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바이올린 제작자는 나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나뭇결을 존중하며, 그 나뭇결을 이용해서 작품을 만들고자 애쓴다.’고 말한다. 하나님도 이처럼 우리를 “우리가 지닌 결의 방향과 지난 날의 어려운 역사를 헤아려 좋은 울림”이 있는 존재로 빚어 가신다고 한다. “나뭇결을 존중하면 바로 그 나뭇결이 비로소 개성 있는 울림을 만들어 줍니다. 제작 과정에서 나뭇결을 존중할 때 비로소 나는 좋은 제작자가 될 것입니다. 실수투성이에, 특이한 생장, 이상한 결에도 불구하고 신은 우리가 좋은 울림을 내도록 만들 것입니다.”(87)
그러므로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데는 존중과 자비가 필요합니다. 법칙을 존중하고 나무를 자비롭게 대해야 합니다. 우리 삶에도 이 두 가지가 어우러져야 합니다. 존중과 자비가 함께하지 않은 바이올린에서는 날카롭거나 둔탁한 소리 혹은 콧소리가 납니다. 그런 천박한 울림 자체가 벌입니다.”(92) 라고 말한다.
하지만 각자의 결을 존중한다고 해서 엉망진창이 되도록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좋은 바이올린 제작자는 나뭇결을 존중하지만 바이올린 곡면을 만드는 규칙 역시 존중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나무는 좋은 울림을 할 수 없다면서, 개성을 존중한다고 그 자체를 법으로 떠받들지 말라고 한다.
이렇게 바이올린 제작자가 나무를 다듬어 노래하게 하듯이 하나님도 우리를 나무삼아 작업하신다고 한다. 그러기에 저자는 우리의 소명에 해가 되는 것들을 버리고, 가난한 마음을 지니라고 말한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손에 의탁할 때 ‘우리 안에서 창조적이고 선한 것은 보존되고 미성숙하고 혼탁한 것, 사랑과 소망과 평안과 쉼을 잃은 마음이 제거될 것’이라고 한다(97).
저자는 첼로의 A현이 완전히 막힌 소리가 난다며 조율을 하러 온 첼리스트가 마치 자기 몸의 일부가 아픈 것처럼 말하고, 열린 음을 되찾으려는 첼리스트의 안타까워하는 모습 속에서, 저자는 인간이 제 음을 찾지 못하고 막혀 버렸을 때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꼈다면서 말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악기입니다.”(125).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조율된 악기입니까?”(137).
저자가 만들고 싶은 악기는 “영혼을 만지는 악기들”이다. “그들이 내는 음에는 카리스마가 있습니다. 그런 악기는 듣는 이의 마음을 활짝 열게 합니다. 그런 악기들은 억지 부리지 않고, 의기양양해 하지 않습니다. 천박하지 않으며, 음색 조절 범위가 넓습니다. 이런 악기들은 우리의 마음을 얻고자 합니다.” 저자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인생을 이런 악기들처럼 만드신다고 한다. 그러면서 은혜는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포기하지 말고 자기가 누구인지 배우라! 오로지 자기 자신이 되라. 모든 악기가 자신만의 고유한 공명판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우리 삶에서 의미 있는 일은 은혜와 일의 긴장 관계, 조화로운 대립 속에서 아름다운 울림을 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일은 삶의 내용이며, 은혜는 삶의 힘입니다. 은혜와 일이 균형을 이룰 때 삶이 아름다워집니다.” 라고 말한다. 아마 이 묵상집이야 말로 이처럼 은혜와 일이 균형을 이루어 생긴 아름다운 결정체로 보인다.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니라 늘 곁에 두고 곱씹고 싶은 책이다.
김수영 목사(대영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