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르시시즘 다시 생각하기
(크레이그 맬킨 푸른숲, 2017)
책의 시작 부분을 읽자마자 이 책에 대한 읽고 싶은 강렬한 호기심이 깊어졌다. 하버드 외과대학 전임강사이자 임상 심리학자이며 나르시시즘과 나르시시스트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자인 저자가 왜 심리학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르시시스트였던 자신의 어머니때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자 가장 짜증나는 사람이었던 자신의 어머니가 왜 나르시시스트가 된 것일까?에 대한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고 나르시시스트 어머니를 이해하기 위해 심리학자가 된 저자는 나르시시즘의 극단적 형태인 ‘자기애성 인격 장애’환자들을 상담하면서, 나르시시즘이 고정된 성격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위안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하나의 습관’임을 발견한다.
나르시시즘에 대한 다른 책과 차이점이 있다면 저자는 나르시시즘이 회복되지 않는 성격장애가 아니라 하나의 스펙트럼임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르시시스트는 인생에서 반드시 피해야 할 구제 불능의 정신 질환자, 사이코패스로 다뤄졌지만 저자는 25년 넘는 임상을 통해 나르시시즘을 향한 뿌리 깊은 오해를 밝힌다. 그리고 그는 30년 넘게 나르시시즘 검사 도구로 활용된 ‘자기애적 성격검사(NPI)'의 한계를 보완한 모델로 ’나르시시즘 스펙트럼 등급(NSS)를 개발하여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사람의 태도와 정서와 성격이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흐릿한 것처럼, 나르시시즘은 명학하게 ‘있다 없다’로 나눌 수 없으며 1-10까지 이어진 선의 ‘스펙트럼’형태로서 나타낼 수 있다고 말한다. 30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겐 필독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좋은 책이다. 멈추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나르시시즘이란 무엇인지를 다룬다. 1부에서 내게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나르시시즘을 둘러싼 논쟁을 설명하는 2장에서 나르시시즘이라는 용어를 세상에 널리 알린 이가 프로이트라는 점과 프로이트 이후 하인즈 코헛(Heinz Kohurt)과 오토 컨버그(Otto Kernberg)라는 두 거장들의 나르시시즘에 대한 불꽃 튀는 대결들이었다.
3장에서 나르시시즘은 하나의 스펙트럼임을 알려주고 있는데 앞서 소개한대로 굉장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1부터 10까지의 스펙트럼의 우측 끝에 나르시시스트가 있고 왼쪽 끝에 에코이스트가 있다. 중앙의 4-6이 건강한 나르시시즘이다. 이런 스펙트럼에서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 3가지 평가를 하는데 극단적인 나르시시즘(Extreme Narcissism. EN)성향, 나르시시즘 결핍(Narcissism deficit, ND)성향, 그리고 건강한 나르시시즘(Healthy Narcissism, HN)에 대해 평가하여 최종적으로 에코이스트와 나르시시스트 사이의 스펙트럼 내의 성향을 알 수 있다.
나르시시즘이란 일방적으로 고쳐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있다. 하지만 ‘적당한 만큼’ 있어야 한다. 나르시스트 성향이 심해질수록 타인보다 자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자신이 너무 중요해서 타인은 자신을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자신의 욕구와 욕망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위해 타인을 조종하거나 통제하는 가스라이팅을 행한다. 자신은 실수나 결점은 있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남 에게 책임전가를 하고 남탓을 한다. 또한 자신은 강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 안의 나약함을 인정할 수 없다. 자신의 나약한 감정이나 외로움 등을 끊임없이 감추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고 우월함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외로움과 나약함을 찾을 수도 있다.
반면 나르시시즘이 정상 범위보다 너무 적은 사람들은 ‘에코이스트’라고 불린다. 에코는 우리에게 보통 ‘메아리’로 번역되는 단어이다. 그들은 메아리처럼 살아간다. 자기 자신만의 어떤 것을 숨기기 위해 애쓰고 최대한 다른 사람들 속에서, 사회 속에서 묻어가기 위해 애쓴다. 자신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피해 정도가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이 신경 쓰는 것조차 두려워해 많은 일들을 하기 두려워한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고, 자신의 욕구를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에 삶의 의욕이 없으며, 스스로를 주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존재감 없이 외롭게 지내기도 한다. 의욕이 없는데다가 끊임없이 남 눈치를 보는데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삶이 힘들다. 에코이스트들은 나르시시트의 먹이감, 정서적 호구가 된다.
극단적 나르시시스트는 정신적(성격) 장애인이고 극단적 에코이스트는 정신적 환자인 경우가 많다. 장애인은 고치기 힘들고 육체적 장애인과 달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환자는 운동, 심리치료, 약으로 고치고 도와야 할 존재이다. 저자가 개발한 ’나르시시즘 스펙트럼 등급(NSS) 검사지가 1부에 들어 있으니 자신이 이 나르시시즘 스펙트럼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더 정확한 검사를 하려면 자신을 잘 알고 있는 가까운 사람이 해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2부에서는 건강한 나르시시즘과 위험한 나르시시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성과 양육방식, 기질과 환경이라는 두 요인이 에코이스트와 나르시시스트의 탄생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재까지 나르시시즘에 관한 영향은 부모의 ‘양육환경’이 더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양육하느냐에 따라 아이가 스펙트럼의 어느 지점에 자리를 잡을 지 결정된다고 한다. 또 하나의 결정 요인은 문화이다. 우리가 어떤 성향을 타고날 수 있지만 결국 스펙트럼에서 우리가 자리 잡는 위치는 살아가면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 우리 주변 세상의 영향을 받기에 나르시시스트와 에코이스트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3부에서는 위험한 나르시시스트를 상대하는 방법이 나온다. 아마도 독자들이 실제적으로 가장 원하는 내용일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나르시시스트와 같이 있다는 사실을 조기에 알려주는 징후가 있음을 알려준다. 나르시시스트는 슬픔, 두려움, 외로움, 걱정을 포함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취약한 감정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는 감정공포증이 있다. 나르시시트는 뉘우치거나 후회하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나르시시스트는 정상적인 인간의 연약함을 감추기 위해 몇몇 심리 전략에 의존한다. 바로 이것이 나르시시스트임을 폭로하는 징후이다.
나르시시스트들의 보내는 위험신호, 즉 감정을 회피하는 다섯 가지 조기 징후는 다음과 같다. 첫째, 화를 내거나 화제를 돌린다, 극도로 불안정한 나르시시스트들이 자신감을 강화하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은 자신은 완벽하게 자립할 수 있고 타인의 행동과 기분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타인의 행동이나 말 때문에 기분이 상하거나 상처를 입어도 내색하지 않는 대신 화가 나서 길길이 날뛴다. 거들먹거리며 잘난 체하면서 우월감을 함께 드러낸다. 그렇게 허세를 부리면서도 길길이 날뛰고 고함치는 목적은 자신의 기분이 상했다는 사실을 감추는데 있다.
둘째, 자신의 감정을 상대에게 떠넘긴다. 감정공포증이 감정을 몹시 불편해하는 심리를 의미한다면, 뜨거운 감자를 떠넘기듯 감정을 떠넘기는 행동은 일종의 감정 제거 전략이다. 이 전략은 지금 불편한 감정에 휩싸여 있는 장본인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너라고 우기면서 자신의 감정을 부인하는 더 교활한 투사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며칠이 지나도 회신조차 하지 않더니 대뜸 “나한테 뭐 화난 거 있어?”라고 묻는 친구와 같은 경우다. 이 친구는 자신의 화난 감정을 인정하는 대신 도리어 상대방이 자신에게 꽁해 있다고 비난한다.
셋째, 상대가 먼저 포기하게 만든다. 나르시시스트는 일반적으로 도움을 청하거나 자신의 욕구를 직접적으로 알리는 것을 거북해한다. 그런 행동은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자신의 현실을 직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대개 행사를 주선한다. 직접 뭔가를 부탁할 필요가 전혀 없는 아주 편리한 방법이다. 예를 들어 평상시와 다른 계획을 세울 때마다 마지막 순간에 전화를 걸어 취소하는 친구가 있다. 이런 사람들은 ‘나는 이것보다 저걸 더 하고 싶다’고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저 세운 계획을 무효로 만들 뿐이다.
넷째, 상대가 우쭐해지도록 떠받든다. 나르시시스트들이 친구나 연인, 상사를 강박적으로 떠받들 때, 그것은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려는 또 하나의 방식일 뿐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떠받드는 것은 나르시시스트들의 위험신호이다. ‘이렇게 특별한 사람이 나를 원한다면, 나 역시 아주 특별한 사람임이 분명해’라는 논리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상대방이 평범한 인간이라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 불완전한 인간은 늘 실망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잘못된 기대가 무너져 실망스러울 경우 상대를 무시한다.
다섯째, 영혼의 단짝을 찾아 헤맨다. 나르시시스트는 어떤 사람에 대해 영혼의 단짝, 소울메이트라고 하면서 그 사람이 자신과 닮았다는 증거를 마음속에 차곡차곡 모은다. 이것은 상처입기 쉬운 감정을 회피하는 나르시시스트의 방법이다. 너와 내가 완벽하게 똑같다면, 다시 말해 우리가 한마음이라면 두려움은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없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 우리는 똑같은 것을 원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고 여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너와 나는 모든 부분에 의견을 같이 하기 때문에 네가 내 욕구를 만족시켜 주지 않으려고 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 때문에 관계는 깨질 수밖에 없다. 두사람이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너와 내가 다르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 현실이 시작된다. 이 외에도 8장에서는 가족, 친구, 연인, 등 외면할 수 없는 나르시시스트들을 상대하고 변화시키는 법을, 9장에서는 직장에서 나르시시스트 동료나 상사나 부하직원을 상대하는 법을 소개한다.
마지막 4부에서는 건강한 나르시시스트로 살아가기 위한 내용이다. 10장에서는 자존감 높고 행복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 알아두면 좋은 양육의 원칙들을 소개한다. 좋은 양육의 시작은 ‘적절한 온정과 통제’라고 말한다. 건강한 나르시시즘을 길러주는 여덟 가지 전략을 소개한다. 그것은 “충분히 공감하라, 좋은 점을 집어내라, 먼저 본을 보여라, 한계를 정하라, 자녀를 지도하라, 따뜻하게 대하되 아이의 생각을 존중하라, ‘다시 하기’로 상황을 바로잡아라, 자원봉사를 하라”이다.
11장에서는 소셜미디어와 나르시시즘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를 진정한 인간관계에서 더 멀어지게 하는 모든 것은 나르시시즘 중독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특히 디지털 세상에서는 타인과 진정으로 관계 맺는 대신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고 공허한 자랑질을 해대기 쉽고, 나르시시즘 스펙트럼의 양 끝으로 사람들을 떠밀기 쉽다고 말한다. SNS에 자신을 멋지게 꾸며 찍은 사진과 명품과 고가의 자동차와 비싼 음식과 여행사진을 올리는 이들은 대부분 나르시시즘이 강한 사람일 경우가 많다. SNS에 올린 사진이나, 댓글로 칭찬받은 자신의 아이디를 보며 ‘이게 바로 나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맑은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사랑에 빠진 나르키소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저자는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는 여섯 가지 SNS전략을 소개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주변에 진짜 친구들을 두어라, 마음을 터놓아라, 목적있는 커뮤니티를 찾아라, 자기홍보를 삼가라, 올리기 전에 생각하라. 현명하게 팔로우하라”
마지막 12장에서는 저자는 자신의 이익과 다른 사람들의 욕구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훌륭한 인생이고 그것이 건강한 나르시시즘이라고 말한다. 건강한 수준의 나르시시즘을 소유한 이들은 스펙트럼상 4~6에 해당하는 이들이다. 저자는 이들에 대해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특별함을 지각하여 야망을 가지지만, 자신도 실패할 수 있음을 알고, 실패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라고 한다. 건강한 나르시시즘은 자아도취와 타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 사이를 매끄럽게 오가는 것을 의미한다. 건강한 나르시시즘은 우리에게 모험과 자아발견으로 가득한 삶을 일궈나갈 힘을 주고 열정과 연민이 어우러진 정말로 신나는 삶을 선사한다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나르시시스트들은 스펙트럼상 9, 10에 해당하는 자기애성인격장애자에 해당하는 경우와 7, 8에 해당하는 미묘한(습관적인) 나르시시스트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에 해당하는 이들이 30%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나르시시스트들로 인해 피해를 받는 소위 에코이스트들이 너무도 많다. 정작 가해자인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의 문제를 전혀 모르고 있고, 피해자인 에코이스트들이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문제는 이 나르시시스트들을 알아보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친분이 쌓여야 알 수 있다. 피상적 관계에서는 정체를 알기 어렵다. 그리고 나르시시스트를 상대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나르시시즘과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지식을 갖는 것이 피해 받고 학대받는 에코이스트들을 자유케 하는 길이다. 대부분 피해자들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은 유년기 부모의 양육태도와 환경이 나르시시스트를 양산하기에 자녀에게 충분히 좋고 바람직한 사랑의 양육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부모교육과 국가적, 사회적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이다. 자녀를 낳고 잘 양육할 수 있도록 교육적이고 상담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여러 가지 사회 복지적 지원을 해 주어야 나르시시스트 양산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만들어져버린 나르시시스트들로 인해 이 사회가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임석한 목사 (양정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