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 안에서
<설교자를 위한 어거스틴의 고백록>, 이경재 저, CLC, 2013.
신학생 시절, 늘 곁에 두고 읽던 책이 어거스틴의 “고백록”입니다. 아니, 그냥 곁에만 두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합니다. 어거스틴이 얼마나 위대한 신학자이며, 고백록이 얼마나 멋진 신학책인지 알았기에 늘 그 뜻에 닿으려 노력했지만, 매번 겉핥기에 그쳤습니다. 왜냐하면, 고백록은 쉽게 읽히는 에피소드 속에 심리학적, 철학적, 신학적 통찰이 깊이 깔려 있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저의를 깨닫지 못한 채, 표면만 만지작거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백록을 읽을 때는 좋은 선생님이 꼭 필요합니다. 지금 소개하는 책이 고백록을 읽기 위한 좋은 선생님이자, 안내자가 될 것입니다. 이 책은 고백록을 홀로 읽고, 이해하고, 깊은 층위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이드북 입니다. 본서는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해석학을 가르쳐온 이경재 교수가 그의 은퇴 기념 저술로 발간한 책입니다. 한 신학자가 물러날 때쯤 논할 수 있는 책이 고백록이라 생각을 하니 그 묵직함이 더해집니다.
어거스틴이 고백록을 집필할 때의 나이는 43세입니다. 히포의 감독으로 봉직할 때이지요. 그러니 이 책은 자신의 자전적 고백을 빌어서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을 전하고 깨닫게 할 목적으로 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질문과 고백은 ‘신을 향한 영혼의 여정’(Itinerarium mentis in Deum)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백록은 전체가 하나의 기도문입니다. 그 시작이 ‘찬양’으로 출발해서 ‘아멘’으로 끝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고백록은 13권의 문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전적 기술은 1권에서 9권까지로, 어머니 젖을 빨던 유아시절 이야기로 시작해서 어머니가 죽고, 이제는 어머니 교회의 젖을 빠는 현재의 이야기로 끝맺음을 합니다. 여기에는 U-turn 구조가 발견됩니다. 이야기가 U구조를 가지고 내려가는 부분과 올라가는 부분이 짝을 이루고 있다는 말입니다. 즉, 1-5권까지는 죄와 탐욕의 모습, 방탕하고 이단에 빠졌던 이야기를 통해 하강하고 있다면, 5권에서 9권까지는 마니교에서 기독교로 참 진리를 깨우친 이후에 신자가 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며 전적인 회심을 경험하는 상승구조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5권을 중심으로 하강과 상승의 변증법적 역동성이 드러납니다. 역시 그 중심에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습니다.
이 안에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많이 등장하는데, 스토리텔링을 통해 사건 속에 숨겨진 신학적인 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젖 빠는 모습을 보면서 죄의 본성을 드러내는가하면, 배 도둑질했던 이야기를 통해 ‘사람에게는 죄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고발합니다. 이런저런 방탕한 생활 이후에 진리를 찾기 위한 여정이 그려지고, 그 과정에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설명됩니다.
고백록의 후반부 10권부터는 매우 사변적이고, 철학적이며, 신학적인 내용이 다뤄집니다. 10권은 기억에 대한 이야기, 11권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 12권과 13권은 창세기 1:1-2의 천지창조에 대한 주석입니다. 그리고 창조에 대한 명상과 함께 13권의 고백록, 그 대단원의 막이 내립니다.
이경재 교수는 자신의 책 1부를 통해, 어거스틴의 고백록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과 개념을 잡아주고, 2부부터는, 고백록에 담긴 이야기 너머의 학문적 분석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배 도둑질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 어거스틴의 언어철학과 성서해석학, 정치철학, 역사철학, 시간과 영원에 대한 담론들입니다. 역시, 안내서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만만한 내용은 아닙니다.
저는 이 글을 접하는 신앙인들에게 고백록을 직접 읽어보기를 권하고, 이를 위하여 이경재 교수가 쓴 안내서의 도움을 받길 추천합니다. 찬찬히 읽다 보면 이 이야기는 우리가 느끼고 경험하며 깨닫는 삶의 모습이기에 깊은 연대감(보편성)을 느낄 것이고, 그것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은총에 가슴이 일렁이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죄로 일그러진 인생이지만, 그 모든 것을 덮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을 인도해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가을, 어거스틴이 전하는 하나님의 섭리에 물들어가면 좋겠습니다. 고백록의 첫 구절로 글을 마칩니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서(ad te)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in te) 안식할 때까지는,
평안할 수 없습니다. (1.1.1)
인간의 삶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여정(U)입니다. 그 과정에 하나님이 비추시는 은총의 빛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신동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