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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11-10 11:29
   
거울, 전복, 마주봄
 글쓴이 : dangdang
조회 : 2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377 [65]


 

거울, 전복, 마주봄

 

페터 한트케의 <관객모독>

 

이 널빤지 무대가 바로 세상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 널빤지는 세상에 속합니다. 이 널빤지는 우리가 그 위에 서는 것을 도와줍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의 세계입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울타리 밖 구경꾼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주제입니다. 여러분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언어의 중십니다. (22p)

 

 <관객모독>은 출판 시점부터 지금까지 ‘문제작’이라는 평을 받아온 짧은 희곡이다. 실연에서는 다수의 욕설이 난무하기도 하고 보통 익히 알고 있는 연극적 형식을 벗어나 있는 점 때문이었다. 또한 특별한 스토리나 서사도 없이 일장 연설이나 궤변같기도 한 말을 함부로 내뱉는듯한 서술방식도 화두였다. 

 그럼에도 이 책이 스테디 반열에 오르고 꾸준히 명작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형식의 파괴라는 혁신성만이 아니라 무대와 관객석, 시연과 실제의 세계를 전복시키고, 거울로 삼고 또한 묘한 이분법으로 끊임없이 자신 속의 자신을 마주보게 함으로서 끊임없는 역설과 의문을 던져 우리를 고착되지 않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위에 인용했듯이, <관객모독>은 관객이 주제이다. 우리가 주제이다. 그럴싸한 내용, 연기, 무대장치, 현실에 가까우나 현실은 아닌 창작적 세계를 통해 망각의 효과를 보러 온 관객들을 향해 우리가 ‘주제’란다. 이 태도는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된다. 그리스 고대 희곡부터 브레히트나 체호프가 쌓아 온 창작된 세계의 시연을 거부한다. 되려 감상하려 앉아 있는 관객들을 끊임없이 주제로 다루고 ‘여러분은 ---입니다.’ 와 같은 연구가적 관점으로 뜯어 보는 면모를 통해 관객은 아무런 준비없이 일상 자체를 무대로 노출한 듯한 낯선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든다. 

 

연극이 상연되었던 것이 아니라 현실이 상연되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상연되었던 것입니다. 무대는 법정을 상연했습니다. 무대는 투기장을 상연했습니다. 무대는 도덕적 교육을 상연했습니다. 무대는 꿈을 상연했습니다. 무대는 재례 행위를 상연했습니다. 무대는 여러분을 위한 거울을 상연했습니다....... 현실인 시간은 연기될 수 없습니다. 시간은 연기될 수 없기 때문에 현실 역시 연기될 수 없습니다. (50-51p)

 

 인간은 관찰자로 존재인식을 한다. 관찰의 본능이 있다는 뜻이다. 관찰의 본능은 바라봄, 마주함이다. 한트케는 작품에서 ‘의미’에 대해서 우리가 발견했었어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 은근히 훈계질을 한다. 관찰의 본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을 비난한다. 그리고 작품 속 연기자들은 끊임없이 관찰한다. 

 

여러분은 생각없이 앉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앉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함께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함께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자유롭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면서 여러분의 생각을 파고듭니다.(19p)

 

 작품은 단호하지만 쉽게 전복되는 역설로 우리를 관찰한다. ‘여러분은 함께 생각합니다.’ 라고 했다가 곧바로, 혹은 다음 단락에서 ‘여러분은 함께 생각하지 않습니다.’로 어떤 맥락도 없이 바로 전복시키는 관찰은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반박할 여지마저 빼앗는다. 무대와 객석의 전복, 관찰의 전복은 고리처럼 연결된 역설로 끊임없이 관객을 압박하고 감정적이 되도록 만든다. 

 하지만 무대는 끝까지 방관자다. 아무런 무대 장치 없이 선 4명의 실연자(연기자)는 관객에 대해 설토하지만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우리’라는 인칭대명사로 한 데 묶는다. 관찰의 본능에 냉소가 섞이면 방관자가 되기 때문이다. 비아냥, 또는 조롱의 느낌을 받는 것은 끊임없는 관찰이 방관을 전재로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다. 그런 점에서 사실 이 작품은 극후반부의 노골적인 욕설세례보다 전반부와 중반부를 아우르는 고저없는 말들이 훨씬 더 관객을 모독한다. 하지만 동시에 관객은 이 방관이 거울 마주보기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쉬지 않고 여러분에게 말하는 동안 우리와 여러분은 통일체를 이룹니다. 여러분이라고 말하는 대신 우리는 특별한 조건에 따라 우리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중략) 여러분의 시간, 즉 관객과 청중의 시간은 우리들의 시간, 즉 말하는 사람의 시간과 통일체를 이룹니다. (41p)

 

 <관객모독>은 감동, 사랑, 공감과 같은 보편적인 감정선이 아닌 색다른 감정으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기분이 상하는 동시에 자극되는 묘한 쾌감과 함께 직설적인 훈계들, 독자(관객)과 화자(연기자)를 수없이 전복시키고 서로를 마주보게 하는 역설을 통해 자의식과 자아를 발끈하게 만든다. 이같은 자극을 견뎌내며 “우리가 여러분에게 말을 걸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의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에 수긍하면서 가끔 한 번씩 스스로를 관찰하고 새롭게 인지해 볼 일이다. (『관객모독』, 페터 한트케, 민음사, 값 7,000원)

 

그래도 여러분의 자의식은 대단하군요.(43p)

 

박창수 목사 (인천 성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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