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만가만 나를 안아주는 책
(<고요한 포옹>, 박연준 지음, 마음산책, 2023)
근래에 여러 권의 책을 읽었지만 역시나 나누고 싶은 문장들과 책은, 읽으면서 내내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마음을 동하게 하는, 나와 결이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진심을 다해 써내려간 책이다.
박연준 시인의 이 맛있고 생생한 문장들을, 작가가 살아내는 동안 온전히 느끼고 깨달은 이 사유를 독자란 이름으로 이렇게 쉽게 누려도 될까 하는.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문장에 오래도록 머물며 이 책을 세상에 내보여준 작가에게 되려 감사하게 되는. 부디 쓰는 것을 멈추지 말아주세요..! 하고 항상 마음 속으로 응원하게 되는.
박연준, 그녀는 나에게 그런 작가이다.
인스턴트 이스트로 빠르게 만들어지는 빵처럼 쉬이 찍어내는 책들 사이에서, 속이 그득 찬, 진짜만을 말하는 보석 같은 책.
고요한 포옹, 이 책 서문에 시인은 말한다. “이 책에는 수많은 금이 들어 있다. 금 간 영혼을 수선하느라 골똘히 애쓴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되고 싶은 나’와 ‘되기 쉬운 나’ 사이에서 괴로워하다 금을 간직한 내가 되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이제 나는 열정적 포개짐보다 고요한 포옹이 좋다. 당신이 간직한 금이 혹시 나로 인해 부서지지 않도록 가만가만 다가서는 포옹이 좋다. ... 끔찍하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금 간 것을 계속 살피고 보호하려는 마음을 키우고 싶다. 어렵더라도”
‘하나님 우리의 삶을, 우리의 인생을 대대적으로 수선해주세요.’하고 기도하던 즈음 이 책을 만났다. 서문을 읽다가 놀란 이유다. 금이 간 것들을 모두 내다 버리거나 끝이라고 단정 짓는 것이 아닌 금을 간직한 채, 균열을 품고도 계속 되어지며 자라나는 삶을 이야기해 주는 책.
이 산문을 읽는 동안, 따듯하고 커다란 품에 가만히 안겨져있는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쓰는 이의 영혼이 담긴 활자의 위로란! 종이 위에 쓰여진 언어를 통해 그의 온기가 그곳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것만 같았다.
“나는 오랫동안 하기 싫은 일을 덜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 나는 ‘나’를 잃고 싶지 않았다. 부조리한 사회시스템에 끼어 함부로 나를 굴리다 타성에 젖은, 비루한 영혼을 갖게 될까봐 두려웠다. 내가 바라는 건 하나였다. 내 영혼이 내 몸과 하나가 되게 해주세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간극이 지나친 나머지 정신에 때가 끼지 않게 해주세요. 부디 ‘나’로 살게 해주세요.” p59-60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나는, 내가 사고하던 것들을 어떻게 이렇게나 정확하게 문장으로 옮겨놓을 수 있는지 탄복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의 한계를 뛰어넘어 특별하고 대단한 것이 되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작가는 세상에 돋아난대로 생긴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나로서 살라고 이야기 한다. 나를 잃지 않고 살기위해선 먼저 본인 스스로 나를 알아보아야 한다고. 홀로 나자신을 마주하며 나를 알아나가는 시간을 지나, 자신을 지키며 자기 본성에 맞는 삶을 살아가라고.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행복할 가능성은 없다. 행복은 체험이다. 많이 겪어본 사람이 더 자주, 쉽게 겪을 수 있다.” p61
“우리의 꿈은 엄청난 부자가 아니라 ‘나로 살기’일지 모른다. 나 아닌 나로 살 위험에서 벗어나기. 싫은 일을 덜 하고 불안감에 떨지 않으며 안전한 환경에서 나로 살기. 내 생김 그대로 살기.” p62
“지금은 안다. 이게 내 생김, 내가 살아가는 태도라는 것을. 나는 무리하지 않고 느긋하게, 하지만 정성을 들여 그곳(고지!)으로 가는 타입이다. 얼마 전에는 일기장에 호기롭게 이런 문장을 쓰기도 했다.
나는 당신보다 더 잘 쓰거나 더 못 쓸 의향이 없다. 나는 딱 나만큼 쓸 것이다.
살면서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려 한다. 창작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잘하고 못할 수가 없다. 딱 자기만큼(정확히는 자기 안목과 성실함만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연연해야 할 건 나, 내 삶, 내 생각이다. 너, 네 삶, 네 생각은 다른 차원에서 생각할 문제다 ” p67-68
요즘 나는, 보여지는 것들에 연연할 수 밖에 없는 sns를 멀리하며 타인에 대해 연연하지 않고 나에게 집중하며 나를 몰입하게 만드는 것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고 있었던 터라 이 문장들이 더 와닿았다. 나는 나다. 나를 잃지 말고 나로 살자!
“당신이 오늘 우울하다면 이런 부탁을 하고 싶어요. 작아지세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작고 작아져 사소함에 복무하세요. 우울할수록 스스로를 너그러이 봐주세요. 그날 하루 커피 한 잔 마시기, 깨끗이 얼굴 씻기, 공들여 한끼 챙기기를 해내자고 자신을 설득하세요.” p77
“투명해지고 싶은 나와 진해지고 싶은 나, 이 사이에서 종종 싸운다. 둘 다 나다. 되고 싶은 나와 되기 쉬운 나 사이에서 균형 잡기, 요새 내가 열중하는 공부다. 어려운 건 언제나 되고 싶은 나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이 질문이 계속 공부하게 한다.” p98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뭘 시작하는 데 두려움을 갖는다. 그는 ‘망설이는 인간'이 된다. 새로 일을 시작할 때마다 늘 망설인다. ... 당시 내 소원은 단순했다. ‘자유로운 돌이 되게 해주세요.’ 부디 자유로이 펄펄 뒹구는 돌, 움직이는 돌이 되게 해주세요!” p101
읽는 내내 내 안의 뜨거운 것이 일렁인다. 무언가가 꿈틀꿈틀 간질간질, 발을 동동 구른다. 다른 누군가도 그녀의 책을 읽고 내면의 무언가가 건드려지고 꿈틀되었으면 하고.
“씨앗에게 싹은 기다림 끝에 돋아난 기적이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는 오직 그 씨앗만이 안다. 싹은 작은 나무가 되고, 작은 나무는 큰 나무로 자란다. 중간에 멈출지라도, 큰 나무가 되지 못할지라도 모두에겐 나름의 시간이 필요하다. ... 이유가 없어 보일지라도 이유가 있다. ‘아직’이라는 씨앗은 ‘기어코'라는 열매를 맺는다. 우리가 기다림의 순정에 머무를 수 있다면.” p196-197
“나는 이런 책에 사족을 못 쓴다. 웃음과 눈물에 솔직한 책, 외투가 없는 책. 마음이 외투인 책.” p200
사람이 그러하듯, 책도 그러하다. 작가가 이런 책에 마음을 빼앗기는 이유는 그녀 또한 종이 위에서 솔직해지고 투명해지기 때문이리라.
책의 244페이지 중에서 나누고 싶은 문장들을 모두 옮겨 쓸 수 없음이 아쉬웠다.
박연준 시인의 문장은 읽는 이를 고요히 따듯하게 가만가만 안아주고 다독여준다. 숱한 밤 당신 자신으로 살기위한 작가의 몸부림을, 당신의 진하고 아름다운 사유를 통해 읽는 이의 사고를 넓혀주고 마음을 만져주어서 감사합니다.
김은진 (윌로우리버 연합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