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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11-04 00:44
   
세상에 생명을 주는 신학을 기다리며
 글쓴이 : dangdang
조회 : 3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354 [72]

  

세상에 생명을 주는 신학을 기다리며

 

(<세상에 생명을 주는 신학>, 미로슬라브 볼프, 에슈 크로스문, 백지윤, IVP, 2020)

 

하나님은 세상 속에 신앙공동체를 세우시고 가시적 하나님 나라의 표본을 보이셔서 잃어버린 에덴을 회복하기 원하셨다. 교회가 그런 일을 온전히 행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성서에서 ’너희 아버지께서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주님의 말씀 속에서의 ’온전‘은 악인과 선인을 구분하지 않고 온 세상에 해와 비를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 후 하신 표현이다. 우리만의 세계를 구축해서는 교회를 세우신 목적을 이룰 수 없다. 교회는 공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

 

교회의 정체성을 세우는 역할은 신학이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신학은 배제되기 일수다. 신학적 담론이 교회사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신학은 서구신학 중심으로 이루어진 유물에 가깝다. 신학은 시대에 대한 해석이며 해답이다. 한국교회에서 언급되는 서구신학자는 그 시대, 그곳에서의 문제를 신앙적으로 답한 이들이다. 그들의 신학을 한국 안에서 답습하는 것은 맞지 않다. 한국교회에서 신학의 역할이 이렇다 보니 공부만 하고 실천은 전무하다. 신학이 세상에 생명을 줄 수 있을까? 기독교는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 

 

“신학이 그 목적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교회의 손실이자 세상의 손실이다.”

 

미로슬라브 볼프와 매슈 크로스문의 <세상에 생명을 주는 신학>은 신학의 자리를 회복하자고 말한다. 이 책에서 신학이 세상의 번영(flourishing life)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번영이라는 단어에 부정적 견해를 보일 것 같다. 여기에서의 번영은 물질적 번영이 아닌 참된, 좋은, 가치라는 방향을 갖고 있는 단어다. 다시 말해 신학이 이 세상을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말이다.

 

신학의 세상에 생명을 주어 번영하는 삶을 누리는 역할을 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신학이 세상과 단절된 상태에서 하늘(형이상학)에 시선을 고정시켰기 때문이다. 성서 자체가 시대적 상황과 문화를 담고 있기에 역사, 철학, 사회, 심리학, 종교학 등 다층적 표현으로 기록되었다. 그렇다면 오늘날도 신학적 활동이 세상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응답할 필요가 있음에도 공적의무를 감당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음악으로 표현하는 악보 그대로를 연주하는 정격연주보다 기본적 바탕(멜로디와 코드)에서 증흥연주를 할 수 있어야 세상과 소통하고 생명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세상에 생명을 주는 신학은 바울이 로마서 14:17에서 이야기한 정의, 평화, 기쁨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정의는 세상과 소통하는 신학적 몸부림에서 도출된 실천, 평화는 신학적 실천에 따른 결과, 기쁨은 정의와 평화를 통한 생명의 연속(순환)이다. 

 

신학은 죽음으로 달려가는 세상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고 피안적 세상만 갈구하는데 멈춰있거나 학문적 담론에만 머물러 있다. 전쟁과 기후위기 속에 세상에 생명을 주는 신학으로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창조세계의 회복을 기다린다.

 

이원영 목사 (예장통합총회농촌선교센터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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