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틴 루터 대교리문답
(<마르틴루터 대교리문답>, 마르틴 루터, 최주훈 옮김, 복있는사람, 2017)
옮긴이 최주훈 목사의 해설을 보면, 루터는 종교개혁의 사상과 잘못된 오해와 오용이 부패한 성직자들에게 날개를 달아 준 꼴이 된 것을 보고 교육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특별히 고대 교회에서 교리문답을 할 때에는 신조와 주기도만 다루었지만, 13세기에 십계명이 추가되었음을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교리서들의 배열 순서는 신조, 주기도, 십계명이 뒤를 따랐다고도 언급한다.
그런데 루터는 이 순서를 의도적으로 바꿔 놓았다. 십계명 다음에 신조를 배열한 이유를 ‘율법과 복음’의 변증적 관계로 설명한다. “계명은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것을 가르친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신앙의 선조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받았는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신조다.” 그런 다음 주기도는 주님이 우리를 도우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세례와 성만찬은 그 도움을 실제로 수납하는 행위다(19-20).
저자에 따르면 <소교리문답>은 부모가 아이에게 암송을 하도록 하여 위급 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그 가르침을 따르도록 훈련을 했고, <대교리문답>의 경우 내용을 분량에 맞게 구분하여 함께 큰소리로 읽고, 그 후 개념과 역사적 정황을 설명하고 토론하는 식으로 정기교육을 했다.
루터는 “당신의 마음이 매달려 있고 당신의 모든 것을 지탱하는 대상, 그것이 바로 당신의 신입니다”라고 가르친다(52-53). 루터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서 일하실 예배”를 설명하는데, 역자의 주석이 돋보인다(89).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부단히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태아를 몸 안에 품듯 끊임없이 말씀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안식일 계명의 바른 준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92)
루터의 말씀 중심의 삶에 대한 강조를 볼 수 있다. “성직자든 세상 권세자든 간에 모든 사람은 결혼 앞에 겸손히 고개 숙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들 모두 결혼이라는 자리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143) 인류의 생존에 결혼과 출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정결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이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185) “죄 용서가 없는 곳이라면 어디나 ‘교회 밖’입니다... 죄용서가 없는 곳은 교회가 아닙니다.”(223) “말씀이 물질과 결함하여 성례전이 된다.”(328)
1529년에 나온 루터의 <대교리문답>이 어떤 책인지 이해하려면 <훈민정음>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한글이지만 한글로 보이지 않는 옛말이 무성한 책! 그런 책을 새롭게 번역하고 풍성한 해설을 담은 역자의 수고에 정말 감탄한다. 번역이 쉽지 않다는 것은 다 알고 있지만, 독일어는 특히 더욱 그렇다. 역자의 능력에 다시 한 번 놀라울 뿐이다. 약 500년 전의 책이지만 지금 한국교회의 상황이 그때에 비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성경도 많고 책도 많지만 진정으로 공부하는 목회자가 적다. 목회자의 수준이 점점 더 떨어진다고 사회에서는 평가한다. 이러한 때에 루터의 <대교리문답>을 통하여 우리의 지적, 영적 수준을 새롭게 하고 보다 발전한 형태의 교회교육을 해야 함을 도전받았다.
이신성 목사(광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