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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70]
 
 
 
     
 
 
 
작성일 : 23-12-30 04:46
   
누가 사람이냐
 글쓴이 : dangdang
조회 : 1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628 [72]


 

누가 사람이냐

 

(<누가 사람이냐>,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이현주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08)

 

   어느날 의성 청년이 교회를 찾아왔다. 첫 만남이었다. 그 청년은 지역사회의 현실에 대한 불만과 안타까움을 말했고, 종교적 물음도 종종 물어왔는데, 이런 말을 누구에게도 할 수가 없어 답답했다고 한다. 그가 던진 질문 가운데 하나는 인간됨에 관한 묵직한 질문이었다.

 

 ‘목사님, 참사람의 길이 무엇입니까?’

 

  나도 참사람의 길과 욕망의 길 사이에서 허둥대며 갈피를 못 잡고 살아가는 속인(俗人)인지라 누군가에게 참사람의 길을 가르쳐줄 위인은 못 되어 당혹스럽다. 내가 어찌 그 심오한 길을 알겠는가마는 스승 예수에게서 배운 바는 사실 단순하다. ‘낮은 곳으로 흘러 내려가 싸매고 보듬고 이름을 불러주고 필요를 채워주고...’예수의 삶의 고갱이인 이 근본적인 실천은 왜 ‘교회에 나오는 것’으로 치환되었을까? 확실히 지금 많은 교회들은 예수의 정신은 다 잃어버리고 콧대 높은 우월감과 고집스러운 자존심만 남아 있다. 사람들의 눈에 비친 교회의 모습은 참사람의 길과 거리가 멀다. 전혀 상식적이지도 않다.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에게 ‘참사람의 길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지 않는다. 대신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할 뿐이다.

 

  교회를 찾은 한 청년이 남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전에 읽었던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의 책 <누가 사람인가?>를 다시 꺼내 읽어본다. 유대인의 존경받는 랍비이며 온 인류를 사랑한 사상가요 기독교와 유대교의 대화를 촉구한 에큐메니스트였던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의 존재는 인류에게 크나큰 선물이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신과 인간의 상황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았고, 그 집요한 고민과 실천들이 참사람의 길에 이르는 이정표가 되었다. 그의 책 <누가 사람이냐>는 참사람의 길에 이르는 안내서라 할 수 있다. 그의 관심사는 언제나 ‘인간의 정황’이었고, 철저히 이 정황 속에서 신의 의미, 사람됨의 의미를 탐구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신학은 인간학이기도 했다. 

 

  그에게 참사람은 나와 남, 그리고 나와 하느님을 끊임없이 연결 짓는 존재였다. 이 연결지음은 의미를 만들어내고, 그런 의미를 추구하고 찾아낼 때 비로소 그를 사람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됨의 의미도, 행복도 다 이 관계 속에서만 그 의미를 캐낼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인간에게 쏟는 하느님의 관심을 깨닫는 것, 즉 그분의 관심사를 함께 관심하는 것이요, 우리의 사명에 대한 그분의 비전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며 ‘종교란 이 목적들을 위해 살아가는 길’(97)이라 말한다. 종교란 말을 교회로 바꾸어도 좋을 듯하다.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이 하느님의 사람들, 아니 참사람의 특징이라 한다면 지금 교회가 갖고있는 세상에 대한 혐오와 부정적 인식을 교정해야만 한다. 세상은 등져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예수께서 그리하셨던 것처럼 끝까지 보듬어야 할 대상이다. 교회와 세상을 명확히 구분 짓기보다는 세상 속의 교회로서 세상의 부조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좋은 세상을 위한 실천들에 앞장서야 한다. 교회의 본질이 낮은 곳으로 향하는 예수의 지향과 맞닿아있다면, 교회는 세상의 더러움을 씻는 걸레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저 옛날 유대인들이 부정한 것을 손에 닿기조차 극도로 경계했던 것처럼 스스로 걸레가 되는 길을 스스로 부정하게 되는 길이라 여겨 꺼린다. 예수의 길은 결코 고상하지 않다. 부정과 더러움의 늪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그 안에서 연꽃을 피워낸 분이 예수시다. 권력에 짓눌려 숨 막혀 하는 이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숨통이 트이도록 싸웠던 예수의 모습은 교회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미 권력의 단맛을 보았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권력의 언저리에 머물며 권력의 부스러기라도 받아먹으려 기존 체제에 순응하는 법을 터득하여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참사람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와 상관없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은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것은 교회를 잘 운영하는 방법, 교회로 사람들을 모으는 방법이 아닌 사람됨의 길이다. 

 

  교회 밖에서 살아가는 낯선 한 청년이 기대했던 교회의 모습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라도 교회를 넘나들며 교회 안 사람들이나 교회 밖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며 좋은 세상을 위해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 너무나도 상식적인 일들이 교회 밖 청년이 교회를 바라보며 품은 마음이라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앞선다. 사람답다는 것이 별거인가? 헤셸은 말한다. “무엇이 사람됨의 참, 모습인가? 허세 부리지 않음, 자신의 불투명함, 단견(短見), 무력함을 깨달아 아는 것이다. ... 사람됨의 참모습은 감사요. 그 비결은 찬양이다.”(146)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참사람의 길을 걷는 사람’의미로 쓰여야 한다. 길 잃은 교회가 다시 되찾아야 할 길은 참사람의 길이다. 우린 매일 물어야 한다. 

 

 “누가 사람인가?”

 

  헤셸이 전한 ‘사람’의 정의를 마음에 새겨본다.

  “누가 사람이냐? 하느님의 꿈과 계획을 함께 품고 해산의 고통을 겪는 존재, 세계를 구원하고 땅과 하늘을 화해시키는 하느님의 꿈, 그분의 참된 형상이며 그분의 지혜, 정의 그리고 사랑을 반영하는 인류에 대한 그분의 꿈을 함께 꾸는 존재다. 하느님의 꿈은 그분만의 꿈일 수 없다. 그 꿈은 계속되는 창조의 드라마에서 한 배역을 담당한 인간과 함께 꾸어야 하는 꿈이다.” (151)

 

이혁 목사 (의성 서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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