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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69]
 
 
 
     
 
 
 
작성일 : 23-12-27 22:21
   
크리스마스를 위한 책
 글쓴이 : dangdang
조회 : 2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620 [69]


 

크리스마스를 위한 책

 

(<톨스토이 단편선> 中 두 노인)

 

크리스마스를 위한 책. 여기에는 두 가지 기준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이라는 주제에 적합할 것, 어린이와 온 가족이 함께 읽기에 적합할 것. 이 기준에 <톨스토이 단편선>보다 적합한 책은 없습니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니나>, <부활>과 같은 대작과 함께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대해 고민한 수많은 단편을 남겼습니다. 그의 단편들은 하나 같이 사랑이라는 주제를 향합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거룩함의 외양을 입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실천적인 사랑에 있다는 것이 톨스토이가 깨달은 믿음이었습니다. 율법주의가 판을 치던 시대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이 그랬던 것 처럼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두 노인>이라는 단편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장 고결한 신앙 활동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이 소설은 예핌과 옐리세이라는 두 노인이 성지순례를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예핌은 술담배도 하지 않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욕을 해본적 없는 부유한 노인입니다. 그의 절친 옐리세이는 보드카와 담배를 좋아하고 노래하며 노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노인입니다.

 

두 노인은 더 늙기 전에 성지순례를 떠나기로 합니다. 성지순례는 상당히 많은 돈이 들었습니다. 부유한 예핌은 쉽게 비용을 마련했지만, 옐리세이는 재산의 상당부분을 처분해야 했습니다.

 

성지를 향해 수백 키로를 걷던 중 옐리세이에게 심한 갈증이 찾아옵니다. 옐리세이는 예핌에게 농가에 들러 목을 좀 축이고 얼른 따라갈테니 먼저 가라고 합니다. 길에서 좀 떨어진 농가에 들어갔더니 온 가족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옐리세이는 갈 길이 멀었지만 이 가족을 살리는 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다섯 가족을 먹이고 살리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어찌하다보니 성지순례비용 대부분이 가족을 살리는데 들어갔습니다. 시간도 오래 걸렸습니다. 결국 옐리세이는 그 가족을 도운 뒤에 성지순례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는 사이 예핌 노인은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예핌 노인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성지를 방문해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그렇기 기다려도 오지 않던 옐리세이가 맨 앞에서 하늘에서 내리는 광채를 받으며 예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고 기다려도 친구를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예핌 노인은 돌아가는 길에 순례자를 환대하는 어떤 가족을 만납니다. 그 가족은 성자같은 노인을 만나서 목숨을 건진 이야기, 그 노인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예수를 믿게 된 이야기, 도움만 주고 홀연히 떠난 노인을 기억하며 순례자들을 돕게 된 사연을 들려줍니다. 그제서야 예핌은 옐리세이가 성지에 있었던 이유와 없었던 이유를 깨닫습니다. 옐리세이의 몸은 성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성지로 부르셨던 것입니다. 이 소설은 이런 문장으로 끝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죽는 날까지 사랑과 선행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길임을 예핌은 그제야 깨달았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많은 교회가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들을 합니다. 헌금도 하고, 쌀도 모으고, 김치도 담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교회의 사랑 없음을 비판을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적선하듯이 작은 사랑은 하면서 국가가 가난한 이웃과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복지 확대에는 앞장서서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가난은 개인의 무능보다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합니다. 가난할수록 어렵고 힘든 일을 하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진정으로 돕고자 한다면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합니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반대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자는 것은 위선에 불과합니다. 

 

두터운 선별 복지는 복지를 축소하자는 이들의 오랜 구호입니다. 두터운 선별 복지이라는 구호에 뒤에는 가난한 이에게 스스로 가난함을 증명하라 요구하는 잔인함, 복지를 빙자한 멸시가 깔려 있습니다. 

 

오늘도 작은 교회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가난함을 증명하고 호소하고 줄을 서야 하는 동료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일련의 일들 속에 내재된 잔인함과 폭력성을 이해하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몸된 교회들 안에서도 서로를 온전히 사랑하고 존중하는 일은 요원합니다.

 

몇 만원 몇십 만원 기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약자들을 보살피는 보편 복지야말로 상처주지 않고 온전히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교회 안에는 진보도 있고 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약자를 적극적으로 돕고 보살피는 일에는 진보도 보수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사랑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만 있을 뿐입니다. 만인을 위한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이 절기에, 더욱더 사랑하고 제대로 사랑하는 고민이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동혁 목사 (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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