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는 기도다
(<시는 기도다>, 임동확 푸른사상, 2023)
이 산문집은 시성(詩性)과 영성(靈性)의 두 줄기로 엮어진 동아줄일 거라 예감했다. 나는 ‘기도는 시다’, 시여야 한다, 라고 말해 왔다. 한 편의 시가 나오기 위한 오랜 느낌과 체험, 언어의 선택을 위한 고민과 숙고, 행을 이어 연과 연으로 완성되는 한 편의 시는 신의 창작이랄 수밖에 없는 경이로움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간원, 탄식, 외침, 절망과 희망, 기쁨과 슬픔, 증오와 사랑, 저주, 감사와 찬양, 이런 감정들이 정제되어 신에게 봉헌되는 것이 기도다. 그래서 기도는 시처럼 말해져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를 짓는 시인에게 ‘시는 기도다’. 내가 생각한 기도와 시인이 생각한 시가 만나는 그 사이의 공간이 어떻게 빛날까, 궁금했다.
임동확 시인에게 시는 “어떤 ‘겉사실’의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속사실’의 대상이다.”(5) “더 현실적인 ‘속사실’” 이란 뜻은 생생하게 살아 있는, 평생 사라지지 않는, 잊을 수 없는 real reality, 때로는 분출된 싯벌건 용암으로 사방팔방을 순식간 덮어버리는 분화구요, 때로는 파도 일렁이는 바다요, 때로는 푸르디 푸른 하늘이란 말일 것이다. 시인에게 그 속사실은 대학 2학년 전남대학교 문학부 학생시절 맞은 1980년 5.18이다. 시인은 이 참극(慘劇)의 덫에 걸려있고, 그 그물 안에 갇혀있다. 그는 이 경험을 “거의 회복 불가능한 개인적 상처와 아픔”(264)이라고 술회한다. 하지만 그 덫과 그물은 단지 가위눌림과 악몽이 아니라 시의 “외침이 터져 나오는 자리”(7)이며 “깨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악몽”(62)이다.
내려치는 계엄군의 곤봉에 무방비로 맞는 젊은이들, 무참히 구타당하는 장면, 짐짝처럼 질질 끌려가는 모습, 최루탄 속의 죽기 저항, 무엇보다 아들의 영정과 혹은 시신을 안고 오열하는 어머니들..... 이 장면을 보고 함께 오열하지 않을 자 있으랴! 시인은 이 참상을 한복판에서 체험했으리라.
왜 한국 근대사는 이런 비참한 비극이 연속되는 역사인가? 갑오동학혁명운동,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해방이후 곧 분단과 6.25 전쟁, 4.19 전후,... 그리고 70년대 유신체제.... 아! 광주... 그러고도 이 징글맞은 역사는 끝나지 않는다. 신성만이 끝이 없는 법인데, 우리 역사의 안에는 비극이 똬리 틀고 있는가 보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 속에서 경험하는 신성은 아픔이고 설움이며 비극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꾸만 역사적으로 위험했던 순간들이 끊임없이 소환되고 영혼의 삶은 늘 비상사태이다.
시인이 악몽에서 깨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은 우리 민중의 몸부림이기도 하다. “아니, 내가 1980년 5월을 내 삶과 문학의 화두로 삼은 것은 필사적으로 그런 역사의 대극에서 생의 신비 또는 황홀함을 찾고자 함이었다.”(63) 시인은 비극적 생의 신비 혹은 황홀함(탈자태)을 첫 시집인 <매장시편>(1987)에 슬어냈다. 시인은 1980년 5월 강제로 잉태된 시의 씨앗을 7년 몸맘(뫔)알이 하면서 때가 왔을 즈음 출산하기 위해 마침내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난 지금의 아내 권유로 구례 화엄사 지장암에 칩거하여”(74) 아프게 낳는다. 매장, 5.18을 매장으로 표현해야 했다.
<매장시편> 이후 김광규 시인으로부터 “이젠 부활시편을 써야지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난 성 금요일과 부활절의 3일이 너무 짧을 뿐 아니라 그것도 모자라 이제 교회 안에서 기계적으로 도식화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자가의 죽음과 매장 후에는 곧 부활이 올 것이니 희망을 갖으라, 라는 식이고 입에 발린 공허한 소리다. 십자가에서 곧장 부활로 직선적으로 이어지는 “허울 좋은 구원”은 트라우마 생존자들에게 “가장 큰 적”이다. 그들에게 “삶은 죽음을 이긴 승리가 아니다. 그들에게 삶은 죽음 한가운데서 끈질기게 버티는 것이며, 그들의 삶 중심에는 죽음이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만약 구원의 생명이 죽음을 이기거나 어떻게든 죽음이 종결되는 행복한 승리의 끝맺음으로 그려진다면, 삶과 죽음이 뒤섞여 있는 경험은 이야기되지 않은 채 묻혀 버릴지도 모른다” 임동확은 이런 염려를 말끔히 씻어준다. “내가 ‘부활의 노래’를 부르기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아직도 너무 많은 어둠과 죽음을 품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75)
그렇지만 시인은 “비극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67), 다시 말해 우리는 슬픔 속에서도 어떻게 웃을 수 있는가? 묻는 존재다. 아니 묻기 이전에 씨알 민중은 이미 그렇게 일상을 살아왔다. 우리의 아리랑이 그 예다. 진도 아리랑, 밀양 아리랑, 특히 정선 아리랑, 시인은 “참담한 비극의 삶 속에서도 충만한 기운에 전율할 줄 아는 예술이 가져다주는 참된 미적 혁명의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지 않겠는가.”(70) 하여 시인은 자신의 시학을 생성의 사유, ‘생성의 감응학’, ‘생성론’, ‘생성의 미학’이라 칭한다.
“얘들아, 시는 기도란다. 모든 예술은 기도야. 하늘에 닿기 위한 기도. ... 그래야 붕붕 날아올라 하늘에 닿지. 시는 그렇게 모든 것 버리고 가벼워지는 거란다.”(19) 무겁고 절망적이며 우울하기만 한 현실 속에서 가벼워지기, 명랑해지기, 기쁨과 즐거움 맞이하기.... 그래서 이제 그의 광주 기행은 “즐겨라, 오 찬란한 슬픔의 봄을”(195-197)이 되는 것일까. “무등의 아침 햇살을 보며” 함께 아파하거나 기뻐할 수 있는 마음, 역사적 참혹극 속에서 상실했던 “천진(天眞)의 마음”(241)을 회복해야 한다는 시인의 염원은 공감을 탄다.
해방신학에서 말하는 불의한 가난, 강제된 가난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자발적 가난’의 길을 시인도 “예술가의 길”(244)이라고 말한다. 무상(無償)한 가치와 무애(無碍)한 자유에 대한 꿈, 인간 생성의 에너지이다. 그래서 시인에게 이제 80년 5월의 비극은 “온갖 개념을 뛰어넘어 의미를 생성하는 그 무엇이다”(268) “사물들이 춤추게 하려면 그들에게 그들 자신의 멜로디를 연주해 주어야 한다.” 5월이 재생과 부활의 축제가 되기를 희망하는 시인의 마음, 특히 축제는 “인간의 한계 또는 고통의 극단 속에서 언어를 상실하거나 세계가 차단되는 경험 속에서 타자와의 소통 내지 공감을 얻을 때 더욱 의미가 있기”(271) 때문이다. 출애굽의 해방과 십자가의 정의(正義)를 거쳐 부활의 축제에 이르는, 절망의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는 신학자 몰트만과 많은 점에서 시인의 산문집은 통하고 공명된다. 시인의 산문집은 몰트만의 <살아계신 하나님과 풍성한 생명>과 이중주, 듀엣으로 노래한다.
심광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