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꿈이 뭐냐?” 귀에 선연한 그 목소리
<이상한 나라 하나님 나라>, 박성훈 지음, 신앙과 지성사, 2022.
이천에서 목회할 때 아주 가깝게 지내던 같은 지방의 한 선배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농촌목회자들과 함께 미연합감리교회(UMC) 위스콘신 연회의 초청을 받아 미국 방문을 했습니다. 공식 일정을 마치고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방문하게 되었답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에 여러 날 머물면서 공동체를 경험하였습니다. 공동체 식구들과 일과를 같이 하면서 그들 안에 충만한 하나님의 은혜와 형제애를 생생하게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에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길지 않았던 공동체 생활이었지만, 깊은 영감과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일상을 마주했습니다. 그런데 브루더호프에서 붙은 불이 이 목사님의 마음속에서 계속 타올랐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열망과 고민의 불이었습니다. 그 고민이 얼마나 깊었는지, 지켜보고 있던 우리는 영적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고 말했지요. 얼마 후, 몸살을 다 치르고 난 목사님은 선언했지요. ‘제대로 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야겠다.’ 그리고는 이천을 떠나 거제도로 내려갔습니다. 동방정교회 영성과 접목된 영성 공동체를 꿈꾸면서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일구려고 살아온 지가 벌써 20여 년을 넘어섰습니다. 몇 년에 한 번, 어쩌다 그분을 만나면 먼지 쌓여 있던 내 안의 하나님 나라의 꿈이 다시 한번 꿈틀대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생각하면 하나님 나라는 언제나 내면에서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그리움입니다. 목회 초년병 시절, 지금은 돌아가신 박흥규목사님이 저에게 던지셨던 질문이 생각납니다. “너는 꿈이 뭐냐, 겉모습은 번지르르한데 어떤 목사가 되려고 하느냐?” 퉁명스럽게 직격하는 박목사님의 말씀에 그때는 선뜻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 안에서 분명해진 ‘하나님 나라를 일구는 사람’이라는 말이 입에서 맴돕니다. 물론 이 말이 내 안에서 얼마나 많은 허구로 치장되어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조직된 제도교회 목사에게 하나님 나라의 꿈은 그때그때 주어진 현실 교회의 높은 장벽을 돌파할 때 주어지는 선물과도 같은 단어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나라 하나님 나라>는 참 따뜻한 책입니다. 이 책의 처음 부분은 저자 박성훈의 영적 순례기와도 같습니다. 그가 처음 예수님을 만나 교회의 일원이 되어가는 과정은 매우 짧게 언급되었지만 매우 강렬하고 인상적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예수님에게서 ‘너는 나의 종이다’하는 말씀을 받습니다. 그는 불화하던 어머니에게 사과하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놀라운 기쁨과 평화를 맛봅니다. 성경의 내용들이 사실로 믿어지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눈에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가 은혜로 경험한 하나님 나라와 현실 교회 사이에는 깊은 강이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괴리감은 그를 깊이 고민하게 했고, 그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섭니다. 독일에서 공부를 계획해 보기도 하고, 수도원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소득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것이 브루더호프 공동체였습니다. 박성훈은 이미 브루더호프의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유토피아적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진정한 교회에 대하여 끊임없이 탐색해왔지만, 공동체와 교회를 연결시키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브루더호프를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모두가 사랑하려고 살아간다는데, 정말 그렇게 살아가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미국 뉴욕에 있는 우드크레스트 공동체를 방문하였을 때 박성훈은 마치 본향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와 똑같은 영이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표류하던 영혼의 닻을 깊이 내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었습니다. 박성훈은 자신의 책을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파운데이션(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삶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풀어낸 글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하여 공동체 전체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특히 2부는 생생한 이야기 모음입니다. 이 책의 1부는 브루더호프의 창립자인 에버하르트와 에미 아놀드 부부가 공동체를 처음 시작한 독일의 자네츠를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에버하르트의 신앙과 그 운동의 전개,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에 이 운동이 영국으로, 파라과이로, 그리고 미국 우드크레스트 공동체로 이어지는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해줍니다.
특히 파라과이 공동체가 직면했던 위기는 브루더호프 공동체가 오늘까지 존재하게 하는 중요한 신앙의 관점이 되었습니다. 파라과이 공동체는 공동체를 위한 공동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더 효율적이고, 더 생산적인 방식을 채택하자 권력이 생겨나고, 약한 자에 대한 배려는 사라졌으며 형제애 또한 사라졌습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파라과이 공동체가 영적으로 어두운 길을 걸을 때 몇몇 사람들이 예수의 사랑을 다시 지피려고 일어났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미국 공동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 우드크레스트 공동체는 파라과의 공동체를 극복하며 일어선 공동체인 셈입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자신들이 공동체로 사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소리 없이 외칩니다. ‘공동체의 삶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삶이다’, ‘공동체의 삶은 믿음의 열매이다’, ‘공동체의 삶은 하나됨을 향한 부르심이다’. 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기쁜 소식이며, 이 소식을 실재로 이루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일에 여전히 게으르고 서툰 한국교회에서 목사라고 폼 잡고 있는 내게 <브루더호프 이야기>는 코앞에 물음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너는 꿈이 뭐냐?’
이광섭목사 / 전농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