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읽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이순신 저, 송찬섭 편역, 서해문집, 2004)
광화문 4거리에 검은빛을 띤 이순신 장군의 구리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잘 알다시피 그 뒤에는 금빛 찬란한 세종대왕이 앉아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손꼽히는 두 사람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 없을 듯하다. 두 사람은 가장 자주 등장하는 역사 소설과 드라마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오래 전 감리교 본부에서 일하는 동안 종종 홍보용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이순신 동상의 뒷모습과 함께 ‘감리교 본부’라는 이름이 선명한 20층 높이의 감리회관 측면이 찍힌 사진을 선호하였다. 미 대사관 정문에서 찍으면 제대로 된 그림이 나왔다. 감리교 홍보에 이순신 마케팅을 활용한 것이다. 광화문 한복판에 있는 감리교 본부의 위치도 덩달아 가늠할 수 있는 부수적 효과도 좋았다.
사실 이순신은 국격이 있는 대표적인 브랜드이다. 한때 군사정권은 자기의 정당성을 부각시키려고 청와대 길목인 광화문은 물론 초등학교마다 국기게양대 옆에 동상을 세웠다. ‘성웅’이란 이름을 붙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영웅사관을 만들어 부각시켰다. 그런 과도함 때문에 오히려 외면당하기도 하였다. 사실 임진왜란(1592-1598) 당시에도 믿을 것은 오직 수군뿐임에도 명나라의 힘을 과신하던 선조 임금에게 이순신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조선 수군은 임진왜란 동안 일본에 맞서 26전 25승 1패라는 전대미문의 승리를 거두었다. 유일한 패배는 이순신이 백의종군(白衣從軍)하던 시기에 통제사 원균이 지휘하던 칠천량 해전(1597.7.16.) 뿐이다. 이순신은 모두 승리한 해전의 주역이었다. 그런 탁월함 때문에 끝없는 모략에 시달렸다. ‘왜와 싸우려 하지 않는다’는 원균의 모함과 이순신을 제거하려는 왜의 음모로 결국 1597년 정초에 구속되고, 두 번째 백의종군하였다.
이순신의 면모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증인은 임진왜란 7년 동안 그가 기록한 ‘난중일기’(亂中日記)이다. 친필 초고는 현재 국보 78호로 지정되어 아산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다. 한국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영화 ‘명량’(17,613,682명)을 본 후 비로소 <난중일기>(서해문집)를 들추었다. 일기의 진면목은 임진왜란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료로서 가치와 이순신의 인간적인 모습을 세세하게 드러낸 미덕 덕분이다.
이순신은 인정도 많고, 눈물도 많은 장수였다. 끊일 새 없는 걱정거리와 커다란 분노를 품고 살았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지극한 아들의 성정과 막내아들 면의 죽음 앞에서 맘껏 울어보지 못함을 탄식하는 아버지의 심성을 지녔다. 그는 부하와 백성을 상대하면서 늘 자비를 베풀고, 인심을 나누었다. 또한 자기 안에 온갖 병을 끌어안고, 땀으로 온몸을 적시며 살았다.
그럼에도 끝없이 활쏘기를 독려하고, 자신도 연습한 성실한 군인이었다. 연전연승의 비결은 그가 항상 만반의 준비를 갖춘 장수였다는 점이다.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있나이다”(今臣戰船尙有十二)라는 이순신의 명문에서 보듯, 그가 마지막으로 마련한 것은 넉넉한 군함이 아닌 최후에 버릴 목숨이었다. 그는 칠천량 해전에서 완전히 상실한 조선 수군의 전투력에 낙심하지 않고 다시 희망을 준비하였다. 결국 명량 해전(1597.9.16.)을 승리로 이끌었다.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반가운 지명을 만났다. “나는 과천 땅 ‘인덕원’에서 말을 쉬게 하고 조용히 누워 쉬다가”(1597년 4월 초3일). 그가 풀려나 권율 장군 아래서 백의종군을 하기 위해 한양을 떠나 순천으로 내려오던 길이었다. 내가 늘 들락거리는 우리 동네 인덕원이라니, 이순신 장군에 대한 기억은 아산 현충사나 한산도 제승당 또는 통영 충렬사에만 있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지금도 광화문 두 위인의 동상 자리는 시대적 현안으로 가득한 뜨거운 현장이다. 사람들은 그 위대한 인물들을 그늘로 삼아 오늘의 신문고를 만들어 가고 있다. 얼마 전에 본 ‘서울의 봄’에서 이순신 장군 동상이 두 차례 비췄는데, 잇달아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아마 감독의 고발 의지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영화 ‘노량’임에랴. 요즘 극장가를 밝힌 ‘성웅’ 이순신은 어제의 인물이 아니라, 바로 오늘도 우리에게 생생한 의미를 준다고 각성시키려는 듯 하다.
송병구 목사 (색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