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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1-04 02:36
   
이기적 유전자
 글쓴이 : dangdang
조회 : 4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643 [85]



이기적 유전자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을유문화사)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이렇게 오래 있다면 스테디셀러라 불러야할지 베스트셀러라 불러야할지 고민이 될만큼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다보면, 생명의 신비함을 자극함과 동시에 신앙적인 고민이 동시에 깊어간다.

 

  종교와 과학은 꾸준히 대립되는 듯한 모양새로 서로 발전해왔다. 가끔 과학의 설명을 따르다 보면 종교적인 진리와 말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기 마련이라는 점을 완벽하게 부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며 꽤나 많은 생물학적인 경향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인간 개개인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나의 유전자가 후대에 전해지기를 바란다. 나라는 존재가 영원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카가 처음 태어난 날, 조카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 하지만 동시에 내 자녀가 생긴 순간 조카에 대한 애정이 자연스럽게 하향곡선을 그리며 줄어든 애정의 양 혹은 그 이상이 내 자녀에게 할애된다.

 

  이것을 우리는 부모의 사랑이자 동시에 ‘정’으로 이해하지만 <이기적 유전자>에서는 다르게 설명한다. 조카는 나의 형제자매로부터 태어난 나와 현재까지는 가장 유전적으로 유사한 후세이다. 반면 내가 자녀를 낳을 경우, 조카와의 유전적 동질성보다 내 자녀와 나 사이의 유전적 동질성이 커지기 때문에, 후대에 유전자를 전달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 상 나의 자녀를 더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유사한 소재로, 사랑은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하지만, <이기적 유전자>에 따르면 사랑은 우리의 번식욕에 의해 시작된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함으로써 우리는 후대에 나의 자녀를 낳을 가능성을 높인다. 제목 그대로 감성과 삶의 낭만을 잃은 채 이성에 100% 충성하는 ‘이기적’인 ‘유전자’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며, 오묘하게 반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만 모든 현상을 이렇게 해석하면 우리의 삶의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 결국 나의 모든 행동과 성장, 그리고 사랑이 나의 유전적 번식을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순간, 우리가 손가락 꼼지락거리게 설레였던 모든 순간들의 의미가 너무 퇴색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든 매커니즘에 대한 분석은 이 책의 주장이자 이론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사람은 과학의 원리에만 집중하지 않고 삶에 대하여 고민하고 의미를 찾아가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많이 하게 되었다.

 

  신앙은 끝을 알 수 없는 어떠한 진리에 대해 불안감을 이기고 가지는 믿음으로부터 생겨난다. 우리는 성경과 그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기독교인으로서 천국을 앙모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천국을 잠시 들렀다가 진리를 모두 보고 깨우쳐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은 없다.

 

  확신을 가지고 변수 없이 천국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신앙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부인하고 싶은 마음의 크기는 각기 다르지만, 우리의 판단과 믿음이 틀릴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이라고 가지고 믿음 생활을 하는 중일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의 믿음에는 의미가 생겨난다. 확실하지 않지만 일단 믿는, 하나님이기에 신뢰하는 그런 신앙의 의미. 모든 결말을 알고 나서 믿기 시작했을 때는 믿음이라는 말을 붙이기 어렵다. 그냥 그것은 사실에 대한 ‘앎’ 정도로 정의해야한다.

 

  과학만으로 우리의 삶을 살아가기에는 조금은 딱딱하고, 동시에 지적인 영양은 있을지언정 삶의 영양은 다소 모자라다는 생각이다. 2024년 새해가 밝고, 새로이 삶의 목표를 다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라. 사실 시간은 연속적으로 흐르기에 2023년이고, 2024년이고 단위로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다.

 

  2023년의 마지막 날에도 2024년의 첫날에도 모두 시간은 동일한 속도로 공평하게 흐르고 있다. 그저 우리가 한 해라는 단위를 설정하고 의미를 부여했기에,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하고, 새로이 목표를 다짐하기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겪어나가는 현상에 대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큰 가치가 있다. 그냥 여느 때처럼 새해 첫날이 지나가지 않고 우리의 마음에 올해에 대한 고민을 한 번이라도 더 하게 된다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삶, 어차피 흙으로 돌아갈 테니 생각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지 나에게 예비된 일은 무엇일지 기대하며 살아간다는 것.

 

  우리의 모든 고민과 행동이 혹여 누군가는 비과학적이라고 비관할지라도, 모두 괜찮다. 결국 그 의미 속에서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더욱 찬란해지는 것이니까.

 

김은기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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