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앨버트 O. 허시먼(이근영 역), 웅진지식하우스, 2010)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는 앨버트 O.허시먼이 분석한 보수의 수사학(원제 : The Rhetoric of Reaction)이다. 그는 좌우 모두가 인정하는 세계적 경제학자로 1915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소르본느대학과 런던 정치경제대학에서 공부했으며, 23세에 트리에스테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과정 중에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1941년 미국으로 건너가 1956년부터 예일대학, 컬럼비아대학,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2012년 97세로 타계했다. 미국 사회과학연구위원회에서는 그의 지적 전통을 잇기 위해 앨버트 O. 허시먼 상을 제정하여 매년 수여하고 있다.
허시먼은 1980년대 신보수주의의 득세를 지켜보며, 보수주의자들의 담론• 논리•수사법과 같은 언어적 현상이 발휘하는 힘에 주목했다. 조지 레이코프식으로 말하자면 보수의 ‘언어 프레임’을 규명하고자 나선 것이다. 본서의 집필 배경이다.
우선 그는 1949년 영국 사회학자 토마스 마셜의 유명한 강의, 서유럽의 ‘시민권 발전’을 상기시킨다. 마셜은 약 200년간의 시민권의 발전을, 18세기는 언론 • 사상 • 종교 • 개인적 자유 등 기본적 시민권의 정립, 19세기는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정치권의 정립, 20세기는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교육 • 건강 • 경제적 복지 • 사회보장 등을 확보한 복지권의 정립 시기로 설명하고 있다. 허스먼은 마셜의 연구에 힘입어 세 가지 연속되는 시민권의 ‘진보적 추진력’을 비판하고 공격하고 조롱하는 세 가지 반동적 명제(react rhetoric)를 발견한다. 역효과 명제(perversity thesis), 무용 명제(futility thesis), 위험 명제(jeopardy thesis)로 그들의 주장은 수백 년 동안 구조적 차원에서 때로는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반복해 나타나며,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 : 역효과 명제
역효과 명제는 단순히 어떤 정책이나 운동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거나 혹은 예상하지 못한 비용이나 좋지 않은 부작용을 수반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사회를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시도는 당연히 사회를 움직이기는 하지만 의도된 것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고 주장하는 대담한 지적 책략이다.
□ 그래 봐야 기존의 체제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 : 무용 명제
무용 명제는 변화에 대한 시도가 허사라고 말한다. 즉, 과거나 현재나 미래의 어떤 변화도 이런저런 이유로 대부분 표피적이고 외형적이고 표면적인 환상에 불과하며, ‘깊숙한’ 사회 구조에는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 그렇게 하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 위험 명제
위험 명제는 변화나 개혁에 드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 변화나 개혁은 이전의 소중한 성취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의 미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허시먼의 대가다운 박식함이다. 그는 서구의 정치경제 사상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솜씨 있게 자신의 명제를 증명한다. 오랜만에 지식의 풍성한 밥상을 마주한 느낌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론의 화려함으로 끝나지 않는다. 현실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사실 세 가지 반동적 명제는 우리로 하여금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부추김에 다름 아니다. 오늘날에도 보수주의자들은 결코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지금 세상이야말로 자신들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시로 우리를 향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해봐야 소용없다고 무기력을 학습시키는 것이다. 우석훈이 추천사에서 ‘허무주의는 우리의 적이다’라고 소리친 까닭이요, 허시먼이 서문 제목을 ‘그들에게 매혹당하지 않기 위하여’라고 적은 까닭일 게다.
진광수 목사 (바나바평화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