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공동체가 지속되는 이유
(<공동체와 성장>, 장 바니에, 성찬성 역, 성바오로, 1985)
사람은 누구나 공동체에 속하여 살아간다. 작게는 개인과 가족 간의 관계로부터 시작하여 모임, 학교, 단체, 회사, 교회, 지역, 도시, 국가 나아가 지구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동체에 속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필자가 라오스라는 낯선 땅에서 지난 일 년 동안 머물며 체감했던 시간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이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살아간다는 교과서의 문장들을 절실하게 몸소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일면식도 없던 다양한 나라 출신의 학생들이 라오스어를 배우기 위해 한 교실에 모여 있는 공간을 상상해 보라. 국적은 물론이고, 나이, 성별, 라오스에 온 목적까지 각기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데는 보름이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모든 것이 낯선 타국의 땅에 발을 딛으면서, 그것도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후텁지근한 교실에서 하루 8시간씩 같은 내용을 학습하고, 발표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동안에 우린 서로 애틋해졌고, 그야말로 운명의 공동체가 되었음을 경험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도, 서로의 문화가 다른 것도 장애가 되지 않았다. 아마도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형성되어진 공동체의 분위기 속에 융합하는 존재여서일 것이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형성된 이 교실 공동체 속에서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과연 자연스럽게 주어진 이 교실(환경)을 아름다운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생존과 적응을 위해 이 공동체 안에서 가냘픈 숨을 내쉬며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이 발 딛고 있는 모든 공간에는 공동체가 형성되지만 그렇게 이루어진 모든 곳이 완벽하거나, 아름다운 공동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가해진 수많은 폭력과 착취의 역사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존의 공동체에 융합하며 살아가는 동시에, 또한 새롭고 올바르며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라르슈>라는 장애인 공동체를 설립한 저자(장 바니에)의 시도는 새로운 공동체를 열망해왔던 인류의 빛나는 업적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책은 <라르슈> 공동체의 활동에 대한 소개라기보다는 아름다운 공동체 내부에 스며있는 작동원리에 대한 것이다. 실상 ‘공동체’를 바라봄에 있어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성과와 업적보다는 공동체가 형성되고, 운영되어온 그 과정 가운데 흐르는 가치와 지향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공동체의 두 극점으로 ‘이유’와 ‘우정’을 꼽는다. 이는 함께 살아가는 목적과 그것을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 간의 정서적 연대감이 공동체를 지탱하고 이루어가는 주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즉, 개인 간의 관계와 소속감, 그리고 공동 목표와 공동 증거를 지향하는 삶의 방향이 공동체의 두 극점이 된다. 바니에는 책의 머리말에서 공동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공동체란 낱말로 표현하고 있는 집단은 본질적으로 본래의 생활환경을 떠나 다른 사람들과 한 지붕 밑에서 생활하면서 인간들 및 인간들의 상호 관계,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에 새로운 안목을 가지고 일해 나가는 사람들의 집단을 가리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안목’이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이 책에서 담고 있는 내용은 더욱 크고, 깊고, 높은 하나님의 가치들을 모두 포괄한다. 개인들의 능력과 인격, 삶의 이야기를 모두 포함하는 ‘하나님의 선물’은 모두에게 다양하게 주어지는데, 그 선물들을 함께 나누고, 서로를 위해 사용하는 것, 궁극적으로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된 자리에 있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적극적이면서도 유연하게 사용하는 공간이 바로 공동체인 것이다.
책에서는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움직여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에너지로 인해 어떤 가치와 실천을 멈추지 않고 꾸준하게 지속 할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 온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여기서 인간적인 환상과 생각들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위기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그 역동적인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것을 향한 소명의식을 깨닫지 못하며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히는 순간, 공동체의 가치는 공염불이 될 뿐 아니라, 공동체는 폭력적 체제로 변질된다.
또 하나, 책은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고 전한다. 공동체는 신비로운 환대와 나눔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사람들을 고통과 마주하게끔 하는데, 그것은 공동체가 인간의 한계와 이기심을 스스로 자각시키는 곳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욕망을 확인하며 우리는 고통에 직면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끝없이 이기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마주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공동체는 서로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이해를 뛰어넘는 신뢰를 통하여 우리 자신이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이라는 진실을 환기시킨다. 결국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결국 참된 공동체는 ‘해방시키는 공동체’라고 말한다. 서로를 해방시키고, 복잡다단한 세상의 풍파 뒤에 숨겨진 이들의 아픔을 해방시키고, 갇히고,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의 해방에 대한 관심이 바로 궁극적인 공동체의 소임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 과정에서 진정 너와 내가 해방되는 것이 공동체이다. 여기서 서로를 위안거리로 삼다가는 감정적인 노예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저자의 지적은 매우 직설적이다. 이미 삶의 모든 것을 나의 위안을 위해 도구화 시켜버리는 이기적인 삶의 법칙과 테두리 속에서 나 자신이 궁극의 관심이 아니라 타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차리려는 삶의 태도가 결국에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하는 우리의 숙제인 것이다. 진정한 해방을 원한다면 나 자신만의 고민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공동체에 흐르는 가치이며, 실제적으로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해방시키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저자인 장 바니에 신부는 <라르슈> 공동체를 설립하고 운영하며 많은 이들에게 추앙받아온 성직자였지만, 살아생전 6명의 여성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그의 사망(2019년) 이후 밝혀졌다. 자신이 설파한 공동체의 가치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그의 끔찍한 범죄를 바라보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것을 향한 소명의식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히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서글픈 마음을 가지고 그의 공염불이 되어버린 가치들을 돌아볼 수밖에. 하지만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라르슈> 공동체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여전히 아름다운 가치를 지닌 채 매 순간 새로운 안목을 가지고 공동체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관택 목사 (라오스평화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