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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80]
 
 
 
     
 
 
 
작성일 : 23-08-06 01:23
   
프로스트와 베타
 글쓴이 : dangdang
조회 : 4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9905 [89]


 

육신에 깃들어, 두려움과 절망을 아는 자, 인간 <프로스트와 베타>

 

 <프로스트와 베타>, 로저 젤라즈니, 데이원 출판사, 16,800원 

 

 

마니에르 드 부아르Maniere de voir(프랑스 신문 Le Monde Diplomatique에서 발간하는 계간지)는 <SF, 내일의 메시아>라는 제목으로 최근 12호를 발행했다. 나날이 발전하는 인공지능과 미래에 도래할 4차 산업 시대에 대한 소개성 저술에서 벗어나 나름대로의 시대적 이해의 축을 제시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들이 제시하고 있는 SF라는 키워드는 AI, 메타버스, 스페이스 X 등 최근 쏟아져 나오는 기술 용어에 비해 낡은 어감을 가진다. 스타워즈나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의 영화, 마블 코믹스를 비롯해 한 때 소년 만화의 인기를 구가했던 장르를 칭하는 게 맞다. 마니에르 드 부아르지는 6-7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SF 작품과 상상력들을 통해서 조속한 시일내에 현실화될 신기술 사회를 조망해보려 하는 듯하다. 지금 실제화된 기술들의 씨앗이 결국 청소년들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여겨졌던 SF장르적 상상력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재조명된 문학 작품들 속에서 발견한 책 <프로스트와 베타>는 SF의 대가, 필립 K, 딕(<마이너리티 리포트>. <페이첵>의 원작 소설 작가)의 소설들과 다른 오묘한 매력을 가졌다. 짧은길이의 소설은 이미 인류가 모두 다 멸종된 몇 세기 후, 마지막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들만이 남은 페허의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고대 그리스 희곡의 서술체를 사용했다. 창세기와 욥기 등의 구약성서, <파우스트>를 참고한 만큼 고대 영웅 설화적 문체를 통해 SF 장르의 무게감을 심어줘 가벼운 책에 가볍지 않은 근엄성을 부여하고 있다. 

 

“인간이란.” 모르델은 운을 띄웠다.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본성을 지녔소.” 

 

 인간이 사라진 지구에 남아 북반구를 관리하는 프로스트는 오직 자신을 만든 솔컴(인간이 만들어 하늘에 쏘아 올린 지구통제체. 아마도 위성 인공지능체)의 명령만을 받는다. 프로스트는 취미생활을 하는 기계였다. 그의 취미는 인간을 탐구하는 것이다. 솔컴의 대체자(정치적 이유로 인간이 솔컴이 기능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땅 속에 설치한 대체 지구통제체)디브컴이 다스리는 남반구 쪽에서 온 방랑자, 모르델과 ‘인간’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공유한 프로스트는 ‘인간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가지고 내기를 한다. 프로스트는 유물과 서책, 예술품들을 탐구하고 분석하며 인간성을 이해하고 획득하려 한다. 

 이 책은 70년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술력을 중점으로 두기보다 SF적 장치들을 통해 역으로 인간성을 반추하는 작품이다. 인공지능이 만든 지구상 최고의 계측기계인 프로스트가 인간에 대한 알 수 없는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고 인간성을 획득하기 위해 단계를 거쳐 탐구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은 기계와 인간의 대립이 극대화되고 있는 현대에 다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당신은 인간의 논리적 피조물이오, 예술은 비논리요.” “나는 비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존재라고 이미 말하지 않았소.” (중략) “인간은 논리를 창조했기에 논리보다 우월했습니다.” 

 

 프로스트의 탐구는 먼저 계측에서 시작한다. 방랑자 모르델은 인간이 계측이 아닌 감각으로 사물을 인지하는 점을 알려준다. 프로스트는 감각을 느끼기 위해 인체 해부 생리학 책에서 얻은 지식으로 눈과 코와 귀같은 인체와 유사한 감가기관을 만든다. 그리고 해변의 풍경과 노을이 지는 풍경, 시구절의 각운 등, 인간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들을 대면하지만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다. 데이터 처리 방식의 문제, 즉 감각기관의 인식처리 문제로 계산한 프로스트에게 모르델은 “감각으로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오. 인간과 동등한 수준의 감각기관을 가진 생물은 상당히 많았지만 그들은 인간일 수 없었소.” 라고 말한다. 프로스트틑 자연이 아닌 스스로 예술적 창작물을 통해 아름다움을 감각하고자 한다. 

 남반구의, 프로스트와 동등한 지위를 가진 베타가 관리하는 브라이트 디파일은 최후의 인류가 남긴 미술관이 있는 곳이다. 프로스트는 그곳에서 본 인간의 창작품을 모방해 보지만 그것이 예술이 아니라는 답을 얻는는다. 프로스트는 자신을 닮은 정방형의 조각을 만들지만 자기의 복제는 예술이 아니라는 답을 얻는다. 비정형적 무작위성을 가미한 유화도 예술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 논리구조로 만들어진 자신은 이해할 수 없는 비논리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당신이 내 질문에 답할 때마다 새 질문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싶은 이유를 물을 수도 있겠지만, 당신의 반응을 보니 무한에 이르는 질문의 연쇄를 불러올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침략 당했던 베타가 프로스트에게 묻는다. 왜 솔컴의 명령에 위반되는, 법칙과 규율에 어긋나는 무리한 행동을 해서 인간의 것들을 탐구하는 지에 대해서. 베타는 프로스트의 문답과정에서 인간에 관한 탐구의 성질을 깨닫는다. 계속 새 질문이 생겨나고 무한에 이르는 질문의 연쇄를 불러오는 것이다. 베타는 무한한 질문의 연속성을 가진 프로스트의 문제 때문에 논리적인 회로에 교란이 발생한다는 문제에 직면한다. 

 작중에서 이 장면은 프로스트의 인간성의 대한 탐구가 기계적인, 논리적인 방식으로는 한계에 직면한 것을 깨닫는 동시에 베타를 끌어들이는 장면으로 극적인 면모를 갖는다. 동시에 프로스트의 탐구 궤적을 통해 말해주는 ‘인간성’에 대한 차근 차근한 사고과정의 백미를 보여준다. 논리적인 기계로는 절대 습득할 수 없는 무한한 질문자체의 비논리성 인간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비논리는 ‘논리적이지 않다’라기 보다 논리의 불필요, ‘논할 수 없음’에 가까울 것이다. 시의 각운이 논리적인 이유없이 그저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소네트의 정형 법칙을 만든 것, 자연풍경이나 특정한 조각상이 그것이 ‘어떤 특질이나 효과가 포함될지 모른 채 작업’한 결과물로 비논리적인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것 말이다. 

 

 프로스트가 인간의 동사체에서 세포를 발견해 인간이 되는 극후반부는 기독교 윤리적으로는 동의하기 힘든 점이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이 근엄한 문체로 쓰여졌지만 결국 SF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징과 은유로 읽어볼 만하다. 기계의 사물체, 논리구조로 만들어진 창조물인 채로는 인간성을 획득할 수 없음을 깨달은 프로스트가 자신의 매트릭스를 인간의 신경계에 연결해 육화를 경험한 후 외친 비명과 같은 말은 “나는 두렵다!” 이다. 프로스트는 자신이 인간이 되는 것에 실패했다고 고백한다. 자기 자신을 향한 의심과 이게 무슨 소용이 있는지 의미를 찾기 시작하는 프로스트를 두고 솔컴과 디브컴, 모르델은 프로스트의 존재를 놓고 토론한다. 

 

 “두려움은 아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다.”인간 외에 절망을 아는 존재가 또 있겠습니까?“ 

 

 기계들은 두려움과 절망을 아는 프로스트를 인간으로 규정한다. “빛, 소음, 냄새, 모든 데이터가 뒤섞여서 아무것도 계측할 수가 없고 감각은 부정확하고.” 인간의 육신의 감각을 경험한 프로스트는 두려움에 떤다. 동정심을 모르느냐고 묻는다. 외로워한다. 그는 자신과 데이터를 공유한 베타를 부른다. 인간성에의 유혹이다. 인공지능이 인식하지 못할, 머리만으로는 존재하지 못할, 육신에 깃들어 절망과 두려움과 죽음을 아는 인간의 ‘명령’ 아닌 권유다. 

 

저 멀리, 저녁과 아침/그리고 열두 방향의 바람이 오가는 하늘로부터 생명의 가닥이 날려와 엮어/나를 이루었다네, 그리하여 나는 이곳에 있네.//지금 - 내 숨결 한 번을 미루어/아직 흩어지지 않으니-/서둘러 내 손을 붙들고 말해 주기를./그대 마음에 무엇을 품었는지//지금 말하면 내가 대답하리니/그대를 도울 방법을 일러 주기를./바람의 열두 방향으로/내 다시 끝없는 길을 떠나기 전에.(A.E. 하우스먼의 <슈룹셔의 젊은이> 32번째 시. 프로스트가 읽은, 베타에게 보낸 시) 

 

박창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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