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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18]
 
 
 
     
 
 
 
작성일 : 23-09-04 02:39
   
목회를 생각합니다
 글쓴이 : dangdang
조회 : 3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055 [75]


 

목회를 생각합니다

 

<목회자의 영성>, 유진 피터슨, 양혜원, 포이에마, 2013

 

  이 시대의 특징은 ‘분주함’과 ‘산만함’과 ‘피상성’이다.(김영봉) 목사도 예외가 아니다. 건강한 명사에는 형용사가 필요 없다. 형용사는 건강한 명사를 어수선하게 만들 뿐이다. 그러나 명사가 문화 때문에 손상되었거나 병에 걸렸다면, 형용사가 필요하다. ‘목사’도 그런 명사 중 하나였다. 힘이 넘치고 건강한 단어였다.(33)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 보면, 거대한 흰 고래 모비 딕을 쫓아 거품을 일으키며 바다를 질주한다. 선원들은 주의력과 에너지를 집중하여 정신없이 움직였다. 하지만 작살을 꽂는 사람만은 다르다. 그는 조용히 앉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작살을 가장 효율적으로 던지려면, 작살꾼들은 애쓰지 말고 나태하게 있다가 재빨리 일어서야 한다.”라고 쓴다.(45)

 

   예수님이 사역에서 사용하신 은유는 단일함, 작음, 조용함의 이미지들이다. 우리 문화는 그 반대를 강조하며 선전한다. 목사들은 정신없이 달려갈 것이 아니라, 침착하게 준비를 갖춘 작살꾼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 존 오먼은 사역의 두 가지 악은 ‘부산함과 걱정’이라고 한다. 부산함은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걱정은 에너지를 막기 때문이다.(46) 그래서 바쁘지 않으면서, 전복적이고 묵시적인 목사를 요청한다. 기도와 비유는 전복적 목사의 밑천이다. 비유는 거짓된 진부함을 넘어서 그리스도의 진리로 인간의 정신을 침범하고 의식을 바꾼다.(61) 묵시적 목사는 기도한다. 성 요한의 목회 소명은 그의 무릎에서 나왔다. 그는 기도 행위를 자기 일의 축으로 삼고, 모든 사람의 일에서도 축임을 보여준다. 목사는 성도와 다를 바 없지만, 더 집중적이고 가시적이다. 기도는 기독교 공동체의 축이 되는 행위임을 보여야 한다.(67)

 

  세 종류의 언어가 있다. 언어1은 관계언어다. 엄마와 아기가 주고받는 옹알이 같다. 언어2는 정보언어다. 자라면서 주변의 놀라운 세계를 본다. 날마다 그 수가 늘어난다. 언어3은 동기언어다. 우리는 언어가 어떤 일이 일어나게 만들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고, 무력하던 어떤 것을 의도 있게 움직이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안다. 아기가 울면 음식이 나오고 기저귀가 뽀송뽀송해진다. 부모의 명령이 떼를 쓰는 아이를 저지한다.(129) 언어와 기도 방식에서 능동태와 수동태를 지나 중간태를 이해해야 한다. 능동태는 내가 변화를 가져오는 행동의 주체다. 수동태는 다른 사람이 주도하는 행동을 내가 받아들인다. 중간태는 주체가 행위의 결과에 참여하는 것을 묘사한다. 성도의 기도는 주체가 행위의 결과에 참여는 방식이다. 기도는 창조와 구원의 주께서 시작하신 행위의 결과에 참여한다. 내가 의지적으로 동참한다.(146)

 

  “목사들은 사람들이 설교를 들으러 교회에 온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그들은 기도하러, 기도를 배우러 교회에 온다.”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에게 말하는 것에서 중요한 전환을 이룬 안셀무스가 생각난다. 하나님의 존재 증명을 위해 <모놀로기온>을 집필했다. 그 책은 서구신학의 큰 업적이지만, 전부 잘못된 언어로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프로슬로기온>에서 언어2를 언어1로 전환해서 전부 다시 쓴다. 이 <프로슬로기온>은 기도로 하는 신학이다.(132) 인간과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최고 모습은 하나님과 그분의 창조 세계에 명령을 내리는 파시스트가 아니다. 운명 앞에 말없이 굴복하는 정적주의자가 아니다. 우리의 최고 모습은 능동태와 수동태 사이에 서서 중간태로 기도한다. 필요에 따라 능동과 수동을 다 사용하지만, 하나님을 흠모하고 그분의 은혜를 받으며, 행위의 결과에 참여하는 피조물로서 독특하고 예술적인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148) 목회는 목사이다.                        

 

전승영 목사 (한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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