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이로움은 뒤뜰 정원에 있다.
(<이토록 굉장한 세계>, 에드 융, 양병찬, 어크로스, 2023)
“우리 주변의 공기는 우리가 탐지하지 못하는 신호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땅도 마찬가지다.”(286)
유아기의 아이를 키우다보니, 의인화된 동물이야기들을 접하는 일이 잦다. 동물을 등장시키면, 다양한 배경의 이야기를 창작해낼 수 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장점인지 알 수 없다. 동물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은 성인에게도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아이와 함께 넋을 놓고 이야기에 빠져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동물행동학자들은 의인화의 위험성을 논한다. 인간의 감정이나 정신적 능력을 동물들에게 부적절하게 귀속시킨다는 것이다.
에드 융의 <이토록 굉장한 세계>은 다양한 동물들의 감각세계를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한계가 있지만, 인간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흐릿하게나마 감각풍경들을 그려낸다. 동물들은 자신의 서식지에서 자기 몸에 맞는 감각들을 활용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시청각에만 의존하는 다수의 인간들에게는 낯설기 그지없을 터. 후각, 촉각, 미각에 그치지 않고, 전기장이나 후류, 진동 등을 미세하게 감지하고 감별해낸다는 이야기들이 신비롭게 다가왔다.
바다표범은 물의 움직임을 해석하여 물고기 몇 마리가 어디로 갔는지를 알 수 있는데, 장애물로 왜곡이 생길지라도 그 장애물이 무엇인지마저 파악할 수 있다. 개구리는 나뭇잎 위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그 진동으로 경쟁관계에 있는 수컷들과 기싸움을 한다. 청둥오리는 파라노마처럼 펼쳐진, 사각지대 없는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거미는 자기 거미줄에 걸린 게 나뭇잎인지 먹잇감인지 그 진동을 통해 바로 알아차린다. 고래들이 발화하는 초저주파는 물속에서 2만 킬로미터를 횡단할 수 있다.
<이토록 굉장한 세계>가 동물들의 경이로운 감각풍경들을 소개한 까닭에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동물들이 아주 풍요로운 감각들 속에서 살고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동물들의 감각들을 마비시키고 교란시키는 일을 멈추자고 제언하기 위함이다. 뭇생명들이 만끽해야 할 고요함을 인간들이 해치고 있다. 저자는 그러한 생태적 죄악을 고발하기를, ‘감각 오염’이라는 죄목을 붙인다.
수많은 인공불빛들, 귀를 찢을 듯한 소음/굉음들, 바다 위를 요란스럽게 횡단하는 거대한 함선들, 도로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이 만들어내는 진동들, 전자기계들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전자파들 등등. 우리에겐 별것 아닌 것이지만, 동물들에겐 보이지 않는 불도저들이다. 자기 감각을 손상당하고 왜곡당한다. 그런 혼돈은 치명적인 위해로 다가올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요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말장난이지만, 고요함은 곧 고유함으로 귀결되는 듯하다. 동물들의 감각을 이해하는데 그나마 근접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는 인간이다. 납작해진 감각풍경을 회생시키며, 그 감각들을 통해 생태계를 보존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책무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와, 구름 좀 봐봐” 며칠 전 4살 아이가 내게 한 말이다. 감탄하기, 참 사람의 길은 여기에 있다. 지구별 속의 신비들을 오랫동안 향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다른 감각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것은 ‘친숙함 속의 화려함’과 ‘평범함 속의 신성함’을 찾는 것이다. 경이로움은 뒤뜰 정원에 존재한다.”(530)
김민호 목사 (지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