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백범일지’를 읽다
<백범일지>, 김 구 저, 도진순 주해
<백범일지>, 김 구 저, 도진순 주해
고향 마을에는 작은 개울이 흘렀습니다. 동네 아이들에게는 피래미도 잡고 멱도 감는 최고의 놀이터였습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갈수기에는 채면치래 할만큼만 쫄쫄대다, 여름이 다가오면 당장 뛰어들고 싶을 만큼 수량이 풍부해졌습니다. 어린 아이의 눈에도 비가 내리는 만큼 물이 부는 게 표가 났습니다.
독서에 있어서 호기심은 하늘에서 내리는 단비와 같습니다. 나이와 호기심은 반비례한다는 통설도 있고, 유튜브 보면 다 나온다고는 하지만 호기심을 가질 이유와 독서가 주는 매력은 차고도 넘칩니다.
여행을 계획한다고 칩시다. 여행은 커다란 호기심 상자를 여는 일입니다. 먼저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코스와 맛집을 검색하겠죠. 몇 시간 하다보면 뻔한 코스와 맛집 리스트가 만들어집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는 거기서 거기라 금방 실증이 납니다. 여행은 준비할 때가 가장 설레는 법인데 그 좋은 재미가 몇 시간 만에 끝입니다. 그럼 여행 준비한답시고 뻔하게 인터넷 쇼핑몰이나 면세점 사이트를 들락거리게 됩니다. 호기심 상자를 뻔한 정보와 뻔한 쇼핑 리스트로 채웁니다.
누구나 여행을 준비할 때는 더 특별한 여행이기를 바랍니다. 그때 여행 준비를 특별하게 해 줄 가장 좋은 방법이 독서입니다. 가이드 책자를 꼼꼼히 읽자는 뜻이 아닙니다. 프라하 여행을 준비하며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터키 여행을 준비하며 오르한 파묵과 그의 문학적 스승이었던 아지즈 네신의 책을 읽는 식입니다. 그러다보면 여행 준비에서부터 여행지에서 만나는 광장과 골목, 스치는 사람들의 무심한 표정까지 특별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여러 사건과 기념일도 호기심의 이유입니다. 코로나 시대에는 카뮈의 <패스트>를 읽고, 교회와 신앙이 혼란스런 시절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모함과 여론몰이로 인격살인이 난무하는 시절에는 필립 로즈의 <휴먼 스테인>을 읽고, 3월에는 독립투사들의 평전을, 8월에는 <백범일지>를 읽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다보면 우리 내면에 흐르는 독서라는 개울이 호기심의 단비로 풍부해집니다.
간혹 유튜브에서 줄거리 몇 개 찾아보고 그 책을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다 왜곡된 지식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교에서 인용되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대심문관”에 대한 예화가 대표적입니다. 그 예화는 작품과 상관없는 또다른 창작물에 가깝습니다. 독서는 저자와의 호흡입니다. 읽어야만 얻을 수 있는 그 보화를 꼭 얻으시기 바랍니다.
2023년 8월은 해방이래 초유의 광복절이 되었습니다. 독립운동에서 시작된 민주화의 역사를 부정하고, 일본을 대한민국의 수호자로 선포하는 독립절기념사가 낭독되었습니다. 이 시절에 <백범일지>의 한 대목을 읽습니다.
“만고 천하에 흥해 보지 못한 나라가 없고 망해 보지 못한 나라가 없네. 종전에는 토지와 백성은 가만두고 군주 자리만 빼앗는 것으로 흥망을 논하였지. 그러나 지금의 망국이란 나라의 토지와 백성과 주권을 모두 강제로 집어삼키는 것이네. 우리나라도 필경은 왜놈에게 망하게 되었네. 소위 조정대관들은 전부 외세에 영합하려는 사상만 가지고, 러시아를 친하여 자기 지위를 보전할까, 혹은 영국이나 미국을 혹은 프랑스를, 혹은 일본을 친하여 자기 지위를 견고히 할까, 순전히 이런 생각들뿐이라네. 나라는 망하는데, 국내의 최고 학식을 가졌다는 산림학자들도 한탄하고 혀만 차고 있을 뿐 어떠한 구국의 경륜도 보이지 않으니 큰 유감일세. 나라가 망하는 데도 신성하게 망하는 것과 더럽게 망하는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더럽게 망하게 되겠네.”
내가 놀라서 질문하자, 선생은 대답하였다.
“일반 백성들이 의(義)를 붙잡고 끝까지 싸우다가 함께 죽는 것은 신성하게 망하는 것이요, 일반 백성과 신하가 적에게 아부하다 꾐에 빠져 항복하는 것은 더럽게 망하는 것일세. 지금 왜놈 세력은 온 나라에 차고 넘쳐 대궐 안까지 침입하여 대신들을 마음대로 내치니 우리나라를 제2의 왜국으로 만든 것 아니겠는가?”(“스승 고능선” 中)
우동혁 목사 (만남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