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 -세상을 읽는 데이터 지리학>, 제임스 체셔&올리버 우버티 지음, 송예슬 옮김, 윌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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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떠나 낯선 나라로 가야 한다고 했을 때 내가 처음 한 행동은 구글(Google) 지도 어플리케이션을 여는 것이었다. 그 나라(라오스)가 지도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 어떤 모양이고 어느 정도 크기의 면적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한국과는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알고 싶었다. 새로운 나라에 안정적으로 정착해야만 했던 나는 이곳에 관한 지도를 자주 펼쳐보게 되었다. 한 장 짜리 전도를 구해 벽 한쪽에 붙여 놓았을 뿐 아니라, 서점에 가서 지도책을 구해 틈날 때마다 들여다보았다. 지도책에는 라오스의 행정구역이 어떻게 나누어져 있는지, 산과 강은 어디에 있는지 등의 지리 정보 뿐 아니라, 소수민족이 어느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지,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인구는 어느 정도인지, 여성과 남성의 비율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각 지역별 경제 성장률과 빈곤률, 전기 보급률, 상급학교 진학률과 같은 정보도 들어있었다.
지도의 사전적 정의는 ‘지구 표면의 상태를 일정한 비율로 줄여, 이를 약속된 기호로 평면에 나타낸 그림.’(표준국어대사전) 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지도는 그 내용과 모양이 크게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오늘 소개할 책의 제목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들도 지도를 통해 나타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지역별 빈곤률, 전기 보급률, 상급학교 진학률 같은 것 말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만들어내는 수많은 정보(데이터)들은 그것이 나열되어 있을 때는 의미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지만, 그 정보들을 시각화하여 지도와 결합할 때 비로소 유의미한 의미를 가진 지리 정보가 된다. 이 과정의 중요성을 책의 저자는 이렇게 서술한다.
“단순히 작아서 무언가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놓치게 된다. 계속 자라나는 도시들, 머리 위에 떠다니는 오염 물질, 발아래서 데워지는 토양 같은 것들. 어떤 보이지 않는 것들은 긴 세월에 걸쳐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젠트리피케이션이나 녹아내리는 빙하 같은 것들. 역사를 돌아보면 한 세대가 사라지면서 보이던 것들이 보이지 않게 되기도 한다. 데이터는 특정 순간을 포착해 보전하는 힘을 지녔다. 네거티브 필름을 보려면 현상 과정을 거쳐야 하듯, 데이터 세트에 감춰진 패턴은 지도와 그래픽을 통해 바로 볼 수 있다. 눈으로 보아야 확대하고, 비교하고, 기억할 수 있다.”
너무 길어서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건지 모르겠다면 다음의 한 문장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바로 이것이다. “보아라, 보이지 않는 것을.”
이 세상에는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일들, 그러나 우리 자신과 내가 속한 사회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들이 수없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이 정보들을 지도로 옮겼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시각화된 정보는 힘이 있어서 우리는 이 세상의 형편을 더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저자 제임스 체셔와 올리버 우버티는 다양하고 방대한 정보들을 시각화해냈고 그 결과물이 이 책이다. 과히 두껍지 않은 책 안에 어마어마한 정보가 담겨있다. 지도의 내용은 다양하다.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살아낸 경험을 그들이 강제로 이송된 위치 정보와 함께 담아낸 지도, 유럽인이 도착하기 전 오스트레일리아 땅에 살았던 원주민 부족의 다양성을 담은 지도, 노예무역선 이동경로와 무역량을 시각화한 지도, 에볼라 전염병의 주요 확산 경로 지도, 비행기 운항 경로를 통해 살펴본 탄소 배출 지도, 미국 남부 지역의 강제퇴거명령 발생 지도. 난민촌 파괴 지도, 산림 화재 지역을 표시한 지도, 녹아내리는 빙하의 움직임을 표시한 지도 등. 그 시대부터 지역의 규모, 다루는 정보의 유형이 방대하다. 그들은 이 지도를 통해 “행복 격차와 무급 노동, 오염 수준 등”을 살필 수 있고, “강제 퇴거와 젠더 기반 폭력, 불발탄 등으로 인간 삶이 위협받는 지역을 밝혀낼”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또 이렇게 말한다. “지도만으로는 아무런 힘이 없다. 지도의 권위는 지도를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유효하다.” 과거에 지도는 권력을 가진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지도는 정보와 힘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 지도를 가지고 있고 활용하지 못한다면 무용한 종이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지도를 보고, 읽고, 행동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이 지도책을 보고 그저 재밌는 그림책을 읽은 것 마냥 책을 덮을 것이 염려스러웠는지, 책 끝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계속 방관자로 머물러 있는 한 그러한 정보는 아무 쓸모도 없다. 단 하나라도 좋으니 이 책에 실린 이야기에 영감을 얻어 당신도 행동에 나서기를 빈다.” 이쯤 되면 대체 어떤 이야기와 지도가 실려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을 통해 세상을 읽는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정유은 (라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