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가지 키워드로 읽는 오늘의 이스라엘
(<7가지 키워드로 읽는 오늘의 이스라엘>, 최용환, 세종)
이스라엘하면 나에게 떠오르는 것은 유대인, 아랍, 중동, 노벨상, 국방력, 전쟁, 디아스포라, 랍비, 키부츠, 엑소더스, 에루살렘 등이다. 학교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접했던 단어들이다. 한편 직업인으로서 만나던 이스라엘 영업사원과의 경험이 이스라엘에 대한 강한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스라엘 영업사원은 나에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공격적인 언사로 질문을 퍼붓는데, 진짜 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매우 당황했었다. 교환교수 등으로 이스라엘에 간 교수들은 학생들의 공격적인 질문에 무척이나 당황하여 고생하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탈 때 이스라엘 사람(유대인)이 옆 좌석에 있으면 그 여행은 최악이다라는 이야기와 호텔에 유대인이 투숙하면 호텔이 시끄러워 여행의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유대인들의 선민의식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측면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특이한 현상이 두 가지가 있다. 특히 예비군 훈련장에 가면 이스라엘의 신화 같은 이야기를 언급한다. 그것은 아랍과 전쟁 중에 해외에 거주하는 유대인도 자발적으로 참전하며, 여성들도 똑같이 군사훈련을 받고 전쟁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예비군 훈련에서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하려는 교관들의 설명이라 생각한다. (실제는 여러 차례 전쟁 중 전황이 좋게 돌아 갈 때 해외로 부터 참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또 하나는 “태극기 부대는 왜 이스라엘국기를 들었을까?”이다. 언제인가 부터 태극기 부대 시위에 간혹 이스라엘 국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궁금했다. 국립외교원 교수 인남식에 의하면, “한미 동맹을 중시 여기는 분들이라 태극기와 성조기의 조합은 쉽게 이해할 수 있겠지만, 다윗의 별과 푸른 줄이 담긴 이스라엘 국기는 다소 생소했다. 이유를 짐작해보면 대략 두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는 이스라엘에 대한 동경, 특히 안보 문제에 있어서 거의 신화적 존재로 자리 잡은 이스라엘 현대사 때문으로 보인다. 둘째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특수 관계에 우리를 포함시켜 삼각으로 대입하고 싶어 하는 정서 때문 아닐까.”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번엔 독후감 소재로 '7가지 키워드로 읽는 오늘의 이스라엘'을 정하였다. 전 이스라엘 대사인 최용환이 지은 책이다. 최용환은 대구에서 출생하여 경북대학교 법학과와 미국 워싱턴의 아메리칸 대학교 법과대학원(LL.M.)을 졸업했다. 공직에 입문하여 30년간 해외 분야에서 근무한 후 한남대학교 국방전략대학원에서 3년간 초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18년부터 현지 대사로 일하면서 이전에 가졌던 이스라엘에 대한 인식과 현장에서 바라본 이스라엘의 모습 사이에 적지 않은 간극이 있음을 알고 오늘의 이스라엘에 대한 정보를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교보문고)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프롤로그 익숙하지만 낯선 나라, 이스라엘1장 시오니즘과 분쟁
2장 디아스포라와 이민
3장 유대 국가와 유대 정체성
4장 작은 나라 강한 군대의 비밀
5장 창업 정신과 후츠파
6장 조약 없는 영혼의 동맹 미국
7장 젊은 나라 속의 오랜 율법
이 책은 유대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이 아니라 현재의 이스라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성지순례가 아닌 세계 속의 현재 이스라엘을 언급하고 있어 서두의 의문이 풀릴 수도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우선 이스라엘의 현황과 연표이다.(지도와 함께 이 책을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이스라엘은 제2차 세계대전 후 1948년 5월14일에 독립국가 선언을 한다. 그러자 그 다음날 유대국가 건설을 반대하는 주변 아랍5개국(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레바논)의 선제공격으로 제1차 중동전쟁(팔레스타인 전쟁)이 벌어졌다. 여기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오늘날 영토의 기초가 확보되었다. 1956년10월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이집트 수에즈 운하 국유화에 대항하여 벌인 전쟁에 이스라엘이 동참하면서 제2차중동전쟁(수에즈전쟁)이 발발했고 결국 두 번째 전쟁에서도 승리하게 된다. 1967년6월 이스라엘이 이집트와 요르단을 선제 공격하면서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이 벌어졌다. 이때 이스라엘이 차지한 지역 중에 골란고원, 동예루살렘, 서안지구는 현재까지도 이스라엘이 점령 중이다. 다시 1973년10월 유대인의 대속죄일(욤 키루프)에 이집트의 전격적인 선제공격으로 제4차 중동전쟁이(욤 키루프 전쟁) 발발했다. 미국의 지원으로 간신히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었다. 4차례 전면전이 끝난 후에도 1982년 6월 이스라엘은 PLO(팔레스타인 해방 기구)를 제거하기 위해 레바논 시리아와 전쟁을 벌였으며, 2006년7월에는 이란과 연계되었다는 헤즈볼라를 공격해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특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전쟁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무장정파 하마스와 벌이는 무력 분쟁이다. 그중에서도 2008년과 2014년에 발생한 대규모 무력 분쟁은 가자 전쟁(Gaza War)이라 불릴 정도로 공격 규모가 크고 양측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2014년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자 전쟁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로켓 공격과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 장면이 실시간으로 방송이 중계되면서 세계인이 놀라기도 하였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반대 세력과 벌이고 있는 무력분쟁은 오늘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분쟁은 이스라엘에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키워드이다. 유대민족과 아랍민족이 피 흘리면서도 물러 설 수 없는 이유를 팔레스타인 지역을 둘러싼 두 민족사이의 엇갈린 운명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그 가운데 고대 '필리스틴Philistine 민족이 살았던 지역'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필리스틴은 구약성경에서 소년 다윗의 돌팔매에 맞아 쓰러진 거인 골리앗의 부족, 즉 '블레셋 Philistia'을 뜻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불화는 구약에서도 확인된 셈이다. 다시 근현대로 돌아 가보자. 국제정치적 의미에서의 팔레스타인은 자치정부로 대표되는 국가적 실체로서의 '팔레스타인 State of Palestine'으로, 1988년 스스로 독립 국가를 선포하고, 1994년에 자치정부를 수립하였다. 현재까지 러시아, 중국, 북한 등 전 세계 130여 개국에서 국가로 승인을 받았고, 2010년 11월에는 유엔 총회에서 옵서버 국가자격을 취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을 비롯하여 상당수의 유럽 국가 및 일본 등은 아직도 팔레스타인을 정식 국가로 승인하지 않은 상태다. 문제의 실체는 팔레스타인의 주장하는 영토와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영토가 일정 부분 겹친다는데 있다.
오늘의 이스라엘을 이해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시오니즘Zionism'이다. 이스라엘 땅(에레츠 이스라엘 Eretz Israel)으로 돌아가자'는 시오니즘에서 말하는 '시온'은 현재 예루살렘 구시가지Old City 남서쪽에 위치한 나지막한 산(시온산)을 가리킨다. 시온산은 세계를 유랑하던 유대인들에게 있어 단순히 다윗왕의 성채가 있었던 작은 언덕이 아니라 다윗과 솔로몬 시대 유대민족의 영광이 서린 곳이다. 뿐만 아니라 언젠가 유랑의 세월이 끝나면 반드시 돌아가야 할 일종의 본향, 즉 '에레츠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상징적 장소가 되었다. 다시 말해 '시온'은 해외를 유랑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있어 곧 예루살렘 그 자체로 여겨졌던 것이다.
19세기 말 시오니즘 운동이 '테오도르 헤르츨Theodor Herzl'에 의해 시작되었다. 1896년 그는 《유대 국가Der Judenstaat》라는 한 권의 책을 펴냈다. 그 책에서 유대민족은 다른 민족과 달리 국가가 없어서 차별과 박해를 받는 것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유대민족에 의한 유대 국가의 건설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시오니즘을 주장했다. 1897년8월 제1차 시오니스트 총회에서 건국의 땅을 어디로 결정할 것인가를 두고 갑론을박의 논쟁이 벌어졌다. 시오니스트 총회는 약속의 땅인 에레츠 이스라엘(팔레스타인)로 돌아갈 것임을 천명했다. 시오니즘이 확산되면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박해를 피하려는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는 사례가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39년 당시에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들이 대략 45만 명에 이를 정도로 그 숫자가 늘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럽 내에서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를 겪으면서 더욱 가속화된 시오니즘 정치운동은 전쟁이 끝나고 1948년 5월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하던 영국군이 모두 철수하게 되면서 마침내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테오도르 헤르츨은 이스라엘 건국의 장면을 보기 훨씬 이전인 1904년에 44세라는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건국 이듬해인 1949년 예루살렘으로 옮겨졌다. 건국의 정신적 아버지였던 그는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나라의 선지자'(호제 하 메디나)로 추앙받고 있다.
분쟁의 휴화산이었던 유대민족의 시오니즘 운동이 활화산으로 바뀌고 대폭발을 하는 데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영국과 유엔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제국의 동맹으로 참전한 오스만제국은 결국 패전하면서 400여 년 이상 유지해 온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잃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오스만제국과 전투를 벌이던 영국은 오스만제국에 반감을 품은 아랍 민족들을 자신의 파트너로 삼았다. 영국은 이들 아랍 민족에게 오스만제국에 좀 더 강력히 저항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당근'을 제시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팔레스타인 지역에 아랍인들의 국가를 건설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1915~1916, 후세인 - 맥마흔 서한)을 한 것이다.
한편 영국은 전쟁을 조기에 승전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미국 등 해외 유대인들의 더 많은 지지가 필요했다. 그런 까닭에 영국은 유대인들과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대민족의 국가를 세울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약속(1917 벨포어 선언)했다. 이와 같은 영국의 이중적 태도는 유대인과 아랍인 양측 모두에게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국가 건설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민족적 과제로 만들었다. 결국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7년 팔레스타인 문제의 관할권을 유엔으로 이관하고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완전히 떠나기로 결정하였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새로운 관리자로 등장한 유엔은 1947년 11월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과 아랍인이 각각 그들의 국가를 수립하도록 하는 '팔레스타인 영토 분할안(Partition Plan)'을 결의했다. 분할안이 결정될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던 유대인들은 65만~70만 명 정도, 아랍인들은 130여만 명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유엔의 영토분할안은 전체의 절반이 넘는 55% 정도의 땅을 유대인들에게 할당하고 있었으며, 이 결의 안은 통과되었고 영국이 위임 통치를 1948년5월14일 완전 종료한다고 발표함과 동시에 이스라엘은 당일 독립국가임을 선포하고 5월15일 이에 반대하는 아랍5개국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제1차 중동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과 아랍간의 분쟁의 핵은 성스러운 도시 예루살렘이다. 고대로부터 예루살렘은 여러 부족과 국가들이 수십 차례에 걸쳐 통치권을 두고 다툰 지역이다. 16세초부터 20세기 초까지 거의 400년간 오스만제국이 예루살렘의 주인 노릇을 하였다. 팔레스타인 영토 분할안(1947년) 선포 이후 예루살렘의 직접 관할권, 코르푸스 세파라툼 Corpus Separatum)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유엔에 부여하고 있다. 이는 유대, 아랍 국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별도의 분리 지역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예루살렘을 유엔이 관할하는 '국제특별지역'으로 선언한 것이다. 그간의 전쟁으로 예루살렘은 서쪽은 이스라엘이 동쪽은 요르단이 분할 관리(그린라인)하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구시가지(올드시티)는 동 예루살렘에 있다. 그러다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일명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동 예루살렘을 장악하게 되었다. 현재의 이스라엘은 그린라인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예루살렘은 동과 서로 나눌 수 없는 하나의 도시이며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 주장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입장에선 다르다. 동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의 미래 수도라는 것이다. 분쟁의 역사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로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약속에 땅에 모인 종교적 입장에서 네 그룹의 유대인들,
하레디(Haredi): 유대율법에 가장 충실한 초정통파 그룹 지나친 근본주의자. 시오니즘 비판자
다티(Dati): 근대화된 성향의 종교적 시오니스트 그룹 근대화된 종교인 그룹 시오니즘 지지
마소르티(Masorti): 전통적 가치를 따르면서도 현대식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그룹
힐로니(Hiloni) 혹은 세큘라(Seclar): 종교적 가르침을 지키지 않는 세속적 성향의 그룹 무신론자도 포함.
사실 이들 네 그룹을 두부 자르듯 각각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종교적 성향도 사람이나 세월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보수적인 '하레디' 그룹과 가장 진보적인 '힐로니(세큘라)' 그룹 사이의 인식 차이는 무척 명확하다. 하레디 그룹에 대한 징병제 특혜, 안식일 준수 등 다양한 사회적 주요 이슈들을 둘러싸고 하레디와 힐로니는 자주 대립각을 세운다. 이들 각각의 그룹은 자신들이 속한 집단 내에서만 결혼하거나 사회적으로 교류하는 경향이 강하다. 과거부터 내려오는 유대의 종교법과 이스라엘의 세속법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하레디는 당연히 종교법을 우선시한다. 반면 힐로니는 세속법을 앞세운다. 규모로 볼 때 힐로니는 다수인 반면 하레디는 소수이다. 그러나 유대 국가 이스라엘에서 하레디가 가진 영향력은 작지않다. 하레디의 인구 증가율이 다른 그룹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점도 이들의 영향력이 앞으로 사그라지지 않으리라는 전망을 낳게 한다.
이스라엘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현지에서 만나는 유대인들의 모습이 다양한데 놀란다. 출신 지역별로 크게 둘로 구분한다.
아시케나지(Ashkenazi): 아시케나지는 과거 독일 지역 가리키는데 9~10세기 경 라인강 유역의 유럽(현재의 독일과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인 그룹을 지칭. 현재 동유럽 러시아 등지로 이동한 유대인 그리고 서유럽과 미국 등지로 이동한 유대인들이 그들의 후손으로 아시케나지라 한다.
세파르디(Sephardi): 히브리어로 스페인이란 뜻하는 세파라드에서 나온 말이다. 로마시대로부터 이베리아 반도 지역에 주로 거주해 오던 유대인 집단을 말한다. 이들 중 15세기 스페인의 레콩키스트에 의해 쫓겨나서 가까운 북아프리카나 중동으로 이주하거나 네덜란드 등 유럽으로 이동한 그룹이다.
미즈하리(Mizrahi): 히브리어로 동쪽이란 뜻으로 주로 북아프리카나 중동에서 거주하는 세파르디를 말한다.
아시케나지와 미즈라히를 포함한 세파르디는 오랜 기간 지리적으로 떨어져 생활하였으며, 그에 따라 각각의 유대인 사회는 그들이 거주하던 국가나 지역의 문화와 풍습과 언어 등과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갔다. 유대인 사회도 그들의 출신 지역, 인종, 소속집단에 따라 유대교 회당의 모습, 복장, 명절 풍습, 즐기는 음식 등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초정통파 그룹 내에서는 아시케나지 출신과 세파르디 출신 간에 결혼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이스라엘 건국은 아시케나지들이 주도하여 영향력이 큰 반면, 세파르디는 영향력이 약하다. 이런 것에 불만을 품고 그들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샤스당을 만들었다.
이스라엘 건국이래 70여년 지난 현재까지 역대 총리가 모두 아시케니즈이다. 종교분야에서는 최고 권위를 갖는 최고랍비공의회는 아시케나즈와 세파르디 두 그룹을 대표하는 최고 랍비가 모인 2인 협의체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스라엘 유대인들 가운데서 가장 외모가 두드러져 보이는 이들은 피부색이 어두운 유대인들이다. 이들을 '이스라엘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베타 이스라엘' 또는 그들의 출신 지역을 따서 '에티오피아 유대인'이라고도 한다. 이들의 조상에 대해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과 시바의 여왕 사이에 태어난 후손이라는 설을 비롯한 여러 설이 있으나 명확하지는 않다.
이들 에티오피아 유대인은 오랜 기간 유럽 중심의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 채 거의 잊힌 존재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건국 후 귀환법에 따라 해외 거주 유대인들의 '알리야'(이스라엘로 귀환)가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수차례에 걸쳐 군과 정보기관을 동원한 비밀 공수작전을 통해 당시 수단과 에티오피아 지역에 거주하던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대거 이주시키는 데 성공했다. 가장 대표적 공수작전으로 1980년대의 '모세 작전'과 1990년대의 '솔로몬 작전'을 꼽을 수 있다. 현재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검은 피부의 유대인들은 13~14만여 명에 이른다. 이스라엘 전체 유대인의 약 2% 수준이다. 그들의 생활수준은 조금 낮은 편이다. 또한 뿌리의 발견이라는 타글리트(Taglit, 히브리어로 발견)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에 거주하면서 이스라엘을 방문한 적이 없는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이스라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스라엘에는 나라를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큰 기둥은 '유대 국가'라는 기둥이며, 다른 하나는 ‘민주국가'라는 기둥이다. 이스라엘 건국 선언문은 이스라엘 땅에서 유대 국가를 건설할 것임을 분명히 천명하고 있다. 또한 건국이후 분야별로 기본법을 만들면서 이스라엘은 유대 국가인 동시에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국가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오늘의 이스라엘은 유대인에게나 민주국가일 뿐 아랍인에게는 비민주적 국가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유대인과 아랍인 모두의 국가가 될 때 비로소 민주국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대인의 다수는 이스라엘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유대민족의 국가이고 앞으로도 반드시 유대민족의 국가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아랍계에 대한 차별은 사실이 아니라면서 이스라엘은 아랍인들의 권리도 보장하는 민주국가라고 자처한다.
이스라엘 사회는 크게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는데, 두 그룹 중 하나는 정치적으로 우익 성향을 가진 유대인과 종교적 성향이 강한 유대인을 모두 아우르는 통칭 우파그룹이며, 다른 하나는 종교적이지 않은 세속적 유대인과 정치적으로 중도와 좌파를 포함하는 통칭 좌파그룹이다. 연구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민주주의 수준이 상당하다는 평가에 대해 우파그룹의 65%가 동의한 반면 좌파그룹에서는 20% 만 동의하고 있다. 2018년 제정한 '유대민족국가기본법' 유대민족국가라는 것을 재차 천명하고 있다. 히브리어와 더불어 국가 공용어로 인정받던 아랍어는 그 지위에서 박탈하였다. '유대민족국가기본법' 제정 당시 네타냐우 당시 총리의 발언, ”이스라엘은 모든 국민의 국가가 아니다. 이스라엘은 유대민족만의 국가이다. 아랍계 국민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들은 우리 모두와 같은 권리를 갖고 있다. 우파그룹 유대인들의 생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유대민족국가 대 민주주의국가의 갈등은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이스라엘은 헌법이 없고 기본법이 14개가 존재한다.)
현대 이스라엘의 다른 이름은 '전쟁국가'이다. 건국 직후부터 최근까지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전쟁국가 이스라엘에서 국방력을 담당하는 군을 히브리어로 '짜할Zahal'이라고 부른다. 영문 약칭으로는 IDF(이스라엘 방위군Israel Defense Force)이다. '짜할'을 중심으로 군대가 확장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의 규모는 17~18만 명 정도이다. 그리고 예비군이 46~47만 명이다. 이들 군대의 특징은 신속성이다. 장기전으로 들어가면 아무래도 불리하고, 아무리 작은 전쟁에도 지면 다시 유랑생활로 돌아간다는 길이라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기술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아이언돔(미사일방어시스템)'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현재 드론 등 무인항공기를 대비한 '레이저장벽'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 강군의 비결은 독특한 군 간부양성 프로그램이다. 제4차 중동전쟁에서 미국의 도움이 없었으면 패배하였던 전쟁이다. 이런 상황을 철저하게 분석한 후에, 최고 수준의 젊은 과학영재를 여러 단계로 선발하여 체계적인 군사훈련을 통해 장교로 양성 특수기관이나 부대로 배치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고등학생 상위 1~2% 드는 우수한 이공계 학생을 뽑는 것이다. 이들은 군대를 제대하고서 아주 좋은 대우를 받아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와 달리 고등학교 졸업 후 18세가 되면 대학을 가지 않고 군대에 가서 제대한 후에 군복무(30개월) 중 받은 급여를 모아 6개월 내지 1년 정도 해외 배낭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힌다. 여성은 24개월 복무한다.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1/3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병역특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국민들 중에는 병역의무와 관련해 특별한 지위를 가진 두 집단이 있다. 하나는 아랍계 국민이고, 또 하나는 초정통파 그룹인 하레딤이다. 아랍계 국민은 병역의무를 지지 않는다. 아랍 국가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의 지정학적 안보 현실을 고려할 때 아랍계 국민에 대한 병역면제는 큰 문제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직후 1949년에 병역제도가 만들어지면서 하레딤은 특별한 지위를 인정받았다. 개국 초기 초정통파의 지원이 필요한 현실적인 이유가 작용한 결과 시오니스트들과 하레딤 간에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졌다.
신생국가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겸 국방장관이던 다비드 벤 구리온은 직업 없이 토라 공부만 하는 예시바 학생(초기에는 400명 정도)들에 대해 병역특혜를 허용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 숫자가 증가되어 1990년에 이르러서는 병역특례를 받는 하레딤 숫자가 3만 명 수준을 넘게 되어 그 숫자도 조절해 가고 있다. 세속적인 세큘라 그룹은 지속적인 비판적 입장을 내고 있다. 군대 외에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정보보안 기관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모사드Mossad'이다. 미국의 CIA나 영국의 M16과 비견되는 수준이다. 1949년 창설이후 지금까지의 부장은 총 12명이다. 1947년 창설된 CIA는 책임자가 26명이지만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 원장은 36대이다. 이스라엘과 확연히 비교된다. 이스라엘은 핵을 보유하고 있지만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사람을 영어로 'ISRAELI'라고 한다. 재미있게도 이스라엘 사람들의 특성을 'ISRAELI'라는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표현이 있다. (물론 모든 유대인들이 다 그렇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Informal: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Straightforward: 직선적이다
Risk-taking: 위험을 감수한다
Ambitious: 야심만만하고 야망에 가득 차있다
Entrepreneurial: 기업가 정신이 뛰어나다
Loud: 목소리가 크다.
Improvisational: 즉흥적 임시변통이나 상황대처가 능하다
그 특성들은 각각 다른 것이 아니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격식을 별로 따지지 않으니까Informal 자연히 토론에서 직선적 Straightforward 이 되고, 그 과정에서 목소리도 커지게 된다Loud. 또한 평소 야심만만한 Ambitious 자세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Risk-taking하게 되고, 이를 통해 상황 변화에도 포기하지 않고 창의적 방식으로 대처해 나가면서 Improvisational 유능한 사업가로서 Entrepreneurial 성취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일 테니까. 이스라엘 국민의 특성을 보여주는 표현 중에 '후츠파Chutzpah'라는 단어가 있다. 'Ch'이지만 'h' 발음으로 읽는다. 히브리어 '후츠파'는 '무례함', '당돌함', '건방짐', '뻔뻔함', '독선적임', '남을 배려할 줄 모름', '후안무치함' 등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다. 아무튼 이 같은 비판적 인식에 대해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사브라Sabra'와 같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선인장의 한 종류인 사브라는 겉에는 가시가 돋고 딱딱하지만 속에는 부드럽고 달콤한 과즙이 들어 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겉보기에만 까칠하고 불친절하게 보일 뿐이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스라엘은 땅이 좁기 때문에 기술만이 살길이라 생각한다. 많은 국가들이 T&T를 배우기 위해 이스라엘에 온다고 한다. Terror와 Technology이다. 전자, 금속, 정보통신, 항공우주, 바이오, 의약, 방위산업, 신재생에너지 등 기술집약형 분야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아주 작은 이야기일 수 있지만 방울토마토도 이스라엘에서 개발된 것이라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천국인 국가이다. 이스라엘에는 6~7천개의 스타트업이 활동 중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창업의 천국이지만 폐업도 많이 하고 M&A에 의한 기업 판매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회의 복잡성 때문에 더 대우가 좋고 환경이 좋은 나라로 떠나는 젊은이(요르딤)가 늘고 있는 이야기도 있다.
미국과는 대한민국과 같은 조약이 없다. 건국당시 미국 투르먼 대통령이 '사실상 승인'(공식적 승인이 아님)을 통해 승인한 것이 전부이다. 조약보다 강력한 조약없는 동맹관계이다. 트럼프에 의해 이스라엘 수도가 예루살렘이라는 것을 천명하였다. 그래서 T자로 시작되는 두 명의 대통령에 의해 빚을 졌다는 우스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미국과는 신앙으로 연대의식이 다져졌다고 한다. 미국 기독교 중 일부는 시오니즘운동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미국의 보수주의적 기독교는 이스라엘을 형제 국가라 생각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정부는 성지 순례 등의 명분으로 미국 기독교 인사들을 초청하여 양쪽 종교지도자간이 연대를 강화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 내에는 이스라엘을 반대하는 미국 유대인들도 있다. 그들 중에는 두 가지 그룹이 있다. 뉴욕에 더운 여름인데도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초정통파 그룹과 팔레스타인 정책에 반하는 그룹 두 가지다. 팔레스타인 정책에 반하는 인사 중에 영화 레옹과 블랙스완에서 나오는 나탈리 포트만도 있다. 즉 반시오니즘과 반유대주의의 논란이다. 이스라엘로 입국할 때 거부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반유대주의 활동한 전력이 있을 경우다. 철저히 막고 있다.
10여 년 전 개봉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가 있었다. 이를 빗대어 먹고, 기도하고, 일하지 말라라고 패러디한 표현이 있다. 하레딤 젊은 남성은 '예시바Yeshiva', '콜레Kollel'이라 부르는 종교학교에 다닌다. 이들 모두 합쳐 많으면 15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진짜 밥 먹고 기도만 한다. 정부에서 이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종교통합을 위해서는 일하는 하레딤이 늘어나야 하지만 정부 보조금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이렇게 되니 초정통파 하레딤의 여성들은 남성들이 일은 하지 않고 애도 낳고 집안일뿐만 아니라 돈 벌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들의 급여수준은 열악하다. 하레딤은 SNS가 가능한 핸드폰도 사용 못한다. 이런 사회가 민주주의 일수는 없을 것 같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이스라엘 교육이지만 실제 이들의 학력수준은 높지가 않다. 이에 교육 방식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가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교육은 특별한 무엇이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교육 방식은 주입식이 아니라 학생들의 자발적인 토론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런 방식은 과거의 탈무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힘든 유랑 생활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교육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 왔다. 주말 마다 부모와 자식과 함께하는 샤밧(안식일) 저녁식사를 통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탈무드 교육보다는 자식이 자기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이스라엘식 교육 방법이 유행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아직 불가능한 상황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스라엘 결혼은 주로 랍비청에서 주관한다. 결혼이나 이혼은 유대종교법원에서 결정한다. 세속적으론 가정법원이 있지만 종교법원이 우선이다. 히브리어에 '아구나Agunah'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결혼한 여성이 여러 가지 이유로 혼인관계를 끝내고 싶어 하지만 혼인이라는 굴레에 속박당한 채 살아가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유대 종교법상 결혼한 여성은 남편이 이혼에 동의하거나 남편이 사망한 경우에 한해서 혼인관계가 종료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재혼도 할 수 있다. 참 불평등 규율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스라엘은 남녀차별이냐 남녀분리냐?가 주된 논쟁거리이다. 통곡의 벽에 가서 기도도 남녀 분리된 장소에서 해야 한다. 그 밖에도 세속적으로 정한 휴일과 종교적인 날짜와의 관계에 있어서 종교적 날자가 중요한 나라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방문할 경우 그들의 달력을 잘 살펴야 한다.
지금까지 작은 내용이지만 책에 있는 이스라엘의 건국, 종교, 인종, 군대, 인권, 생황 등에 대하여 이책을 간단히 요약하였다. 좀 더 깊은 내용을 알고자 한다면 책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성경에 나오는 유대인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유대인도 중요하므로 현대의 이스라엘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이스라엘은 보수주의 연정이 권력을 잡고 있다. 의회의 권한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대법원의 권한을 축소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민주주의보단 유대국가로서 Identity를 더 중요시하는 듯하다. 이 문제 때문에 이스라엘 내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시끄럽다.
세계의 대부분의 국가는 근대를 거치면서 영국의 영향을 받지 않은 나라가 없다. 아프리카 또는 중동의 지도를 보면 국가 간의 경계가 직선으로 된 곳이 있다. 이는 자연적으로 생긴 국경이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 특히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때문에 만들어진 국경이다. 인위적인 분할 때문에 전쟁이 발발하고 있다. 튀르크에는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하고도 인정하고 있지 않는다. 인정하라고 여러 나라에서 압력을 주면, 오히려 튀르크에는 제국주의 국가에 의해 자행된 학살에 대하여 먼저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한다.
과연 영국과 유엔은 이스라엘과 아랍간의 중동 전쟁, 좀 더 넓게는 유대교를 포함한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의 갈등 책임이 없는 것인지 묻고 싶다. 같은 뿌리를 갖고 있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종교는 너무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든다. 선과 악이 존재한다면 그 중간도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선은 악이 있어야 선한 것이고 악은 선한 것이 있어야 악한 것이다. 아무튼 교회에서 2025년 성지순례를 계획하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성지순례에 좋은 성과가 있길 기대하며 독후감을 끝낸다.
김종일 (주) 비앤에이치웍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