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큰헤이드호와 세월호
지금으로부터 160여 년 전인 1852년 2월 26일, 영국 해군의 수송선인 버큰헤이드호는 장병들과 그의 가족들 630명을 태우고 남아프리카로 항해 중이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에프타운 66km 앞 해상에서 암초에 부딪쳤다.
사고가 난 것은 새벽 2시, 캄캄한 어둠속에서 두 동강난 배에는 구명정이 단지 3척뿐이었다. 승객 630명이 다 탈 수 없었다. 겨우 180여명이 탑승 가능 인원이었다. 이때 이 배의 선장이었던 시드니 세튼 대령은 장병들을 모두 갑판 위로 집합시켰다.
선장은 3척의 구명정에 먼저 부녀자들과 아이들을 탑승시켰다. 병사들은 갑판 위에 도열한 채 구명보트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선장인 시드니 세튼 대령 역시 장병들과 함께 멀어져가는 구명정을 바라보며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결국 이 침몰사고로 세튼 대령을 포함 436명의 장병들은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은 영국은 물론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 이후 ‘레이드 퍼스트(lady first)’라는 말을 탄생시킨 ‘버큰헤이드호 전통’이 생겼다.
이 사건 이전까지만 해도 사고가 나면 자기 목숨부터 구하려고 연약한 어린이들과 부녀자들을 외면하였다. 결국 나약한 어린이들과 부녀자들이 희생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세튼 대령의 숭고한 정신이 ‘영국 신사’라는 귀한 정신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제는 '버큰헤이드호 전통'이 각종 해상 사고에서 불문율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할 때 보여준 선장이나 선원들의 이야기는 실망을 넘어 비난거리가 되었다. 심지어는 선장이 어린 학생들을 향하여 “가만히 있으라!” 해놓고 자신은 배를 탈출하기까지 했다.
‘버큰헤이드호 전통’은커녕 빠져나와 살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한 채 자신만 도망쳤다. 그래서 혹자는 세월호 참사는 사고가 아니라 ‘살인사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버큰헤이드호 전통’은 살신성인정신이다. 적어도 사람은 사람다워야 한다. 살신성인은 사람됨을 넘어 신이 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살신성인’하면 거명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분이 있다. 예수시다. 예수는 자신을 죽임으로 인류를 살리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서 이 세상에 오셨다. 살신성인이 사명이기에 아버지 손에 자신의 목숨을 의탁했다. 물론 자신은 인간적으로 십자가를 지고 처형당하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결국 그는 십자가를 지고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런 그분의 삶의 자취를 따라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살신성인하는 삶의 패턴을 구경이라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내남직 나의 안일, 나의 축복, 나의 행복, 나의 치유, 나의 편리함, 나의 만족을 위해 그분을 이용하는 데만 열심이다.
예수를 이용하여 한몫 잡아보려는 종교인, 예수를 들먹이며 높은 자리를 탐하는 종교인, 종교의식에 눈이 멀어 인간이 안 보이는 종교인, 돈이나 명예를 잡으려고 예수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종교인... 세튼 대령이 보여준 ‘버큰헤이드호 전통’은 지금 종교의 늪에 빠진 한국교회가 찾아야 할 시대정신이 아닐까.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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