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와 필립 멜란히톤
내년은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에 불을 당긴 지 500주년이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 아우구스티누스회의 한 수도사가 비텐베르크(Wittenberg) 성(城)교회 정문에 게시한 95개 조문은 당시 시대를 깨우는 종소리였다. “더럽고 속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 그와 화목할 수 있겠는가?” 문제제기의 본질은 신앙의 기본과 원칙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종교 개혁자들이 말했던 신앙의 원칙이란 세 가지 솔라(sola), 즉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성경으로’였다.
그가 선언한 원칙은 오늘의 눈으로 보면 당연한 원리지만, 당시에는 시대와 큰 전쟁을 치러야 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를 시작으로 이듬해는 하이델베르크와 아우구스부르크에서 또 보름스에 이르기까지 길고 또 먼 논쟁과 심문을 거쳤다. 루터의 전쟁은 단판 승부가 아니었기에 더욱 고달프고 험난했을 것이다. 독일 전역에 존재하는 루터의 도시(루터 슈타트)들을 살펴보면 단순한 옛 유적이 아닌 시대의 산 유산을 느낄 수 있다.
대표적 루터 도시인 비텐베르크는 루터와 멜란히톤을 함께 기억하고 있다. 엘베 강 연안의 작은 도시의 주인공인 두 사람은 개혁의 산실과 같은 광장에 나란히 서 있다.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를 들고 있는 멜란히톤 발아래에는 “또 왕들 앞에서 주의 교훈들을 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겠사오며”(시 119:46)가, 성경을 들고 있는 루터 아래에는 “복음을 믿어라. 내 주는 견고한 성이다”라고 새겨져있다.
멜란히톤이 없었다면 루터가 어떻게 개혁을 완성할 수 있었겠냐고 말들 한다. 1518년, 21세의 나이로 비텐베르크 대학에 초빙된 멜란히톤은 평생 철학, 언어학, 성서학 교수로 일하면서 교회 뿐 아니라 정치, 사회적 상황을 개혁시킨 당사자였다. 그는 1521년 종교개혁 교과서로 인정받는 개신교 최초의 조직신학서 ‘신학요론’(Loci communes)을 펴냈고, 1530년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를 기초하여 개신교 교리를 확정한 인물이었다.
종교개혁 500년을 앞두고, 이미 20년 전인 1997년에는 멜란히톤 탄생 500주년 행사가 독일에서 일 년 내내 열렸다. 행사 책임자는 대통령 헤어조크였다. 막데부르크 크리스토프 뎀케 주교는 “멜란히톤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면서 우리는 독일의 영적인 역사를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역사적 의의를 평가하였다.
그는 ‘독일의 교사’로 불린다. 인문주의자로서 멜란히톤이 독일 대학을 개혁한데 따른 호칭이지만, 교회와 국가가 책임져야 할 학문과 학교교육에 대한 좋은 본을 보였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이 신앙과 교회의 개혁에 그치지 않고 사회와 공동체의 삶을 개혁한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멜란히톤은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동지였다. 1521년 4월, 보름스 제국의회를 기념한 공원에는 루터를 중심으로 개혁을 도운 인물들이 함께 모여 있다. 중심에 있는 루터 동상 아래 사방에 종교개혁의 선구자 발두스, 위클리프, 후스 그리고 사보나롤라가 앉아 있다면, 종교개혁의 동지들인 작센의 프리드리히 제후, 필립, 로이힐린과 멜란히톤은 사각 지점에 비슷한 높이로 우뚝 서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홀로 한 것이 아니다. 선구적으로 순교의 피를 흘린 이들이 있었고, 정치적 역할을 한 인물들 역시 존재하였다. 멜란히톤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이었다. 누구보다 가장 가까이에서 동반자 노릇을 단단히 했기 때문이다. 루터는 개혁의 젊은 동지인 멜란히톤에게 “친구여 시편을 노래하자”라면서 실의를 딛고 다시 일어섰다고 한다.
바뎀 뷔텐베르크 주의 소읍 브레텐(Bretten)에서 무기공의 아들로 태어난 멜란히톤은 1560년 63세로 죽기까지 루터와 종교개혁의 동역자였다. 종교개혁사에서 그의 위치는 비텐베르크 성(城)교회 안에 있는 마틴 루터 무덤의 맞은편에 시신이 안장된 사실만 보더라도 짐작할 만 하다.
개혁자들이 내건 슬로건 중 하나는 ‘성경이 가는 곳 만큼 가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 멈춘다’였다. 그들은 교회의 전통이 아닌 성경에서 신앙의 원칙을 찾았다. 그 원칙은 현대에도 세상의 거짓과 유혹과 불신앙을 낱낱이 일깨워 주며, 그 해독과 속임수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그러나 더 이상 개신교인들은 성경을 읽지 않으며, 그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말씀을 외면하니 말씀대로 사는데 익숙할 리 없다. 내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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