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전도가 문제
성경을 읽으며 왜 예수님은 그다지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제사장들을 나무라셨을까 생각해 본다. 그들은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이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비유에서 알 수 있듯, 바리새인은 정규적으로 금식기도를 하며 십일조를 구별하는 철저한 종교적 삶을 산 사람이다.
하지만 성경은 그보다 세리가 인정받았음을 말한다. 세리는 그야말로 자신은 죄인이라서 기도도 제대로 못한 부끄러움을 가진 사람이다. 그에 비하면 바리새인은 의기양양하여 자신의 종교적 삶을 내세운 사람이다. 그러나 결과는 세리만 인정받았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얼까. 여러 가지 관점으로 말할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주객전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종교적 삶에 충실한 것이 뭐 그리 나쁠까마는, 예수는 그리 생각하지 않으셨다. 그의 금식기도와 십일조라는 종교적 결과물이 하나님과는 별로 상관없는 것이었다.
자신의 종교적 삶을 자랑하는데 충분조건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그것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신앙은 자신의 만족에 그 초점이 있지 않다. 우리는 바로 여기서 걸릴 때가 많다. 신앙생활을 ‘나를 위하여’ 한다. 아니다. ‘그분을 위하여’ 해야 한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누구를 위해 하느냐다. 자신을 위해 하는 건 누구나 한다. 그러나 남을 위하여 하는 건 누구나 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남을 위해 산 사람들을 위인이라 칭송하는 것이다. 그 남이 하나님일 때 우리는 그걸 신앙이라고 한다.
신앙인의 주객전도는 참으로 위험하다.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짓을 열심히 하면서 참된 신앙생활이라고 우기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빠지기 쉬운 주객전도를 지양해야 한다.
한 수도승이 있었다. 어느 날 친구 수도승이 찾아와 그에게 경전 한 권을 주고 갔다. 수도승은 그 경전을 읽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 수도승은 쥐들이 그 경전을 갉아먹는 것을 발견했다.
"경전을 지켜야겠어!"
수도승은 경전을 지키려고 마을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구해 왔다. 고양이는 우유를 달라고 보챘다. 그래서 젖소 한 마리를 구해왔다. 그러자 젖소에게 줄 풀이 또 문제가 되었다. 그는 목초지를 개간하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바빴기에, 그는 자기 대신 일할 일꾼을 고용했다. 가만히 보니 일꾼들은 감시가 필요했다. 그는 결혼을 해서 아내와 함께 일꾼을 감시하게 되었다.
이런 생활을 한 지 2년이 지나 이제 그는 커다란 집과 고양이와 젖소 열 마리 그리고 아내까지 얻고 유능한 사업가로 변해 있었다. 아내와의 사이에서 두 아이도 얻었다. 그리고 경전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좋은 예다. 주객전도는 누구를 위하느냐 하는 문제를 지나 신앙의 뿌리까지 흔들 수 있다. 누구를 위해 종을 울려야 할지 방향을 잘못 잡으면 허탕이란 걸 명심해야 한다.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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