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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1]
 
 
 
     
 
 
 
작성일 : 16-07-02 20:26
   
룻츠 형
 글쓴이 : dangdang
조회 : 294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6780 [207]


룻츠 형


  룻츠 드레셔 선교사는 한국에 잘 알려진 인물이다. 독일인 중에서 대표적 한국통이라고 해도 틀림없다. 내 경우도 그를 처음 만난 것이 1992년 4월이니 어느새 25년째이다. 그해 봄, 독일교회 프로그램에 초청받으면서 서울에서 일하던 그와 3주 동안 동행하였다. 그는 코가 크고 목이 곧은 기존의 서양선교사들과 개념이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낯선 독일에서 함께 동베를린과 서독 지역을 두루 다니면서 독일사회의 유산과 독일교회의 고민을 들었다. 그에게 귀동냥 한 것은 단지 말의 통역을 넘어서, 독일인의 세대 경험이었고, 타자를 통한 풍성한 이해였다.


  그는 1987년 2월, 처음 한국 땅에 발을 디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평생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려는 소명을 품게 되었고, 기독교사회봉사국에서 운영하는 디아콘대학을 마친 후, 5년 간 디아콘 사역을 하던 중에 한국선교사로 파송 받았다. “하나님께서 전화로 부르셨어요. 고향 오펜부르크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자리를 찾을까, 공부를 계속할까 생각하던 중 서남선교회(EMS)에서 전화가 왔어요.” 그는 고난 받는 사람과 연대하려는 한국 민중교회와 어려서부터 타문화권에 대한 큰 관심이 하나님의 초대를 쉽게 긍정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87학번인 젊은 룻츠는 당시 한국 사회를 휩쓸던 민주화열기 속에서 한국을 배웠다고 하였다. 거리와 광장, 캠퍼스의 최루탄 냄새는 그의 몸에 한국 사회의 매운 맛이 배게 만들었다. 제국주의 앞잡이 같은 나쁜 선교사가 되지 않겠다던 그는 한국어를 배우면서 3년 동안 선교훈련과정에도 성실히 참여했다. 그리고 1995년 5월, 독일로 완전히 귀국하기까지 6년 동안 서울 하계동 양돈단지에 있는 영은교회에서 선교동역자로 일하였다.  


  룻츠 선교사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애정이 깊었다. 평일에는 냄새나는 공부방에서 가르치고 배우면서 신명나게 일했고, 교회에서는 경건한 사역자로 구역회(속회)를 인도하고 또 교회학교 교사로 참여하였다. 한국말에 익숙해지면서 수요기도회와 주일 오후예배도 인도하였다. 처음에는 이상한 서양 사람으로 여겨지던 그는 오래지 않아 주민들과 친숙한 독일아저씨가 되었다. 어느 날 설교하고 나니 한 할머니가 이렇게 인사하더란다. “선교사님, 은혜 많이 받았어요. 알아듣지는 못했지만요.”


  그는 한국어 중 가장 정다운 표현으로 ‘형’을 꼽는다. “나는 기도하면서 자주 예수님을 형이라고 불렀어요. 한국에서 형은 ‘사랑’과 같은 이름이지요.” 그는 독일에서는 몰랐지만 한국에서 살면서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셨습니다”(롬 8:29)란 의미를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룻츠 형은 그런 마음씨로 내게도 든든한 형 노릇을 하였다. 만날 때마다 늘 먼저 밥값을 내겠다고 해서, 나는 기꺼이 그에게 형 노릇 하는 즐거움을 양보하곤 했다. 그의 형 노릇은 각별하다. 독일이든, 한국이든 어디서 만나든 동생을 추켜 세워주었고, 사람들 속에 내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었다.


  독일속담에 “오늘이 우리가 만난 가장 젊은 시간”이란 말이 있다. 은퇴 한 후 다시 한국을 방문한 그를 통해 새삼 젊은 시간의 소중함을 느낀다. 물론 20년 전 독일로 돌아간 이후에도 서남선교회 아시아국장으로 수 십 차례 한국과 동아시아를 방문했으니 전혀 낯선 걸음은 아니다. 사실 언제나 그를 만나도 젊게 느껴지는 것은 생각이 참신하기 때문이다. 룻츠는 독일교회를 우려하는 한국인들에게 독일식 한국어사투리로 말한다. “예수님이 함께 걸어갔지만 몰랐던 것처럼, 독일교인들도 예수님 계시지만 몰라요. 부활소식 들었지만 그러나 기쁨 없어요. 언제든 알게 될거요.”


  이렇듯 룻츠 형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나이와 비례하지 않는 희망적인 태도였다. 아마 따스한 마음 씀씀이와 겸허하게 사물을 대하는 정직함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찾는 구도자의 부지런함이 그를 언제나 젊게 살도록 한 원천일 것이다. 그는 늘 금과옥조처럼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마 20:26)는 예수님의 ‘일침’(一鍼)을 되뇌곤 한다. “우리가 남에게 열려있지 않으면 하나님께도 열리지 못 한다”는 그의 말에서는 국경을 넘어선 ‘형 노릇’의 친밀함을 느낄 듯하다.


  그는 한국에서 ‘희망의 나그네’란 별명을 얻었다. 드레셔(Drescher)란 성에서 음역한 도여수(道如水)란 한국이름에도 길의 의미가 담겨있다. 하나님께서 아직도 창창한 그의 길에 복을 주셔서 믿음의 순례자로, 평화의 사도로 마음껏 사용하시길 고대한다.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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