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거룩한 단순함이여!”
체코의 신학자 얀 후스는 가톨릭 사제 중 처음으로 신도에게 포도주잔을 허락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일을 포함한 여러 가지 개혁적 행동으로 결국 얀 후스는 화형을 당했으나 체코의 국민들은 오늘날까지 그를 국민영웅으로 삼아 그의 순교일을 공휴일로 삼고 프라하 광장에 그의 동상을 세워 그의 정신과 용감한 행동을 지금까지 기리고 있다. 얀 후스가 화형을 당했던 해 1415년은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약 100년 전이었다. “나는 비록 지금 거위처럼 타죽지만 100년 뒤 백조 같은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종교개혁자 이전의 개혁자로 불리는 얀 후스가 죽기 전에 남겼다는 이 말을 사람들은 과연 100년 후에 나타난 루터에 적용시켰고 그로부터 종종 루터는 백조로 상징되곤 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얀 후스가 남긴 거위와 백조의 이야기는 제법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최후에 남긴 말과 관련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가 또 하나 있다. 이 장면은 그가 막 화형을 당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한 나이든 농부가 얀 후스를 태우고 있는 불 속에 열심히 장작을 나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무를 나르고 있는 그를 향해 화형틀에 묶인 얀 후스는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오, 거룩한 단순함이여!”(O sancta simplicitas.)
단순함, 간소함, 소박함은 분명 신앙인들이 삶 속에 지녀야 할 원칙이 아닐 수 없다. 특별히 물질적인 것과 관련하여서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얀 후스가 농부를 향해 외쳤던 ‘단순함’은 결코 그런 의미에서의 단순함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는 천진함 또는 순진함을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후의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명령만 따르는 열성, 머리를 내려놓고 손과 발만으로 뿌듯하게 느끼는 신앙의 자부심, 얀 후스는 바로 이런 단순함을 조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신앙의 확신에 가득 차 하나님의 진리를 대변한 사람을 불태우는 일에 열심을 내는 신도라니, 이 얼마나 거룩한 단순함이란 말인가!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순진한 것은 죄악입니다.” 아주 오래 전 정리해고에 관한 한 기자의 글에서 읽었던 이 글귀는 지금도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우리는 드물지 않게 책임 있는 사람들의 ‘몰랐다’는 변명을 듣게 된다. 하지만 책임 있는 자리에서 순진했다는 것은 결코 변명이나 핑계가 될 수 없다. 자신이 정말로 순진한 사람이라면 애초에 책임 있는 자리에 가 앉지 말았어야 했고, 지금이라도 당장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악으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순진하다는 것은 자신과 타인에게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일인가.
“오, 거룩한 단순함이여!” 유감스럽게도 얀 후스의 일성은 오늘도 변함없이 유효하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며 하나님의 사람을 불태우는 일이 오늘이라고 없을까? 위대한 성 사도 바울마저도 하나님을 향한 열성으로 스데반을 향해 날아드는 돌을 마땅히 여기셨는데 하물며 나라고 안전할까. 그러니 끊임없이 주위를 둘러보고 나를 둘러싼, 나를 포함한 세상의 악함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악으로 둘러싸인 세상에 순진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니, 위험하다. 기억해야 한다. 눈먼 열심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 어리석은 순진보다 해악스러운 것은 없다.
“보아라, 내가 너희를 내보내는 것이 마치 양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과 같이 슬기롭고 비둘기와 같이 순진해져라.” (마 10:16)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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