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을관계
한때 ‘갑질’이란 말이 일상을 도배한 적이 있다. 지금 단어의 유행이 사라진 것은 갑질 현상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유행가 가사처럼 잠시 잊혀졌다가 다른 가락을 타고 돌아 올 것이고, 후렴구처럼 반복될 것이 뻔하다. 왜냐하면 ‘갑을관계’는 늘 존재하고,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관계를 형성하는 지배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가끔 갑질은 무섭게 부메랑으로 날아오기도 한다.
대한항공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뉴스토마토’가 창간호를 내면서 우리나라 500대 기업에 대한 지속지수를 조사하였는데, 주목할 것은 대한항공이 100대 기업 중 명성평가에서 꼴찌를 기록한 것이다. 좋은 인상, 사회책임, 소비자권익보호 항목에서도 평균에 크게 못 미쳤다. 대한민국 국적항공사임을 자랑하는 거대기업이 ‘땅콩회항’이라 불리는 갑질의 부메랑에 맞아 곤두박질 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백억 대의 변호사 수입을 호가하는 전관예우도 일종의 갑질이다.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가 조사를 끝내기도 전에 문을 닫도록 강제하는 정부의 행태도 갑질이다. 입맛에 맞게 칼을 휘두르는 권력기관들, 특정 계파의 이해관계만을 부나비처럼 쫓아다니는 정당정파도 갑질이다. 그들이 조심해야 할 것은 간헐적인 을지로위원회 활동이 아니라, 전면적인 국민적 분노요, 심판의 부메랑이다.
공적 마인드가 붕괴되면서 갑질로 대표되는 갈등과 긴장이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교회 재정이 점점 압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후원자와 대상자 사이의 선교적 갑을관계는 한층 각박해질 것이 분명하다. 물질적 가치에 목매어 온 데 따른 당연한 귀결처럼 느껴진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갑을관계 모델은 담임 목사와 부목사 사이다. “담임목사는 교인을 볼 때 비둘기 눈으로 보지만, 부목사를 볼 때 독사의 눈으로 본다”는 농담은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우스개가 아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한국교회 부교역자를 생각하다’란 심포지엄을 개최한 적이 있다. 그때 부교역자들에게 본인의 삶을 주관적으로 정의해달라고 했을 때, 주요한 열 가지 대답(복수 응답 가능)은 ‘종, 머슴, 노예, 계약직, 비정규직, 인턴, 일용직, 임시직, 담임목사의 종, 갑질 당하는 인생, 부하직원, 힘든 자, 미생’ 등이었다. 예상보다 현실은 더욱 모질고 비참하게 느껴진다. 같은 목회자이면서도 상호존경과 동역의식 없는 상하관계, 갑을관계의 반영이었다.
이런 갑을관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사회의식이 높아지면서 이전에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불거져 나왔을 뿐이다. 여성, 청년, 장애인 등 기존의 성별과 세대, 신체에 따른 차별은 여전히 상존한다. 불과 20년 남짓 사회적 이슈가 된 외국인 노동자, 중국 출신의 동포와 탈북자 등 사회환경의 변화에 따른 갑을관계는 점점 다양하고, 고조되고 있다.
겉으로는 섬김과 공정함을 내세우지만 우리 사회에 배려와 상호존중의 문화가 사라졌다. 이웃이 없으니 이웃사랑도 없고,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일시적 선행조차 복지기관이나 사회단체에 맡겨 버린지 오래다. 말로는 섬김(서번트십)을 강조하면서 그냥 쫓음(팔로우십)에 머물렀다. 자신의 자존감 지수는 웃자라면서 남의 명예에 대한 배려는 내 팽겨쳐 버렸다.
우리 사회의 위기든, 교회의 위기든 그 뿌리는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공동체의 근간이 흔들리지만 안정과 통합을 이룰 존경받는 구심이 없다. 인간존중이 무너져 내린 사회에서 서로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다. 사회적 무시와 차별을 줄이고, 시민적 존경과 친절을 늘려야 한다. 삶의 붕괴와 사회의 타락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마 25:40, 45)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와 교회가 다시 회복해야할 것은 번영과 부흥 이전에, 가난한 마음이다. 서로가 남을 높여주고 서로가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따듯한 ‘을을관계’가 절실하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갈 5:22-23)는 대단히 신비적이고, 비현실적 차원이 아니다. 입술로는 구두선처럼 암송하고 생활에서는 무시해도 좋은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다. 여름에 맺는 그 열매들은 인간의 삶과 이웃과 관계에서 가장 근본적인 영적 능력과 치유의 마음을 제시한다. ‘사랑, 기쁨, 화평, 인내, 친절, 선함, 신실, 온유 그리고 절제’, 이것은 사람과 이웃, 사회와 세상을 바꾸는 성령의 은혜이며, 열매에 앞서 뿌려야할 씨앗이다.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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