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쟁이
‘과거 개신교인들은 '예수쟁이'로 불렸습니다. 이 단어엔 비아냥과 함께 '일반인과는 뭔가 다른 사람' 이란 뜻이 내포돼 있다고 봅니다. 농한기 겨울철에도 노름하지 않는 사람, 술담배 하지 않는 사람, 남에게 예수 믿으라고 권하는 사람, 그래서 함께 어울리기엔 뭔가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무시할 수도 없는 사람, 이런 의미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을 겁니다.’
조선일보 김한수기자가 한 목회자 모임에서 한 강연 내용이다. 그는 종교부 기자를 10년 넘게 하면서 자신의 경험에 바탕하여 이야기한다. 전에 비해 요즘은 종교부의 기사가 줄었다는 것이다. 뭔가 이 사회와는 다른 면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종교가 그런 역할을 못하니 기사화할 것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조심스럽게 내놓는다. 과거에는 그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이제는 희망이 있다고 한다. 모두가 위기라는 인식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한다는 것이 희망의 씨앗이라고 한다.
얼마 전 아들이 밥을 먹는데 물었다. 다른 종교에서는 안 그러는데 왜 유독 기독교인에 대해서는 예수쟁이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아이들의 눈에도 굳이 이렇게 기독교인에 한해서만 이런 단어가 쓰이는 것이 이상한가 보다. 나는 생각하기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열심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너무 열심히 하면 사람들은 낮게 보면 측면이 있다. 자신과 같이 아니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낮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기독교인들이 실제적으로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힘 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위로를 얻고 힘을 얻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들을 세워주었던 것이다.
택시 탔는데 기사와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오갔다. 함께 탔던 전도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니 목사라는 신분이 드러나고, 자신은 안수집사라고 이야기한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이야기며 교회 이야기가 자연스럽다 그러면서 가족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의 형은 의사고 교수란다. 교회에서는 장로로 잘 섬기고 있다고 한다. 자기 아버지는 시골에 가난한 동네에서 살았지만 자녀들은 잘 되어서 서울에서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야기했다. ‘예수 믿으시고 자녀들이 다 잘 되셨네요.’ 그 기사분이 맞다고, 우리 집은 예수 믿어서 시골에서 공부 시키고 출세시켰다는 것이다. 출세하는 개념이 다를 수 있지만 그 집안이 예수를 믿었기에 아이들 교육시키고 기도로 양육하여 사회에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자주 듣는 이야기이다. 어머니의 기도와 자녀가 잘 되리라는 진취적인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서는 자녀들이 잘 된 경우들이다. 다른 이야기를 해서는 무엇 하겠는가. 나도 어머니가 믿음으로 유학 보내고 뒷바라지 한 덕에 교수도 되지 않았는가.
‘예수쟁이’라는 말이 다시 그립다. 억척스럽지만 바르고 옳은 것을 상징하는 그 단어가 다시 쓰여지길 원한다. 남들 보기에 그저 그런 범인이 아니라 예수 믿는다고 억척 부리고, 바르게 산다고 돌려지는 그런 예수쟁이들이 이 땅에 다시 나타났으면 좋겠다. 우리가 다시 예수쟁이들이 됐으면 좋겠다.
조성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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